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Peacecinema
여성의 시선으로 영화 바라보기
김성희 /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소수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상과 비정상, 열등과 우등이 이미 가려진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장애우, 여성, 청소년 등은 언제나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보호의 대상, 아니면 가여운 대상이 되어 버린다.
한편, 현실을 재구성하고 재현하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상 역시 이러한 굴레 속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때로는 파격적인 이미지니, 컨셉이니, 스토리니 하면서 현실에 반항하는 영상물이 제작되기는 하지만 이 역시 사회적 논란 속에서 문제작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특히 여성의 성(性)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여성의 육체와 사회적 성역할 간의 논쟁을 유도해 왔다. 섹시함과 퇴폐, 예술과 음란 사이의 모호한 경계 설정과 진취적이고 능력 있는 여성과 순종적이고 가정적인 여성 사이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언제나 여성은 ‘바라봄’의 대상이 되어왔다. 육체든, 아니면 정신세계든 간에 그녀는 항상 관객을 위해 보여진다. 감독과 카메라의 시선은 그녀의 내부로 들어가기보다는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상황에 초점이 모아진다. 따라서 대부분 그녀는 주체적이라기보다는 주변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이러한 영상물이 드러내는 시각에 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졌다. 성, 연령, 계층에 관계없이 단일한 시각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오래 전부터,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다. 대부분 우리는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이 신데렐라가 되는 극적 스토리에 울고 웃는다. 그리고 때로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 않는 어머니의 강인함에 감동을 느낀다.
이런 측면에서, 얼마 전 여성문화예술기획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는 영화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여성관객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에서 여성들은 최고의 영화로 ‘미술관 옆 동물원’을, 최악의 영화로 ‘노랑머리’를 꼽았다. 그리고 ‘미술관 옆 동물원’에 이어, ‘마요네즈’,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내 마음속의 풍금’이 올해 페미니즘 영화로 선정되었다. 말끔하고, 조숙하고, 얌전한 여주인공보다는 덤벙대고, 소리내어 웃는 털털한 춘희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나보다. 사실상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는 기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고정된 캐릭터를 과감히 부순다. 이 영화는 완벽한 여성을 두고 벌이는 삼각관계도 존재하지 않고, 신데렐라적 환상의 스토리도 아니다. 다만 일상에서 봄직한, 아니 우리 대부분이 펼치고 있는 수더분하고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그릴뿐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여성의 공감을 산다. 이들이 보여주는 동성애적 감정은 여고를 다닌 대부분의 여성들을 손뼉 치게 만든다. 남성감독이 제작하였음에도 어찌 그렇게 여고생들의 감정을 잘 드러냈을까 싶게 말이다. 즉, 이상의 영화들은 남성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여성 특유의 시각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주변에 의해 만들어지는 ‘바라봄’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생산해 가는 여성의 적극성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의 시선이 투여되고,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요구되는 여성상이 아닌 일상의 여성상을 드러낸다는 점에 여성 관객들은 승점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점점 더 많은 영화가 정형화된 여성캐릭터를 다양화하고, 여성의 시각과 시점을 수용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할 산들이 많다. 우선, 생산자의 범주에서 여감독, 여제작자의 수적 열악성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수용자의 측면에서, 다양화되고 주체적인 여성 관람객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즉, 영화의 애로틱함이나 스펙타클을 부여하는 데 그치는 여자 주인공의 스토리나 남성 혹은 전반적인 사회적 시점에서 만들어지는 여성의 이미지는 더 이상 호응을 얻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편협하고 일방향적인 시점에서 벗어나 여성 관객의 시선과 욕망을 교감할 수 있는 기획들이 요구되며, 여성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바라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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