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를 잃어버린 노동계급

「르몽드 디쁠로마띠끄」1월호 까린 끌레망

보리스 옐친의 갑작스런 사임으로 (17개월간 재직한, 옐친의 다섯 번째 총리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3월 26일로 예정되어 있는 러시아 대선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체첸 전쟁에 대한 푸틴의 강경한 입장은 12월 총선에서 보여진 것처럼 그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가져왔다. 현재 그의 지지도는 60%에서 75%에 이른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노동 문제가 다뤄질 것인가?

대선이 점차 다가옴에 따라 많은 정당들이 서둘러 자신들의 강령에 사회적 색채를 가미하고 있지만 어떤 당도 노동 분야를 자신들의 타겟으로 삼고 있지 않다. 몇몇 정치 지도자들은 가끔씩 과학, 청소년, 공공부문, 복지수당 등의 미래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노동이나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해서는 과보호적인 노동법이나 무역과 생산의 전면적인 탈규제에도 불구하고 잔존해있는 일부 “행동 양태”를 비난하기만 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과거지향적”, “무책임”, “기생적”,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등의 어휘로 묘사된다. 이는 정치지도자들의 수많은 험담이나 종종 과장되곤 하는 언론인들의 주석, 혹은 사회학자들의 단순한 평가가 전달하는 이미지이다. (경제활동인구의 58.9%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노동자 국가의 지배계급”이라는 신화적 범주로 위치지운 소비에트 체제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실제 현실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이러한 공식적 수사에 속은 노동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러한 말장난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 일조했으며 이제는 잃어버린 자기확신을 부여하였다.

질(Zil) 공장은 모스크바 중심부에 있는 거대한 산업시설이다. 소련 지도자들은 질을 자동차산업의 선두주자이자 경제 및 사회적 성공의 모델로 제시하곤 했다. 소련을 방문한 해외 고위인사들은 이 활기찬 쇼윈도우를 통해 이 나라를 보았다. 질은 대량생산과 고임금, 포괄적인 양질의 사회복지, 엘리트 노동자층, 형식적으로 확립된 노동자 위원회들의 공동경영 등을 갖춘 거대한 콤비나트였다. 이 회사는 “사회주의적 경쟁” 덕분에 종종 생산성 기록을 깨뜨릴 수 있었다. “노동 영웅”들은 풍부하게 공급되었고 노동자들은 이곳에서의 노동에 긍지를 갖고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모스크바 거주권(propiska)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려 이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줄을 섰다. 노동자들은 당의 신화가 주장하듯이 자신들이 사회의 지도자라고 믿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신화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자랑해 보이고 노동자 집단의 성원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사회적 향상을 열망하도록 고무하였다.

질 노동자들은 이제 모스크바 투자자들과 기업인들의 계속되는 경멸에 맞서야만 한다. 이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렸고 이제 더 이상 적응하고 행동하는 자신들의 능력이나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믿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말 속에서 자부심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런 미래도 없이, 모든 것이 불명확한 채 궤멸”된 것처럼 느끼고 있고 자신들을 “잘못 고안된 기계 속의 쓸모없는 나사”에 비유하며 “이제는 인간으로 대접받을 가치가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많지는 않았지만 질 노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집단행동이나 집회, 부분 파업을 조직한 경우에 경영진이 말과 행동으로 보인 반응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항의가 정당한 지 의심을 품을 만한 것이었다. 1996년 2월 노동자들은 5개월간 밀린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기 위해 결집하였다. 회사 관리자는 가용할 돈이 없으며 임금을 요구할 곳은 경영진이 아니라 정부라고 설명하였다. 노동자들의 집회는 혼란 속에 해산하였다.

보다 적극적인 노조 대표단이 부불 잔업 노동에 항의하여 캠페인을 벌인 몇몇 경우에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공장의 최대 주주이다)은 낮은 생산성을 비난하고 공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부치라고 노동자들을 몰아세우는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이후 피고용인들은 노동조합 대표들을 불신하면서 “계속해서 항의하고 말만 하지 말고 일하러 돌아가라”고 요구하였다!

회사 관리자들은 권력과 물질적 성공-“현대적” 세계와 “시장 세력들”에의 성공적 적응의 징표-의 정당성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무시되고 쓸모없다고 느낀다. 그러나 (1991년 이후 국내총생산이 50%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생산을 계속한다면 이는 대부분 노동자들이 존재하며 공장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산 자원에의 낮은 투자와 노후한 장비는 대부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심지어 임금도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보상된다. 가스나 석유 같은 수익성 좋은 부문을 제외하고는 임금은 극히 낮으며 종종 빈곤선 이하이다.

‘우리는 노예에 불과하다’

1998년 8월 금융위기로 인해 임금의 실제 가치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1). 1992년 물가가 자유화된 이후 노동자들은 이미 구매력의 절반을 잃은 상태였다. 인플레이션과 산업 생산의 상대적 상승 덕분에 그때까지 체불된 임금이 지불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적 조건이 변화한다면 전반적인 경향이 역전될 수 있다. 보건, 교육, 예술 등의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노동대중의 평균 임금 수준은 훨씬 낮다. 생산직에서는 하락 경향이 훨씬 더 빠르고 갑작스러웠다.

실제 소득 수준은 임금으로만 측정될 수 없다. 소득의 상당 부분은 현물 임금과 복지수당 등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물 임금은 임금 삭감의 한 방편이다. 이에 상당하는 현금액이 지급 이후에야 알려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기업에 속해있는 사회 시설(육아방, 병원, 캠프장, 주택)들 또한 그 질이 떨어지고 있으며 (현재 질을 소유하고 있는 모스크바 투자자들이 결정한 대로) 많은 경우 시당국에 인계되거나 민영화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개입을 축소하고 있으며 이제 더 이상 기업에 의해 제공되지 않는 서비스들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질병, 정리해고, 실업 등의 일상생활의 혼란으로부터 점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충분히 높은 수준의 생산과 이윤율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의 대규모 산업 콤비나트들만이 전통적인 사회복지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볼가주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자동차 콘소시엄인 가즈(Gaz)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곳의 노동자들은 생계비에 훨씬 못미치는 임금(7월 현재 5백에서 천 루블 정도이며 일부는 이보다도 적게 받는다)을 받지만 산업지구 내의 주택(대부분 회사 소유)을 무상이나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받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결점은 노동자들이 사실상 주거지역의 노예가 되어 이로부터 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그 결과 이들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곳의 삶을 조직화하는 경영진의 손쉬운 먹이가 되어버린다. 결국 사회복지에의 접근권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고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무엇보다도 간부진과 “자격있는” 노동자들에게 지정된다.

노동자들의 과도한 헌신과 일종의 자기부정을 끌어내기 위해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제가 유연한 노동력 관리와 동행한다. 임금을 증가시키고 자신이 유용함을 입증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동하면서 가즈의 피고용인들은 결국 자신들의 노동을 일종의 노예노동으로 보게 되었다. 주물 작업장에서 일하는 타티아나가 말하듯이, “우리가 무엇을 하건 우리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항상 이 모두로부터 이익을 얻고 우리는 그저 노예일 뿐이다!” 조립 노동자인 사차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개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가 계속 출근하는 한 어느 누구도 우리의 노동조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계속 노동한다. 노예와 똑같다!”타마라는 기계설비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압력에 용감히 맞서기 위해 노력하며 토요일 근무를 거부하고 있다. 자신의 경작 대부지를 갈아 겨울 동안 식료품을 재배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경영진의 술책을 폭로하였다. “잔업 근무에 대해 경영진은 훨씬 낮은 수당을 지불한다. 그들은 토요일 근무가 필요한 이유가 우리가 주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원자재가 제 시간에 배달되지 않거나 컨베이어 벨트가 고장나는 게 우리의 잘못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보너스도 받지 못하고 더 나쁜 일은 제대로 보수를 받지도 못하는 잔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하는 삶과 불안정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시간을 증대시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경영진의 창의력에 한계가 없다. 이는 무력한 법률에 의해 악화된다. 타마라 주변에서 일하는 이고르는 삯일을 한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작업장까지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추가적인 노동은 그의 임금에 계산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그의 생산량을 깎아먹는다.

이것이 러시아가 “보다 많은 유연성을 달성하는 자유주의적 캠페인의 전위”에 합류한 방식이다(2). 사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노동시간과 수행해야 할 직무, 임금, 정규노동, 작업 장소 등의 결정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거의 전적으로 고용주들의 처분 아래 있다는 것이다. 착취는 소련 시절 이래 진화해왔다. 착취는 “이행”기의 탈조직화에 근거하고 있지만 일자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물질적, 정서적 귀속에 기반하여 작동한다. 착취는 그만큼 잠복적이다. 때때로 이전 체제의 압박으로부터의, 그 체제의 엄격한 시간표, 불변적 기준, 규약, 국가 통제 등으로부터의 “해방”과 혼동되기 때문이다.

변화로부터 이익을 얻어낼 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삶의 수준을 향상시키거나 보다 나은 일자리를 구하고, 혹은 자유 계약으로 일하거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전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물질적 자산도 없고 영향력있는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해방”은 이들을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어넣었으며 제도적, 집단적 조직체나 어떤 다른 연대 형태들에의 의존을 금하고 있다. 자유로우면서 점점 가난해진다면 노동자들이 이 과정에 책임있는 것일까? 러시아의 경구대로 “익사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은 배를 난파시킨 사람들의 책임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잔인한 딜레마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자원이나 권력이 없이 자신들이 새롭게 발견한 자유를 활용하도록 기대받는다. 그러나 저항할 경우 이들은 어쩔 수 없는 거지들, 사회 현대화의 쓸모없는 방해물이라고 비난받는다.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3)” 이들의 일상적인 경험은 방편은 주지 않은 채 스스로를 주의하라고 요구하는 책임의 윤리학이 얼마나 냉소적인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이러한 신조를 준수하며,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럭저럭 헤쳐나가고”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며” “스스로를 준비시키고 타인에게 아무 것도 요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들은 잔업을 하거나 작업장에서 도둑질을 하고, 공장이나 다른 곳에서 “비공식적인” 일을 수행하거나 제2, 심지어 제3의 일자리를 갖고, 집안에서 일을 하거나 경작 대부지에 채소를 키우고, 혹은 고작 몇 루블을 절약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찾는 등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수지를 맞춘다”. 이 모든 활동과 창조적인 노력은 자신이 무언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낳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는 의문에 던져질 수 있다. “그럭저럭 헤쳐나가는 것”은 항상적인 불안정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일자리는 어느 순간엔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얼마간의 돈을 가져다주는 일이 어느날 갑자기 보람없어질 수 있다. 몇 시간의 폭풍이 감자 생산고 전부를 파괴할 수도 있다. 조직범죄와 관련되거나 그렇지 않은 한 명의 사장이 며칠간의 노동의 결과를 싹 가져가 버릴 수도 있다.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비공식적이고 무시받는 기회와 개인적 관계, 약속에 종속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이제 공식부문에서 뿐 아니라 비공식 부문에서조차 일정 정도의 안정성을 가질 수 없다. 오히려 노동하는 삶은 불안정성과 불확실성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노동유연성을 실험하는 데 있어 서구의 노동자들보다 유리한 출발점에 서있다. 러시아의 자유시장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이 특히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사회적 퇴보, 노동자 통제라는 교의와 실제 현실과의 불일치, 소비에트 체제로부터 물려받은 민중들의 의식의 혼란은 신자유주의를 향한 길을 열어놓았다. 과거를 어둡게 채색함으로써 이는 또한 민중들에게 사회주의를 상기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 까린 끌레망은 빠리대학 사회학 교수이다. 저서로는 2000년 에디숑 실렙스(Editions Syllepse, Paris) 출판사에서 발간예정인『시장 혼란 속의 러시아 노동자들 1989-1999(Les ouvriers russes dans la tourmente du march 1989-1999)』이 있다.

(1) 1998년 평균 노동임금은 1,000루블(미화 125달러)이었다. 그후 임금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지만 루블화는 폭락(1,000루블은 현재 약 25달러이다)하고 물가 역시 상승하였다. 빈곤선 또한 과소평가되고 있다. 가령 1999년 초반에 빈곤선은 924루블로 측정되었다.

(2) 노동관계에서의 변화에 대해서는 사이먼 클라크(Simon Clarke)가 편집한 『이행중인 노동관계. 러시아에서의 임금, 고용, 산업갈등(Labour relations in transion. Wages, Employment and Industrial Conflicts in Russia, Edward Elgar, Cheltenham, 1996)』, 베로니카 카발리나(Veronika Kabalina)가 편집한 『기업과 시장: 이행기에서의 경영기법과 노동관계의 변화(Predprijatie i rynok: dinamila upravlenija i trudovyh otnoshenij v perexhodnoj period, Rosspen, Moscow, 1997)』, 그리고 『동유럽 노동포커스』 51, 52호에 실린 데이비드 만델(David Mandel)의 “러시아의 노동계급, 사유화, 노동. ‘충격 요법’ 4년째의 경영관계(The Russian Working Class, Privatisation and Labour. Management Relations in the Fourth Year of ‘Shock Therapy’, in Labour Focus on Eastern Europe, Oxford, no 51, 1995, pp. 23-55 and no 52, 1995, pp. 41-63)” 등을 보라.

(3) 블라디미르 짐펠슨, “러시아의 민간부문: 고용과 임금”(Vladimir Gimpelson, “Tchasnyj v Rossii: zanjatost’i oplata truda”, in Mirovaia Ekonomika i mejdunarodnye ornoshenija no 2, 1997, pp. 29-45); 에두아르드 클로포프 “사회적, 직업적 이동의 한 형태로서의 이차적 활동”(Edouard Klopov, “Vtoritchnaia Zaniatost kak forma social’noj trudovoj mobil’nosti”, in Sociologitcheskie issledovanija, Moscow, no 4, 1997, pp. 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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