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2000년부터 주 5일 근무를’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겨울투쟁’에 들어갔다. 주 44시간인 법정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해 삶의 질 향상과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쪽은 어려운 기업 여건 등을 이유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 허영구 부위원장,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상무, 노사정위원회 이목희 사무처장이 만나 노·사·정 3자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12월9일 진행됐으며, 인터넷 나우누리와 PC통신 나우누리를 통해 생중계됐다.
사회=노동시간 단축 문제에 대한 노사 당사자의 기본입장을 들어보자.
허영구=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OECD 주요국가들에 비해 적어도 1천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두번째는 실직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공유하며 기존의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김영배=IMF 위기 때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측면에서 근로시간 단축 주장이 많았고, 요즘 위기가 해소되니까 다시 인간다운 삶 측면이 많이 강조되는 것 같다. 사용자쪽도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충분한 휴식과 휴가가 필요하다는 데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빨리 이뤄질 경우 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휴일·휴가를 안 쓰는 문제
사회=현재의 노동시간은 과연 많은 것인가, 적은 것인가? 외국과 비교해보면 어떠한가.
허=우리나라는 IMF 이전인 97년 주당 노동시간이 46.7시간이었던 것이 IMF 이후 45.9시간으로 줄었다가 올 상반기에 다시 47.1시간으로 늘었다. 연간으로는 2452시간이다. 선진국에 비해서 1천시간 이상 많고, 우리와 경제력이 비슷한 멕시코 등과 비교해도 700∼800시간 많다.
김=우리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7천달러라면 비슷한 수준의 나라와 비교해야지 2만∼3만달러되는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우리의 근로시간은 법정근로 44시간 외에 연장근로를 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연장근로를 덜하면 실근로시간은 반드시 줄게 돼 있다.
허=임금에서 기본급 비중이 낮기 때문에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생계가 꾸려지지 않는다. 연장근로는 사용자 요구가 있지만 노동자도 연장근로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김=근로자들이 휴일·휴가를 안 쓰는 문제도 있다. 근로자들이 휴일·휴가를 다 찾아쓴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실제 의무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주당 37.8시간밖에 안된다. 연간 법정공휴일이 17일이고 외국에 없는 월차휴가가 12일, 연차휴가가 7일 아니냐? 그러면 연간 40일쯤 빠진다. 이 40일을 근로자들이 찾아서 쓴다고 가정하면 주당 평균 37시간이 남는데 이것은 유럽 선진국들의 단체협약상 근로시간과 비슷하다.
사회=노동자들이 휴가를 쓰면 노동시간이 단축될 거라는 이야기인데.
허=단위사업장에서 연말이면 연월차수당을 못 주겠으니까 휴가를 가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연말에는 일이 밀려 갈 수가 없다. 게다가 요즈음엔 있는 사람도 자르는 상황이다. 평소에도 노동자는 마음대로 휴가를 가고 말고 할 재량권이 없다.
김=사무직은 휴가를 쓰고 나오더라도 고유업무가 기다리니까 쉬고 난 뒤 결국은 나와서 그 일을 다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쉬기 곤란하다는 얘기를 이해한다. 그러나 생산직은 본인이 월차휴가를 신청하면 허락하지 않을 수 없다. 선택권은 근로자들에게 있다.
이목희=선진국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 노동시간은 엄청 길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그리 길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처한 경제·사회적 조건과 노동자의 삶의 질, 미래지향적 비전 등을 놓고 볼 때 노동시간은 단축돼야 한다. 지금은 우리 조건에서 단축 속도와 폭 등을 협의하기 시작할 시점이라고 본다.
사회=노동시간 단축효과에 대해서도 노사간 인식이 엇갈리는 것 같다.
김=사무직은 근로시간이 단축돼도 일은 제 시간에 맞춰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심리적 효과가 생산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산직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그만큼 직접적으로 근로자를 더 투입해야 한다. 따라서 비용이 많이 증가하게 된다.
과연 지금 적기인가
허=법정 근로시간을 현재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면 사용자 입장에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니 실노동시간을 줄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삶의 질에 중요한 효과가 나타난다. 최근 주 35시간으로 단축한 프랑스는 1년여 만에 12만명 정도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한다면 170만명 정도의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여유가 생긴다. 이로써 정리해고도 막을 수 있게 된다.
김=주당 44시간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해 40시간에 끝내버린다면 4시간이 남지 않나? 이 시간에 근로자들이 쉬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 향상을 근로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근로시간 단축이다. 그런데 우리가 47시간을 일한다고 치자. 이 상태에서 법정 근로시간인 44시간을 40시간으로 낮추면 47시간의 일감은 그대로 있고, 연장근로수당을 계산하는 상한선만 40시간으로 바뀐다. 연장근로수당만 더 받아가는 결과가 되지, 실질적으로 근로시간은 줄지 않는다.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것은 편법적 임금인상에 가깝다.
허=그렇다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누구의 책임이냐? 물론 노동자의 책임이 있지만, 전체 경영구조 문제와 기술혁신 문제가 책임의 70∼80%를 차지한다.
사회=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 증대 효과는 어떻게 보나?
김=1주일에 44시간을 혼자서 일하다, “나는 22시간만 일할 테니까 한 사람을 더 고용합시다”라고 제안했다고 치자. 어차피 44시간 할 것을 22시간씩 나눠서 2명을 쓰니까 사용자 입장에서는 마찬가지고 설명할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임금은 44시간 시절의 것을 그대로 받아가면서 일만 22시간 하겠으니 한 사람 더 고용하자고 한다면, 그건 힘들다. 그래서 고용안정을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근로자들이 임금삭감을 감수할 것이냐가 현실적 문제다.
이=노사 모두 솔직하게 말하자.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기업의 부담이 당연히 늘어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와 고용창출의 두 가지 효과가 동시에 나타난다. 생산성이 얼마나 향상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또한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할 경우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
사회=다음으로 지금이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할 적기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여러 가지 경제·사회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허=정부 발표는 현재 실업률이 4%라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실제 비율이 10%가 넘는다고 생각한다. 또 임시직 비율이 53%나 되는 것은 노동시간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고용구조가 극도로 불안한 만큼 지금 적절하게 노동시간을 나누면서 삶의 질과 생산성을 함께 향상시켜야 한다. 작년에 좀 더 고용문제가 심각했으니 작년에 됐으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국회에서 논의해 내년 임시국회에서라도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김=지금은 우리가 IMF 위기를 겨우 벗어나 기업들이 조금씩 활력을 찾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겨우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해야 되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특히 중소기업들은 대단히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기본적으로 산업현장에서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노사가 합의해서 자기 회사의 실정에 맞는 단축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그런 마당에 갑자기 법정근로시간을 손댈 이유가 없다.
사회=만약에 단축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기업과 노동자, 정부 등이 어떤 식으로 분담해야 할지를 논의해보자.
허=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임금삭감은 할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기본 입장이다. 외국의 경우도 그랬다. 프랑스에서도 당장 생산성이 늘어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거냐는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때도 임금삭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의됐다. 다만 향후의 임금인상분은 어떻게 할 것이냐를 두고서는 기업의 생산성이나 지불능력에 따라 노사간 협의를 거치면 된다. 다음으로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사용자들이 부담하는 사회보장 관련 각종 기금 등을 정부가 보전해주고, 실업기금을 활용하거나 세제개혁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해줘야 한다.
김=임금을 삭감하지 않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실제로 40시간만 일하면서 종전의 44시간치의 임금을 계속 받는 결과가 된다. 그것만 해도 임금인상률이 10%다. 시간당 임금인상 효과에다 연장근로수당의 할증률 50%를 적용하면 실제 인상률은 14.7%에 이른다. 이것은 대기업도 감당하기 힘들고, 중소기업은 말할 필요도 없다.
허=세계 모든 나라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했을 때 생산성이 향상됐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래도 안 될 경우는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거나 임금을 주식으로 받는 등의 방법들을 쓰고 있다. 무조건 임금삭감 없이는 논의 자체도 안 된다는 건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다.
김=근로자들은 일시적으로 임금이 삭감되어도 바로 협상해서 임금을 올린다. 근로자들은 그러니 항상 제몫을 커버하게 돼 있다. 그리고 외국의 경우 단체협상을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시키지, 법정 근로시간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독일만 해도 법정근로시간은 여전히 48시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법정근로시간 단축보다는 가급적 회사마다 단체협약 갱신을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정근로시간을 손대면 대한민국의 몇만개 기업을 일률적으로 보호하기에 부담이 많다.
이=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도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부담을 장·단기적으로 덜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임금동결에 합의한 예도 있다. 지금 IMF에 있다가 회복기에 들어서는 우리 현실에서는 이 밖에도 추가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법정이 아닌 실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 말한다면 노조도 당연히 임금삭감의 부담을 안아야 한다. 다만 어려운 조건 속에서 노동자만 부담할 수 없으니까 사용자와 정부가 부담을 어떻게 나눠가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단축속도 너무 빨랐다?
허=노동자들은 이미 고통을 분담해왔다. IMF 이후에 빈부격차가 훨씬 늘어났다. 그러니까 당장 있는 임금을 깎았다가 나중에 임금협상해서 올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기보다는 현재 임금을 그대로 유지하되 기업의 지불 능력, 매출 등을 봐가면서 향후 인상분에 대해서는 터놓고 노사간에 대화하는 것이 노사평화를 위해서도 좋다.
김=향후 임금인상 자제 약속의 신뢰성 문제는 여기서 논의하는 게 의미가 없다. 단위사업장에서 결정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IMF 전에 주당 46.9시간이었는데, 그 전에 52, 53시간대인 적도 있었다. 불과 10년 사이에 이렇게 됐다. 외국하고 비교할 때 좀 부담스럽다.
허=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 문제와 실업 문제를 해결한다는 큰 대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한 대원칙에 동의한다면 노사정 3자의 비용 분담은 여러 방식이 있다.
이=노동조합이 임금삭감을 일부 받아들이고 사용자도 노동시간 단축만큼 임금삭감을 하지 않으며, 정부도 단축을 시행하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한다든지 하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런 노사정 분담 모델은 서구에 많이 있다. 노사정위 차원에서 그런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성실하게 논의했으면 한다.
사회=주 40시간, 즉 주 5일제로 전환은 학교 교육, 금융, 그 밖의 공공서비스 변화를 함께 수반하는 등 우리 사회의 운영틀을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큰 문제다. 오늘 토론을 계기로 노·사 경제주체 외에 사회 각 영역에서 좀더 활발한 논의가 벌어졌으면 좋겠다.
사회·정리 박창식 기자 (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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