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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공장 - 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

0000년 00월 00일

故 박일수 열사의 장례식이 전국 노동자장으로 치러지면서 55일간의 열사투쟁은 일단락 되었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 그토록 절박한 유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2004년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물론 열사의 시신이 뼛가루가 되어 땅에 묻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그 최전선이 어떻게 돌파되느냐에 열사투쟁,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만이 아니라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걸려있다. 때문에 故 박일수 열사투쟁은 더욱 확장되어 전국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이다.

열사투쟁 속보는 2월 14일 분신소식이 알려진 당일부터 시작해 55일간을 관통하며 진행된다. 긴박한 정세 속에 만들어진 속보 속에는,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도 있고, 현대중공업 자본의 악랄한 탄압도, 어용세력들의 난동도 담겨져 있다. 또 충분하지 못 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과 새롭게 자라는 희망도 들어있다. 이 투쟁속보는 지역의 집회현장과 인터넷 공간에서 상영되었던 내용을 압축해 정리한다.

박일수 열사투쟁이 나한테 남긴 것

현장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동지들은 투쟁과정과 한몸뚱이가 된다. 단지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투쟁자체를 기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일부 또는 전부가 되어 함께 싸운다.

나역시 열사투쟁 이전부터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빨리 첫날부터 마지막날.. 아니 현재까지 하청노조 동지들과 호흡을 같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투쟁속보가 가지는 한계도 많다.
아무래도 선동의 냄새가 짙고, 사실 폭로 처럼 긴급하게 처리되는 탓에 엉성한 자욱이 크다. 특히 사건 내면에 다겨진 이야기들, 주의깊게 설명해야 할 것들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투쟁과정에 힘을 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쟁점과 논쟁이 갈라지는 경우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영상자체 하나하나 완결구조가 가지고 떼어놓고 봐도 하나의 투쟁속보로 기능한다. 때문에 위에 보는 것처럼 하나로 묶으면 더 엉성해진다. 듬성듬성 이빨 빠진 것처럼 여백이 있고, 풀어서 해체한후 재조립하는 것도 쉽지 않다. 총 2시간이 넘는 분량의 투쟁속보를 30분으로 줄였다면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

영상제작을 하면서 많이 다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폭력경비들은 카메라 탈취에 혈안이 되었고, 어용대의원과 어용노조간부들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한번은 8명의 경비들에게 둘러싸여서 카메라르 뺏기지 않기위해 콘크리트 바닥에서 버티다, 주위에 있던 택시기사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 상황이 변하기도 했다. 현장안에서의 촬영을 더더욱 힘들었다.

장례식 당일에는 왜이리 눈물이 나는지, 촬영을 위해 눈을 떠야했지만 그 사이로 쏟아지는 걸 꾹꾹 눌러참아도 흘러내리는 걸 어떡하나, 울면서 촬영했다. 게다가 다음날 하청노동자들의 집단가입때는 더 많이 울었다. 투쟁이 힘겹게 진행되다 결국 무너지듯 정리했는데 뒤늦게 집단가입하는 현장 조합원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너무 고맙기도 하고... 열사의 뜻이 이렇게 살아나는 구나 싶은 벅참감격까지

나는 프로는 아니다. 카메라들고 찍다가 열받으면 찍으면서 함께 싸운다. 몸싸움을 할때 조용히 찍기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회의도중에서 녹화버튼 누르고 직접 발언하던 때도 있었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분노할 때는 분노해버리는 성격은 소위 말하는 '프로'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카메라는 나의 무기이다. 다른 동지들과 달리 난 이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재주없는 사람이 영상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예술'한다고 농을 걸어도 내가 가진 무기로 노동운동속 하나의 점이 되어 찍히고 싶다.

울산노동미디어센터 배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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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걸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엔 제가 너무 사치스러운것 같습니다....
박터지게 투쟁해서 기필코 비정규직 철폐를 시킵시다!!
투쟁!!
눈물이 나올려고 하네요... 덧글 수정 덧글 삭제
2004.06.09 09:48
동영상의 대부분을 제작한 사람입니다.
늦게 올려드려서 죄송합니다.

<동영상 제작일지>

2월 14일
박일수열사의 분신소식을 듣고 열사시신이 빼돌려진 울산북구 현대병원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그 때는 지역에서 동지들이 모여있었고, 지역본부는 임시로나마 대책위를 꾸려야 하지 않나 하는 토론을 진행중. 중공업 하청노조 동지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하고 영안실 주변을 담아 속보 1호 제작 배포

속보 2호는 그날밤 지역본부 긴급운영위 회의를 거쳐 지역대책위 구성과정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각 병원에서 열린 자발적인 집회에서 하청노조 조합원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내용을 묶어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2월 15일
속보 3호는 현대중공업 직영노조가 어용본색을 나타내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직영노조 탁학수 어용집행부는 전날 대책위 회의에 참가해서 함께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말했지만, 다음날 모든 내용을 뒤집었다. 탁학수위원장은 전날에는 열사는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회사측의 주장과 거의 흡사한 내용을 말했지만 다른 운영위원들의 반대의견에 침묵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긴급대의원 간담회를 거치면서 사측의 어용대의원들의 선동에 입을 맞추고 대책위 탈퇴를 선언했고, 정치적 이용이란 해괴한 논리를 끄집어냈다.

2월 17일 속보 4호
열사의 시신이 옮겨지는 날, 기습적으로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중공업 내 짚크레인을 점거했다. 이 과정을 현장내에서 영상패 동지가 아주 어렵게 회사감시를 뚫고 촬영했고 긴급하게 편집되었다. 16일 저녁 집회에서 하청노조 위원장이 밝힌 분신현장으로 가야한다는 주장과 시위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자막으로 깔았다. 그리고 침탈을 준비하는 사측 폭력경비와 관리자들의 모습도.

속보5호
끝내살리라 - 노동가요에 맞추어 북구 현대병원에서 동구 현대중공업 앞 울산대학병원 영안실까지의 하루 상황을 영상에 담았다. 자동차 행진시위와 정문앞의 오만한 경비들의 모습 그리고 영안실로 운구되는 열사의 시신

2월 18일 속보 6호
전날 5시간만에 침탈된 크레인 농성조합원들을 재정리했다.
중공업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경찰은 구경만 했다. 직접 대규모로 구성된 폭력경비들은 무차별적으로 농성조합원들을 폭행했다. 재갈을 채우고 발목을 포승줄로 묶고 짓밟았다. 그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당한 동지들의 모습을 안타깝지만 영상으로 정리

2월 19일 속보 7호
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열린 집회이후 항의방문에서 벌어진 폭력경비들의 만행을 기록했다. 이날 경비들은 각목을 준비하고 집회대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폭력을 저지르는 과정에 경비들이 던진 벽돌에 금속연맹 지역본부장은 머리가 깨지는 부상을, 한 여성동지는 경비들에게 납치를 당해 집단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속보 8호
현대중공업 폭력경비들의 만행의 역사를 기록
2000년 당시에도 조직적으로 폭력을 저질렀던 사측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2월 24일 속보 9호
하청노조에 속해있었지만, 회사의 탄압에 숨죽이고 있었던 조합원들 중 두명이 공개선언을 하는 자리. 기자회견에서 나온 울분과 분노 그리고 희망을 정리

2월 25일 속보 10호
공개조합원 동지들이 현장에 출근하는 모습. 아침 출근선전전과 함께 편집.

2월 28일 속보 11호
영남노동자대회이후 폭력경비들이 저지른 또한번의 만행. 수천명의 경찰병력이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중무장한 경비들이 나서서 하청노조 텐트농성장을 침탈하고 해산중이었던 집회대오에 폭행을 가했다. 이때 텐트안에는 여성동지들과 아이들 갓난아기도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소화기 분말을 뿌리고 광란의 현장을 연출했다.

2월 29일 속보 12호
앞날의 침탈과정이 급하게 촬영본 그대로 올렸던 탓에, 다른 카메라에 찍힌 내용에 응급실에서의 인터뷰를 더해서 재정리해서 올림

3월 3일 속보 13호
사측 폭력경비에 이어서 사측 어용대의원들과 직영노조 어용집행간부들이 영안실에서 난동을 피우는 장면. 대책위와 현중노조 간부들간의 간담회를 진행하며 사태를 진정하려 했지만, 오히려 욕설과 폭언 그리고 영안실내의 벽보들을 찢으며 난동을 계속되었다. 급기야 간담회장에 구둣발로 짓밟고 들어와 대책위 지도부에 대한 폭행까지...

속보 14호
영안실 내에서 만행이후, 회사의 지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님 과잉충성을 하려했는지 영안실 앞마당에 설치된 천막농성장을 뜯고, 열사관련 만장과 현수막을 탈취해가는 장면.

3월 15일 속보 15~18호
전국 노동자대회 스케치와 주요연설을 담아서 올림

3월 20일 속보 19호
지역 곳곳에서 진행중인 선전전과 집회의 모습을 정리

3월 28일 속보 20호
새벽 공안경찰을 대거 동원해 영안실에서 잠자고 있던 대책위원장과 하청노조 위원장을 폭력연행, 경찰서앞 항의농성

3월 30일 속보 21-22호
지역집회에서 폭력연행을 규탄하고 앞으로의 투쟁과정에 대한 결의를 모으는 연설을 이어서 편집.

4월 7일
식목일을 거치며 긴급하게 대책위와 현중자본간의 합의문이 나오면서 이를 둘러싼 상반된 입장을 정리. 합의문에 대한 대책위의 기자회견과 협상결과가 굴욕적이라는 항의속에 노숙투쟁을 진행하는 하청노조 조합원의 모습을 대비해서 편집

4월 9일
박일수 열사 전국 노동자장
아침 장례식을 준비하는 하청노조 조합원들과 지역 활동가들을 인터뷰해 열사투쟁 마무리에 대한 심경을 담았다. 그리고 발인식에서 시작된 임을위한행진곡에 맞추어 이날 진행된 영결식과 노제 그리고 화장과 솥발산 열사묘역에 하관되는 과정까지를 기록

4월 10일
현중 하청노조 소지공 노동자 집단가입
장례식 바로 다음날 열사투쟁 과정에서 꾸준하게 조직해왔던 소지공 노동자들의 모임이 마련되었다. 노동법설명회라는 간판을 걸고 조심스럽게 참석자를 체크하고 진행된 이날 모임에는 300여명의 하청노동자들이 모였다. 그리고 가입을 두려워 하고 있다는 걱정과 달리 쉬는 시간 파도가 밀려오듯 가입원서를 작성하는 노동자들, 단결투쟁을 외치며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모습..
모두가 동지라는 이름으로 하나되는, 박일수 열사투쟁이 뿌린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었다.

절망의 공장 죽음의 공장 현대중공업에 피어난 새로운 희망의 씨앗
동영상 제작일지 (위의 영상은 속보 5호부터 담겨짐) 덧글 수정 덧글 삭제
2004.06.09 15:05
현장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동지들은 투쟁과정과 한몸뚱이가 된다. 단지 렌즈를 통해 보여지는 투쟁자체를 기록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일부 또는 전부가 되어 함께 싸운다.

나역시 열사투쟁 이전부터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빨리 첫날부터 마지막날.. 아니 현재까지 하청노조 동지들과 호흡을 같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투쟁속보가 가지는 한계도 많다.
아무래도 선동의 냄새가 짙고, 사실 폭로 처럼 긴급하게 처리되는 탓에 엉성한 자욱이 크다. 특히 사건 내면에 다겨진 이야기들, 주의깊게 설명해야 할 것들은 시간과 조건에 따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투쟁과정에 힘을 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쟁점과 논쟁이 갈라지는 경우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영상자체 하나하나 완결구조가 가지고 떼어놓고 봐도 하나의 투쟁속보로 기능한다. 때문에 위에 보는 것처럼 하나로 묶으면 더 엉성해진다. 듬성듬성 이빨 빠진 것처럼 여백이 있고, 풀어서 해체한후 재조립하는 것도 쉽지 않다. 총 2시간이 넘는 분량의 투쟁속보를 30분으로 줄였다면 그 고통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

영상제작을 하면서 많이 다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폭력경비들은 카메라 탈취에 혈안이 되었고, 어용대의원과 어용노조간부들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한번은 8명의 경비들에게 둘러싸여서 카메라르 뺏기지 않기위해 콘크리트 바닥에서 버티다, 주위에 있던 택시기사의 신고로 경찰이 와서 상황이 변하기도 했다. 현장안에서의 촬영을 더더욱 힘들었다.

장례식 당일에는 왜이리 눈물이 나는지, 촬영을 위해 눈을 떠야했지만 그 사이로 쏟아지는 걸 꾹꾹 눌러참아도 흘러내리는 걸 어떡하나, 울면서 촬영했다. 게다가 다음날 하청노동자들의 집단가입때는 더 많이 울었다. 투쟁이 힘겹게 진행되다 결국 무너지듯 정리했는데 뒤늦게 집단가입하는 현장 조합원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너무 고맙기도 하고... 열사의 뜻이 이렇게 살아나는 구나 싶은 벅참감격까지

나는 프로는 아니다. 카메라들고 찍다가 열받으면 찍으면서 함께 싸운다. 몸싸움을 할때 조용히 찍기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회의도중에서 녹화버튼 누르고 직접 발언하던 때도 있었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분노할 때는 분노해버리는 성격은 소위 말하는 '프로'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카메라는 나의 무기이다. 다른 동지들과 달리 난 이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재주없는 사람이 영상을 하는데, 주변에서는 '예술'한다고 농을 걸어도 내가 가진 무기로 노동운동속 하나의 점이 되어 찍히고 싶다.
배문석 덧글 수정 덧글 삭제
2004.06.09 15:19
가까이 있어도 결합 한번 못했네요.
많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바쁜일 끝내고 울산에 함 가지요. 정말꼭!
대구에서 덧글 수정 덧글 삭제
2004.06.11 15:15
민중언론 참세상 영상이 필요하신 분들은 [자료제공 신청서]를 작성한 후, newscham@jinbo.net으로 보내주세요. 영상을 복사.운송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해 여유 있게 신청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