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극우파 하이더와 유럽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2/5 페터 슈바르츠

외르크 하이더의 자유당(FP )이 오스트리아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유럽연합 6년 역사상 극

우파가 정부를 떠맡은 두 번째 사건이다. 지난 1994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당에 연

원을 두고 있는 이탈리아의 국민동맹이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부에 하위 파트

너로 참여한 바 있다.

1994년에는 국제적 반응이 미약했지만 이번 자유당과 보수파 인민당( VP) 사이의 연정은 격

렬한 국제적 항의를 야기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사상 최초로 회원국의 내정에 직접적으로 개

입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나머지 14개 회원국들은 쌍무 관계를 냉각시킴으로써 오스

트리아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하고 있다.

유럽의 자본측으로부터는 외국인 혐오와 차별 및 공격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정당도 유럽

연합 회원국의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발언들이 울려퍼지고 있다. 한편, 이러한

보이코트는 유럽 내 모든 사무가 수행되는 유럽연합 위원회들에 오스트리아가 참여하는 것

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유럽 전체 차원의 실제 상황을 보면, 하이더의 반외국인 발언들에 관한 공식적인 분노의 표

현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순 없다. 그가 고백하는 것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이미 오랫

동안 실천되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 망명자, 그외 외국인들 모두는 유럽대륙으로부터 체계적으로 거부당하며 어떠한 정치

적 권리도 누리지 못한다. 독일 기민련(CDU)이 외국인 거주자들을 위한 이중 국적 도입에

반대한 작년의 청원 운동은 외국인 범람 현상( berfremdung)에 반대하는 하이더의 훈령을

모델로 삼은 것이었다.

하지만 하이더에 반대하는 여론몰이가 단순히 위선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유럽 각국의 정부

가 우려하는 것은 하이더의 정책이 가지는 내용이라기보다는 그가 채택하는 정치적 방식과

그것이 호소력을 갖게되는 사회적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이더는 유럽 정책이라는 언어 속에서 “민주적 합의”라고 불리우는 것(기존 제도와 정당의

틀 안에 존재하는 모든 중요한 문제들을 조절하는 협의적 수단)을 혼란시키고 있다. 그는 얼

마간은 의회를 통한 방식을 활용할 테지만 오래지 않아 국민 대중의 억제된 분위기와 잠재

적 편견에 거리낌없이 호소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1920년대와 30년대의 유럽을 특징지

운 정치 불안정과 사회적 소요라는 유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유럽 각국 정부들은 하이더라는 딜레마에 직면해있다. 이들 정부는 하이더의 방식에 우려를

보내지만 그가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유럽 정부들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하이더에 의존하기까지 한다. 하이더의 성공은 심각한 정치 위기를 표면으로 이끌어내

었다. 이는 8백만 인구의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문제이다.

세계적 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신호 아래 진행되는 유럽 통합 과정은 이미 광범위한 사회계층

을 쓰레기더미 속으로 밀어넣었고 이들을 공식 정치로부터 배제시켜왔다. 세계화의 사회적

결과를 둘러싼 분노의 급등을 어떻게 억누르고 통제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국가적 논의를 점

차 지배하고 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에서는 바로 이 문제가 집중적으

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균형 정책으로의 복귀와 일종의 전지구적 케인즈주의를 통해 세계화가 낳은

사회적 결과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은 시시각각 거대기업간 합병이 이루어지고 주식 호

황이 최고의 경제적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현재의 경제 현실에서 좌초하고 있다. 한편 개인

투기자들의 운명이나 수많은 연금생활자들의 노령 연금만이 계속해서 상승하는 주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각국의 국가경제 전체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민당이든 보수당이든 모든 정당들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굴복한 채 복지 삭감 정책을

옹호해왔다. 이로써 이들은 국민들의 필요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독일 기민련의 위기는 하나의 생생한 증거이다. 기민련은 최초는 아니지만 (이탈리아의 기독

민주당과 영국의 보수당, 프랑스의 드골주의 정당에 뒤이어) 가장 최근 붕괴 위기에 직면한

전통적인 보수주의 대중정당이다. 기민련의 재정 스캔들은 정치 위기를 가져온 진정한 원인

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사건이 위기를 격발시켰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독일의 위기는

“국민의 당”으로서의 기민련의 사회적 기반이 무너져내리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13년간 사민당(SP )과 인민당( VP)이 대연정을 통해 통치해온 오스트리아의 경우, 이

들 정당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특히 분명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하이더가 비집

고 들어갈 정치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과거에 레온 트로츠키는 공산주의가 희망의 당이라면 대중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은 절망의 당

이라고 쓴 바 있다. 이러한 구분은 하이더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그의 정치적 기술은

대중의 절망을 반동적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다름아니다. 그는 세계화의 파괴적

결과로 위협받고 전통적 정당들에 의해 버림받은 평범한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Der Spiegel)」에 따르면 하이더는 “스스로를 인민의 호민관이라고, 목

소리없고 불만에 가득찬 사람들, 사회적 패배자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차이트

(Die Zeit)」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대담하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새로운 사민주의입니다… 우리는 현 사민당의 발자국을 따르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여성의

경우 평균치 이상이 우리에게 표를 던졌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하이더의 발흥에는 분명 어떤 사회적 저항의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러

나 그는 이러한 사회적 저항에 어떤 희망이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무정형의 공포

를 외국인 혐오, 민족주의, 법질서 확립 등으로 전환시킨다. 그는 이러한 공포감을 이용해서

그러한 공포를 낳은 사회 관계 자체를 옹호하고 있다. 그의 사회적 데마고기를 자세히 들여

다보면 완전히 우익적인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에 다름아님을 알 수 있다.

하이더와 신임 수상 볼프강 쉬셀이 합의한 정부 강령을 보면 다른 유럽 정부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2005년까지 균형예산 달성, 국유화된 산업의 민영화, 공공서비스 일자리의 삭감,

퇴직연령 연장 등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하이더의 민족주의적 데마고기는 국제 자본을 위

해 오스트리아를 개방하는 정책을 도모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비록 하이더의 방식을 선호하진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를 필요로 한

다. 사회적 안정을 담보하는 구래의 메카니즘이 공공연하게 실패할수록 지배계급들은 새로운

통치방식에 신속히 의존하기 마련이다. 사회적 조건을 둘러싼 분노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

을 경우 이는 적어도 반동적 방향으로 선회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상징적 제스처와 속수무책이 뒤섞인 유럽 차원의 항의가 보여주는 마지못한 성격을

설명해준다. 이는 또한 오스트리아 신정부의 정책 프로그램 전문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 전

문은 연방대통령 토마스 클레스틸이 직접 초안을 작성한 것이며 그는 하이더와 쉬셀로 하여

금 자신이 새 정부의 각료들을 임명하기 전에 전문에 서명토록 하였다.

전문은 정치적 자유, 법에 의한 통치, 관용과 진정한 민주주의 등을 담고 있으며 한편으로

외국인 혐오와 반유태주의, 인종주의 등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우아한 문구들을 제외하고

는 새로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어떠한 구속력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전문은

문서상의 단어들에 불과하며 새 정부로 향하는 길을 닦는 것이라면 하이더가 이와 유사한

어떠한 문서라도 받아들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미 하이더와의 협력을 선언하는 목소리들이 유럽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독일의 기사연

(CSU)과 바바리아 주지사인 기사연 의장 에드문트 슈토이버는 인민당과 자유당의 연정을 처

음부터 지지하였다. 기민련(CDU)은 하이더를 도편추방식으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안으로 그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로마노 프로디 또한 오스

트리아의 새로운 연정에 대한 비난을 삼가고 있다.

결국, 하이더와 같은 인물의 정치적 성장은 광범위한 사회 계층의 정치적 방향상실로만 설명

될 수 있을 뿐이다. 국제 노동자운동에 대한 스탈린주의와 사민주의의 수십년에 걸친 지배는

기존 사회체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안이라는 희망을 침식해버렸다. 하이더는 자신의 우익

데마고기를 확대시키기 위해 이러한 방향상실을 활용하고 있다. 하이더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파시즘의 위험에 맞선 싸움은 노동자운동의 사회주의적 재정향과 부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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