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로 본 세상 : 평화지기
만화 ‘뉴욕뉴욕’이 나에게 보여준 것
이수진 :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나의 부모는 날 낳으셨다. 난 고통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나의 부모들은
고통스럽다. -A.랭보
동성애에 대한 나의 묵살과 착각
지금은 아주 복잡한 기분이다. 그냥 지나쳐 버렸으면… 하는 기분. ‘동
성애 커플인 멜과 케인의 이야기’인 만화 ‘뉴욕뉴욕'(이하 NY²)을 읽
고 난 아주 복잡하고 답답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 답답한 기분을
꾹꾹 밟아버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글을 쓸까도 해봤지만, 내가 동
성애자이거나 동성애 인권운동가가 아니기에, 게다가 동성애라는 내용
을 가지고 성 정체성 문제니 뭐니를 거들먹거리며 내용을 확장하기에
나의 전문적 식견은 탈탈 털어도 밥풀 한조각 떨어질까 말까 할 정도
니까… 그래서 솔직하게 쓰기로 했다. 만약, 내실있고 전문적인 내용을
원하시는 독자들이 있다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NY²’이라는 이 만화는 두 차례 날 곤혹스럽게 했다.
첫째는, 만화를 볼 때의 에피소드이다. ‘이거 무슨 내용이냐? 순정만
화지?’하는 고3남동생의 질문에 동성애에 관한 스토리라고 했다. 원고
쓰는데 참고하는 것뿐이라는 말로 지레 둘러대면서… 그러나 놀란 건
오히려 내쪽이었다. 순정만화로 여기고 뚱하던 남동생의 ‘어 그래? 나
동성애에 관심 많쟎아. 나 먼저 보면 안돼?’ 라는 말과 여동생의 비아
냥에 불끈 화를 내며 ‘내가 동성애자니까. 나 00랑 사귀어.’하는 식의
발언들…
난 한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을 듣게 된 셈이 됐다. 듣고 보니까 그럴
만한 경우가 몇 번 있었던 것도 같았다. 난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내뱉는 거 아니냐?’라는 식의 비난
만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동생은 결국 ‘NY²’을 보지 않았다. 결국
난 누군가의 커밍아웃을 묵살해버리고 만 셈이다.
두 번째는 ‘NY²’을 읽으며 떠올랐던 몇 가지 생각이다.
난 한동안 동성애인권운동에 굉장한 관심을 가졌었다. 물론, 당시 대
학 학보의 원고청탁을 위해 동성애 인권운동가인 ‘Come Together{{) 연대 동성애인권운동 모임. 처음 연대학보를 통해 회원모집광고를 냈다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함.
}}’
의
서
동
진
씨나 ‘마음 001{{) 지금은 마음 006. 서울대학교 동성애 인권운동 모임으로 001은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의 수치를
말한다. 0.01%라는.
}}’
의
이
정
우
씨등에게 갖은 청탁노력을 하던 중, 서동진씨 호출번호를 겨우 알게됐고{{) 연대학보사, 대학원 과 사무실등을 수소문했는데 여러차례 연락처가 바뀌었으며 집연락처는 아예 알려
줄 수 없다는 일관된 거절때문.
}}
마
지
막
에
도착한 것은 그의 호출기에 남은 인사말이었다. 그 동안 많은 항의 메시지 등에 관한 간단한 유감표시와 사생활 보호를 위해 호출기를 당분간 폐기하겠다는 것, 몇몇 상담문의했던 학생들은 직접 연락드린다는 것이 대략 그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정우씨와의 통화. 그는 내가 청하는 글 주제가 명확하지 않
다고 했다.{{) 특집기획이어서 몇 가지 주제를 각각 다른 필자로 선정했음. ‘동성애 인권운동의 역사와 개괄적인 상’,
‘동성애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중심으로 한 유사한 개념인 트랜스 섹슈얼(다른 성의 복장과 치장을 하
는 것), 바이(양성애자), 레즈비언 등에 대한 논고’ 등에 대한 내용이었음.
}} ) 아마도 나의 어설픈 동성애 개념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한 탓에 몇차례의 전화통화와 팩스교환 등으로 동성애 개념적인 측면에 관한 장황한 강의를 듣게 됐고, 그것은 내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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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이
었던 그 당시만 하더라도 문화운동 등에 대한 지식이 부재했었기에 그의 현란한 언어구사와 다양한 식견등에 대해 일종의 동경을 갖게 된 것 같다. 그 이후 난 동성애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갖고 과감하게 옹호하는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동성애 인권운동에 관한 관심일 뿐이었다.
사실 내가 동성애자와 그들의 정체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소수의 인권이 편견으로 억
압받는 것이 싫었을뿐 나의 그들에 대한 편견여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우누리의 동성애자 동호회를 통해 그들의 문화나 생각에
접근하면서 나의 동성애에 관한 열광은 시들해져버렸다. 그들 중 커밍
아웃을 한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은 정서가 틀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적어놓은 글들은 너무나 감성적이다 못해 끈적끈적한 사랑에만
도취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단지 순정만화식의 과장
된 ‘미’나 고독이니 슬픔이니 하는 수식어만으로 만들어진 ‘정체성’, 게
다가 섹스 중심의 경험과 그에 따른 고민의 나열…그런 것이 집단적으
로 똘똘 뭉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동성애 인권운동과 관련한 집회나
페스티발 소개가 동인련 등의 명의로 어쩌다 하나 올라와 있어도 그것
을 권하거나 선동하는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게이 까페나 레즈까
페에서 모여서 어떻게 놀았던 이야기나 맘에 들었던 누군가에 대한 사
랑고백 등이 대부분이었다.
동성애에 관한 나의 커밍아웃
이 지면을 통해 난 커밍아웃을 할 셈이다. 그것은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이 아니라 호모포피, 즉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에 가까웠다는 사실
에 대한 커밍아웃이다. 난 그간 내 관심사에 그들의 취향과 문화를 우
겨넣는 식의 발상과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성애 인권운동가에게 열중하면서 오히려 동성애와 이성애를 특수가
공 처리해서 의식속에 영원히 분류 포장한 채 안치시켜두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 하기에 내 머릿속은 여전히 고등학교시절 아는 친구들의
작별 뽀뽀를 보고는 ‘미친 ×들’하며 욕하고 ‘더럽고 지저분하다.’ 며
다투었던 때의 관념에 머무른 채 철저하게 동성애자 인권을 소외시키
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성운동이나 여타 운동의 경험을 통해 현실인식이 부재한 이
론, 즉 가부장제나 결혼제도에 얽힌 무수한 성차별과 여성억압적인 질
서들을 실질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면서 이론만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차이와 연대를 시시때때로 주장하는 우리들 중 몇몇은 어떠한지. 동
성애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반대 의 태도인 ‘무관심’과 ‘회피’의 방식으
로 표명하고 있진 않을까.
뉴욕뉴욕에서 얻은 것들
NY²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통해 난 많은 것을 얻었다.
케인은 게이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비하하거나 증오하는 경향이 있
는 인물이고 멜은 성적학대나 사회에 대한 심한 박탈감과 소외감을 가
지는 인물이다. 케인은 사회의 규정과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싫어
하는 마음을 ‘파트너를 가지면 여러 가지 속박이 생긴다.’라고 표현한
다. 멜의 성장기는 아주 비정상적이고 가족이나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
받았음에도 1부1처제나 정조개념이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
물의 특성을 통한 조화로움탓에 이들의 결합이 이반{{) 이성애자를 일반이라고 할 때 이에 상대되는 의미로 동성애자를 지칭하는 말.
}}이
아
닌
일
반
의
결
합
으로 느껴진다. 예컨데 이런 대화가 있다. 고슈라는 결혼한 동성애자가 등장하는데 이에 대해 멜은 ‘그런 건 싫어. 모두가 상처받아.’라고 하자 케인은 ‘그는 바이(양성애자)일거야. 세상은 틀에 박힌 상식만으로 살아가는 건 무리야.’라고 달래주는 부분을 통해 멜의 가치관의 폐쇄성을 케인의 열린 생각으로 서로 감싸안을 수 있어 매우 이상적인 커플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구축한 가정은 그 어느 이성애자의 가족관계보다 아름답고 훌륭해보였다.{{) 멜과 케인은 게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제도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님.
}}
난 그동안 동성애자와 동성애 행위가 이성애자와 대별될 뿐인 존재로
서 이성애의 원칙과 질서를 그대로 닮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
닐까. 그 이면엔 물론 이성애자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원칙과 질서에
대한 더없는 옹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한가? 결혼제
도나 대다수 일반 가족이 사랑에 의한 필요만으로 구성되고 있나? 가
족이 구성되는 이유에는 수많은 관습에 대한 순종과 법제도등에 대한
의존때문이 아닌지…
NY²을 통해 동성애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대한 교정의 필요와
그 책에서 제시된 애정관과 그에 따른 가정, 결혼 등에 대한 새로운
관점 등을 재고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의 보수성의 잔재로 인해 세상
의 어떠한 존재도 부정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게 되는 독자들중에 혹시나 나와 같은 커
밍아웃을 할 사람은 없는지 묻고 싶다.{{) 이 글을 쓰고 난 지금 난 하루쯤 시간을 내서 고3 남동생과 동성애에 관한 진솔하고 깊이있는
대화를 할 생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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