현장플러스

인권선언, 2008년 다시 태어나다

피플파워  / 2008년12월22일 16시30분

하주영/ 현장플러스 시간입니다. 오늘 함께 얘기할 분은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와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명숙 / 안녕하세요.


하주영/ 2008년 한국사회 인권점수,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요?


명숙 / 점수라고 하니 참 답변하기 애매하네요. 점수를 낼 때는 기준이 있는 건데 그 기준을 어디에 잡냐라는 점에서 점수가 달라지니까요. 그러나 인권이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계속 후퇴하고 있으니 마이너스 점수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주영/ 그럼 준비한 영상보고 2008년 한국 인권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영상1. (1‘10) SOV

하주영/ 올해로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는데요, 거슬러 올라가서 60년전 처음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계기와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①


명숙/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수많은 나라별, 주체별 인권선언이있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5천만 명에 이르는 학살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인류의 평화, 자유,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언어로서 인권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인권이 정치적 언어로 사용된 면도 있겠지만 보편적 인권개념을 확립한 문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보편성의 한계가 있겠지만요, 선언은 인권규범을 만들 때 기초가 되었고 사회를 인간화하는데 최소의 기준-눈치 보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주영/ 한국에서도 60주년을 맞아 여러 행사들이 기획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차원의 행사도 있었고요. 시민사회 쪽에서는 2008 인권선언 추진위원회를 꾸려 행사를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일들을 진행하셨나요?②


명숙/ 인권선언운동을 하자는 제안은 촛불투쟁이 한창이던 때부터 나왔지요.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물리적 폭력을 보면서, 많은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을 보면서 인권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선언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주체별, 영역별 권리선언을 했습니다. HIV에이즈감염인 인권선언, 장애인인권선언, 비정규직 권리선언, 이주노동자권리선언, 청소년 인권선언, 표현의 자유선언 등을 당사자들과 함께, 시민들과 함께 작성하고 알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하주영/ ‘2008 인권선언 추진위원회’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세계인권선언과 다른 점은 2008년에 그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여지는 데요?③


명숙/ 세계인권선언은 말씀대로 제대로 번역하면 보편인권선언입니다. 인권의 보편성을 강조한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세계인권선언에는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박탈한 사람들이 가려져 있습니다. 여전히 식민지제국주의에 참여했던 나라들의 반성과 제국주의에 대한 명시적 비판은 없습니다. 선언은 여전히 가부장적 시선으로 여성과 아동, 가족을 바라보고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2008인권선언은 2008년을 산 사람들의 문제인식과 권리내용을 담긴 열린 선언이라는 의미이자, 세계인권선언의 한계를 넘어보자는 뜻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주영/ 다양한 조건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완결적인 인권선언을 만든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요. 2008 인권선언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논쟁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④


2008 인권선언, 사회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작성

명숙/ 두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권선언에 담길 가치와 구성에 대해 논의한 ‘밑불때기’와 선언내용을 기초한 ‘선언추진위 회의’, ‘인권선언포럼’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때 장애인, 청소년,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주체들과 함께 성안하면서 하나의 권리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구체적 권리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지요.)
논쟁이 많아서 하나만 소개해드릴게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특화해서 다룰 것이냐, 아니면 권리별 항목에 포함시켜 다룰 것이냐는 토론이 있었습니다. 전자의 경우 소수자의 인권을 시혜나 특정한 사람의 권리로 왜곡할 여지가 있으며 후자의 경우 권리별 항목에 포함시킬 경우 추상적이어서 무의미하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그래서 권리별로 필요한 경우 소수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은 법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하면 다 통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소수자에게는 무의미한 권리가 될 수 있지요. 장애인이나 이주노동자가 언어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명시되지 않으면 사회의 의무는 사라지니까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무지로 차별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구체적으로 쓰자는 쪽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하주영/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2008 인권선언’의 주내용은 무엇인가요? ⑤


명숙/ 총 29개조로 이루어져 주요 내용을 말하기 어려워요. ⅠⅡⅢ의 구성으로 Ⅰ은 인권의 기본가치인 평등, 평화, 존엄과 저항과 연대를 담고, Ⅱ에서는 구체적인 권리 서술이 되지요. 1948년의 선언과 다르게 사회적 권리가 먼저 들어갔고 Ⅲ에서는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권리로서 저항권과 연대권을 서술했지요. 인권이 지배정치의 잔여물로서 기능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항의 직접행동이 있어야 하며 연대권은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서 만드는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지요. 2008선언에서는 인간의 권리 선언이기는 하지만 생명에 대한 존중과 존엄성을 자연으로까지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존엄사의 권리를 넣기도 했고요. 환경권은 후세대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현세대의 의무라고 하는데 그걸 넘어서서 자연과의 공존의무, 공존권리로서 서술했어요.


3조 사회보장 및 복지의 권리
4조 노동에 대한 권리
5조 주거권
6조 건강권
7조 교육권
8조 생명권
9조 성적 권리
10조 비인도적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11조 식량권
12조 물과 에너지에 대한 권리
13조 환경과 생태에 대한 권리
14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
15조 정치에 참여할 권리
16조 사상과 양심, 학문, 종교의 자유
17조 표현의 자유 ( 언론출판의 자유 포함)
18조 집회시위와 결사의 자유
19조 신체의 자유와 이동의 자유
20조 예속상태에 놓이지 않을 권리
21조 사생활의 자유
22조 국적을 포함한 정치공동체를 갖거나 자유로울 권리
23조 가족을 포함한 개인결합의 권리
24조 법에 대한 권리
25조 평화권
26조 문화권
27조 과학에 대한 권리

하주영/ 준비한 영상 추가로 보고 계속 진행합니다.


영상 2. (3‘)

하주영/2008 인권선언을 60년 전 재정된 세계인권선언과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이 눈에 띄는데요. ‘2008 인권선언’에는 안전할 권리나 재산을 소유한 권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데요. ‘2008 인권선언’에 세계인권선언에서 빠져있는 권리는 무엇이고, 뺀 이유는 무엇인가요?⑥


명숙/ 세계인권선언 3조에는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권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안전권이 개인과 집단을 보호해야할 국가의 의무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국가가 사람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데 (테러방지법 등)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 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건강권과 평화롭게 살 권리로 충분히 설명가능하지요.
재산권이 최상의 권리인양 오도되는 부자들의 세상,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재산권은 인권이 아님을 드러내기 위해 빠졌습니다. 재산권이 아닌 공동형태의 재원마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3조 사회보장에서 언급하였고 철거등의 개발로 인한 보상에 대해서도 주거권에서 설명했으므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하주영/ 반대로 ‘2008 인권선언’에서 세계인권선언과는 다르게 추가되거나 재구성되어있는 내용은 있나면, 그것은 무엇이 있나요? ⑦


명숙/ 대표적인 게 성적 권리입니다. 1948년에는 가부장질서에 대한 무비판, 공사이분법의 논리가 팽배했지요. 개인의 성적 권리를 물밑에 두어 주류질서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의 배제시키고 있지요. 많이 알다시피 사회는 이성애자들만, 비트랜스젠더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권리를 제한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권리 구체화의 지향입니다.


하주영/ 그렇게 보면 인권이라는 개념은 시대와 다르게 조금씩 재구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2008년 현재에 인권이란 개념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⑧


인권, 억압에 맞선 인간 해방 세상을 꿈꾸는 것

명숙/ 인권은 억압에 맞선 인간 해방 세상을 꿈꾸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선언이나 인권규약에 있거나 없거나와 상관없이 인간적 권리를 누리기 위해 현재의 억압적 질서에 맞서 인간이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며 외치는 구호, 깃발이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리주체와 의무주체가 명확하게 양분되어 있지 않지요. 조효제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은유로서의 인권’이지요. 대항권력을 조직하는 운동으로서 인권의 개념이 아닐까요.


하주영/ 폭넓은 인권을 담은 2008인권선언 외에도, 이주민, 청소년과 장애인권선언이 별도로 인권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들이 있습니까?⑨


명숙/ 이주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 장애인, 청소년 등의 인권선언이 있었는데 모두 사회적으로 권리를 수없이 박탈당하고 배제된 사회적 소수자들입니다. 이중 흥미로운 것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청소년 선언 1조에 <청소년이라고 해서 누리지 말아야 할 인권 따윈 없다구!><3조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어. 우리를 위한다는 핑계로 니들 맘대로 하지 말고 우리의 의견을 좀 존중하란 말야!> 장애인권선언의 1조 <장애는 개인의 장애와 사회, 환경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변화하는 개념이다. 의학적 개념으로서의 장애 개념을 우리는 거부하며, 장애는 사회의 억압으로 인한 것임을 믿는다.> 이주노동자선언에서 <경제도구에서 사람으로>라는 구호 등을 보면 현실에서 소수자들이 어떤 논리로 배제당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주영/ ‘2008 인권선언’이 유미의한 기획일지라도 한켠에서는 선언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냐라는 비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인권선언문을 작성한 것은 여러 주체들의 요구를 하나의 결실로 맺었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지만요. ‘2008 인권선언’이 갖는 의미와 한계 어떻게 봐야 할가요? ⑩


명숙/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논의해서 더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투쟁기획으로서 모아내는 판이 좀 더 있었으며, 좀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지요.


하주영/마지막으로 인권선언이 선언으로만 그치지 않고, 개인의 삶에서 권리로 행사되려면 많은 행동과 사회적 장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⑪


명숙/ 1회의 행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선언에 나온 권리들을 준거로 싸워야 하겠지요. 사실 세계인권선언도 법적 효력은 없지만 그걸 준거로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주장했기에 권위가 만들어진 거니까요. 선언을 만들었던 사람들, 선언에 불씨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의 권리만이 아닌 다른이의 권리가 훼손될때 싸우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 싸움이 사회제도의 변화, 관습의 변화를 이끌어야겠지요.


하주영/ 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주영/ 시사프로젝트 피플파워는 한국사회의 현재를 시청자 여러분께 직접 전달하기 위해 지난 4년간 삶의 현장에 계신 수많은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 마지막을 인권이라는 큰 화두로 마무리해봤습니다.
인간의 권리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그 바탕이 되어 시작되지만, 종래에는 투쟁으로 통해 스스로 획득하지 않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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