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지기 : 역사와 민중앞에 겸손해져야…
이혜연/ 평화인권연대 회원
평화인권연대 사무실에 들러 요즘 듣고 있는 한겨레 문화센터 윤소영 교수 강좌
가 재밌고 쇼킹하다고 한마디 했다가 얼떨결에 원고를 떠맡았다. 이원재 상임
활동가의 유언의 압력 때문에 거절도 못하고… 윤교수 강좌가 재밌고 쇼킹했던
건 사실이다. 내가 몰랐던 많은 지식, 이론적 배경, 자본주의의 역사… 하지만 아
직까지 내게는 느낌으로 다가올 뿐 내용에 대해 남에게 설명할 만큼의 이해수
준은 못된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도 걱정이다.
허나 어쩌랴 글은 써야하고 앗, 이런 노래를 이렇게 사소한 경우에 인용하면
안되겠지.
어쨌든 시작해본다.
내 기억에 이번 강의의 주된 축은 세계체계론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 특
히 미국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었다. 남한 사회성격 논쟁을 비롯한 80년
대 여러 논쟁들을 반추해보면서 결여되어 있었던 개념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또한 현재 세계 자본주의가 처해있는 상황과 전망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맑스주
의에 아리기의 세계체계론 입장과 브뤼노프의 근대경제학 비판을 결합하여 자
본주의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 강의의 내용 중에 내 기억에 남았거나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째,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개념정립. 대략적인 흐름만 알고 있었을 뿐 둘의
개념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지 못하였는데 윤교수는 자본주의 변화·발전의 이론
적 배경이 되었던 경제학의 역사를 설명하며 원래의 개념과 그것이 어떻게 신
자유주의로 넘어가는가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
에서 나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아픔을 느껴야 했다. 근본적인 변화
는 아니지만 개량으로서 그 의미가 전무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던, 그리고 지금
도 노동계에서 많이 주장되고 있는 노동자 경영참가나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이
헤게모니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도전국(대표적으로
독일) BG의 비판인 보수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에 나는 그동
안 섣불리, 무책임하게 생각하고 말했나 돌아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보수주
의는 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거부 즉 反경제학으로서 사회학, 나아가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였는데 비스마르크와 히틀러가 그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자
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맞대결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보수주의는 패배하
고 자유주의는 한 층 더 근대화되어 미국으로 세계자본주의 헤게모니가 이동하
게 되는데 전후 미국은 독일에 대한 원조의 대가로 독일에도 자유주의를 심고
미국과 같은 법인자본화를 추진한다. 이 때 독일은 미국과 달리 저임금체제
를 유지하면서 저임금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사공동결정, 경영참가, 사회보장제도
등 여러 제도를 도입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로서 가부장제적 국가
권력에 기반한 보수주의라는 것이다. 보수주의세력이 전후에도 다시 주도권을
잡은 독일에 대해 역사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는 윤교수의 말은 왠지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또 하나 더욱 쇼킹했던 것은 거의 유일한 살길이라 여겼던 노동시간단축, 일자
리나누기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로 넘어가는 새케인즈학파의 정책개혁으로 완전
고용을 포기하고 금융이익을 우선하는데 있어 정책의 실행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실업 조직화의 일환으로 임금·고용의 신축성 제고를 위해 효율성 임금과
함께 주장되는 내용이란 사실이다. 으… 도대체 어떤 주장을 하란 말이야…
이외에도 윤교수는 공황논쟁을 소개하면서 영국과 미국의 이윤율 주기 분
석과 함께 TRPF(이윤율저하경향)가 관철/저지되었던 역사적 시기를 설명하고 그
당시 헤게모니국가의 정책이 개발도상국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도 함께 설명
하고 있다. 현재 금융세계화, 정보화에 힘입어 미국의 이윤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새로운 체계적 축적의 상승을 말해주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국자본
주의의 특성인 초민족적자본(TNC)을 대체하는 새로운 자본형태가 출현하지 않
았으며 단기적 이윤에 치중하는 투기적 성격과 임금저하로 인한 노동불안정성
등으로 인해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대답을 내리고 있다. 즉 맑스의
공황에 대한 개념 구분대로 변화로 돌파할 수 있는 Grenze (limit of
variation)가 아니라 Schranke (barrier) 즉 자본주의가 절대 넘을 수 없는 벽,
붕괴가 다가오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것 외에도 나의 뒤통수를 때린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
다. 시종일관 구체적인 역사와 이론적 배경을 함께 설명하는데 모든 것이 지금
의 전면화된 신자유주의로 수렴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들이었다. 운동
진영까지도… 신자유주의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강의를 듣고 나오면서 거의
매번 ‘도대체 할게 없어’, ‘몇십년 후 대불황이 올 때까지 즐겁게라도 살아야겠
다’는 둥 무거운 마음에 투덜거렸지만 아직 아무도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은 없
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알아야 할, 딛고 일어서야 할 토대라고 해야하나. 역사와
민중앞에 겸손해져야하나… 어쨌든 나에겐 유익하고 재밌는 그러나 끔찍한 강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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