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촌 사람들 - 두 번째 이야기
0000년 00월 00일
2006년 3월 24일 현재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지역에 살며 같은 교회에 다니고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어떤이는 권좌에 앉아 사람을 희롱하고 어떤이는 가진 것 없다는 이유로 눈 비 바람 결에 그것들을 고스란히 맞고 자신들을 이 지경까지 내몬 거대한 힘을 원망하며 피눈물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한다. 권좌에 앉은 자들아. 이 사람들의 피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권력이 있는 너희들이 마땅히 보듬어 안아주어야 할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향촌 주민들에게 이 지역이 철거된다고 통보된 것은 2004년 말 이었다. 지역 주민의 기억에 의존해 그 때가 아마 2004년 11월에서 12월 사이 쯤 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회의를 하고 대책위를 꾸렸다. 그 와중에 작년(2005년) 한 해 동안 이 지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사건은 무려 100여 건에 이른다. 이것은 지역 주민들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다. 비록 소방서에서 보내온 공식 자료에 의하면 작년 가을이 되기 전까지 24건의 화재 기록이 있다. 이 화재들은 이 지역의 빈 집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한 지역에서 한 해에 빈 집을 대상으로 그 정도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경찰 수사를 안 거치고도 이게 방화일 거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향촌 주민들이 철거에 반대해 저항해 온 지가 1년이 넘어섰다. 왜 1년여의 기간동안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이렇게들 버티고 있었을까? 왜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들은 가진 자들이 아니다.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도 부지기수이며 사업이 망해 가족들과 이 지역으로 들어와 산 사람들도 있고 쉰이 넘은 어미가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 뒷바라지 하며 살았고 간헐적인 간질증세로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엄마가 여기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왜 1년동안 돈 벌어서 이사가지 않았냐는 질문은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이 사람들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보증금 백만원에 월세 10만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4만원, 철거되는 지역인 줄 모르고 집주인의 양해를 받아 빈집에 들어와 상하수도요금,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만 내고 살던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이 지역은 철거될 지역이고 국가에서 땅을 매입했으니 며칠까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오. 세입자들인 당신들에겐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소.” 라고 요구한다면 이 사람들은 과연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기껏해야 제2의 향촌마을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상황이 좀 나은 경우일 때 가능하다. 이사를 간다고 해도 그 지역도 역시 환경개선지구로 명칭되어지고 머지않아 또 철거촌이 되겠지.
집은 며칠새 거의 다 헐리고 몇 채 남아 있지 않다. 24일 현재 행정대집행 마지막 날이다. 구청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핏켓을 들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다. 할머니 한 분이 통곡을 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해. 나 저기(구청) 가서 죽을래.” 땅을 치고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하신다. 시민단체와 불교계 스님과 주민협상단이 구청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구청측에서는 주민들만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주민들과 구청측의 비공개 협상이 시작됐다. 무슨 말들을 했을까? 구청은 현재 구청장이 없는 대행체제로 움직인다고 한다. 구청장이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란다. 구청장이 없는 가운데 조용히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결론이 어떻게 났어요? 철대위(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협상이 아니라 대화였다는 말만 한다. 주민들 표정이 씁쓸하다. 대책위 사무실 건물은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거리로 쫓겨나진 않겠구나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 사람들은 느낀다. 이 사건이 조금 조용해지면 법을 앞세워 내쫓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면 철거촌 한쪽 귀퉁이에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 하나?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서 돌아온다. 오늘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반겨주고 같이 놀아주고 학교 공부를 보아줄 기력들이 없다. 오랜 기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생활한 어른들에게 감기는 기본이고 점점 근육도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 같다. 계속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도 이런데 천막생활은 정말 안되겠구나 생각한다. 이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공부방 선생님들은 말한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도 보기가 싫었을까? 환경개선지구라는 명칭을 붙여 가며 건물을 부수고 이들을 내쫓게. 이들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라고 내어 쫓았을까? 그러면 또 노숙한다고 그 거리에서 쫓아내겠지. 외국 어느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낡고 허름한 동네는 존재한다. 미국에도 콘테이너 상자 속에 들어가 사는 빈곤계층이 있고 일본에도 이탈리아에도 가난한 동네는 있다. 오히려 그런 동네를 유서가 깊다는 이유로 그냥 놔두는 나라들도 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적은 돈이나마 한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을 보기 싫은 곳이라며 부수고 그들을 쫓아내는 것인가?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 앞서 국가는 마땅히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을 거리로 쫓아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글 : 재원)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지역에 살며 같은 교회에 다니고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어떤이는 권좌에 앉아 사람을 희롱하고 어떤이는 가진 것 없다는 이유로 눈 비 바람 결에 그것들을 고스란히 맞고 자신들을 이 지경까지 내몬 거대한 힘을 원망하며 피눈물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한다. 권좌에 앉은 자들아. 이 사람들의 피눈물 흘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권력이 있는 너희들이 마땅히 보듬어 안아주어야 할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향촌 주민들에게 이 지역이 철거된다고 통보된 것은 2004년 말 이었다. 지역 주민의 기억에 의존해 그 때가 아마 2004년 11월에서 12월 사이 쯤 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회의를 하고 대책위를 꾸렸다. 그 와중에 작년(2005년) 한 해 동안 이 지역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사건은 무려 100여 건에 이른다. 이것은 지역 주민들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다. 비록 소방서에서 보내온 공식 자료에 의하면 작년 가을이 되기 전까지 24건의 화재 기록이 있다. 이 화재들은 이 지역의 빈 집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한 지역에서 한 해에 빈 집을 대상으로 그 정도의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경찰 수사를 안 거치고도 이게 방화일 거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향촌 주민들이 철거에 반대해 저항해 온 지가 1년이 넘어섰다. 왜 1년여의 기간동안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이렇게들 버티고 있었을까? 왜 이렇게 힘겨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들은 가진 자들이 아니다.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도 부지기수이며 사업이 망해 가족들과 이 지역으로 들어와 산 사람들도 있고 쉰이 넘은 어미가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아이 뒷바라지 하며 살았고 간헐적인 간질증세로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엄마가 여기에 살고 있었다. 이 사람들한테 왜 1년동안 돈 벌어서 이사가지 않았냐는 질문은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이 사람들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보증금 백만원에 월세 10만원,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4만원, 철거되는 지역인 줄 모르고 집주인의 양해를 받아 빈집에 들어와 상하수도요금, 전기요금 같은 공공요금만 내고 살던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이 지역은 철거될 지역이고 국가에서 땅을 매입했으니 며칠까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시오. 세입자들인 당신들에겐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소.” 라고 요구한다면 이 사람들은 과연 어느 곳으로 가야 할까? 기껏해야 제2의 향촌마을로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도 상황이 좀 나은 경우일 때 가능하다. 이사를 간다고 해도 그 지역도 역시 환경개선지구로 명칭되어지고 머지않아 또 철거촌이 되겠지.
집은 며칠새 거의 다 헐리고 몇 채 남아 있지 않다. 24일 현재 행정대집행 마지막 날이다. 구청앞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핏켓을 들고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다. 할머니 한 분이 통곡을 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해. 나 저기(구청) 가서 죽을래.” 땅을 치고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하신다. 시민단체와 불교계 스님과 주민협상단이 구청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구청측에서는 주민들만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주민들과 구청측의 비공개 협상이 시작됐다. 무슨 말들을 했을까? 구청은 현재 구청장이 없는 대행체제로 움직인다고 한다. 구청장이 선거에 출마했기 때문이란다. 구청장이 없는 가운데 조용히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결론이 어떻게 났어요? 철대위(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협상이 아니라 대화였다는 말만 한다. 주민들 표정이 씁쓸하다. 대책위 사무실 건물은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거리로 쫓겨나진 않겠구나 생각하니 조금 안심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다. 이 사람들은 느낀다. 이 사건이 조금 조용해지면 법을 앞세워 내쫓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면 철거촌 한쪽 귀퉁이에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 하나?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아이들이 하나 둘 학교에서 돌아온다. 오늘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반겨주고 같이 놀아주고 학교 공부를 보아줄 기력들이 없다. 오랜 기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생활한 어른들에게 감기는 기본이고 점점 근육도 뻣뻣하게 굳어오는 것 같다. 계속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도 이런데 천막생활은 정말 안되겠구나 생각한다. 이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공부방 선생님들은 말한다.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고.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도 보기가 싫었을까? 환경개선지구라는 명칭을 붙여 가며 건물을 부수고 이들을 내쫓게. 이들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라고 내어 쫓았을까? 그러면 또 노숙한다고 그 거리에서 쫓아내겠지. 외국 어느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낡고 허름한 동네는 존재한다. 미국에도 콘테이너 상자 속에 들어가 사는 빈곤계층이 있고 일본에도 이탈리아에도 가난한 동네는 있다. 오히려 그런 동네를 유서가 깊다는 이유로 그냥 놔두는 나라들도 있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적은 돈이나마 한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을 보기 싫은 곳이라며 부수고 그들을 쫓아내는 것인가? 힘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 앞서 국가는 마땅히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들을 거리로 쫓아내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글 :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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