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연합뉴스) 지일우특파원= 보리스 옐친(68) 러시아 대통령은 31일 사임을 발표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창백하고 근엄한 표정을 한 채 반국영 ORT TV에 나와 건강에 대한 고려와 함께 후진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금세기 마지막 날인 오늘 사임한다’고 발표하면서 ‘나는 떠난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은 ‘임기가 6개월 더 남았지만 권좌에 남아 있지 않고 당장 물러날 것’이라면서 러시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과 자신의 행정부가 통치과정에서 저지른 일련의 실수들에 대해 사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신들의 꿈이 실현되지 못한데 대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러시아는 새로운 정치인들, 또 지적이면서도 강력하고 정력적인 새 인물들과 함께 새 밀레니엄을 맞이해야 한다’면서 ‘오랫동안 권좌에 있던 사람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함께 내년 3월 27일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사임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선거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옐친 대통령이 전격 사임함에 따라 푸틴 직무대행은 당초 내년 6월에서 3월로 앞당겨진 대통령 선거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크렘린이 현재 각종 부패의혹과 불법행위, 대통령 가족들의 부패 연루설 등으로 심각한 정치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옐친 대통령이 조기 사임하기로 결정한 것은 최근의 총선 승리 기세를 활용,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집권당의 전략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현지 정치 분석가들은 옐친 대통령의 조기 사임이 러시아에 또 다른 정치위기를 불러 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잦은 병치레를 해 온 옐친 대통령은 지난 96년 대선에서 겐냐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를 누르고 재선됐으나 부패 등으로 시장경제 도입을 비롯한 일련의 개혁.개방정책들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한편 지난 8월 총리에 오른 푸틴 직무대행은 이날로 예정됐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방문일정을 즉각 취소하고 정부 각료들과 만나 향후 정국 운영 방안 등을 논의했다.

옐친 대통령의 사임이 앞으로 러시아 정부 구성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ciw@yonhapnews.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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