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비핵지대로 만들자 !!

지난 2월 18일에서 20일까지 3일 동안 방글라데시의 다카에서는 “평화는 건설하고, 폭탄은 파괴한다 : 아시아를 비핵지대로 만들자”라는 모토로 남 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평화운동가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1998년 7월의 대안안보에 관한 회의의 성과로 진행되었으며, 핵무기와 군축에 관한 보 다 폭넓은 내용이 논의되었다.

이번『평화연대』17호 특집은 이 회의에서 기본 문서로 소개된 PCRC의 글과 한국에서 참가하신 김용한 선생님의 발제문을 실었다. 기본 문서는 문서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18호에 연재될 예정이다. 번역이 형편없더라 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지난해 코소보 전쟁을 지켜보던 세계는 평화의 세기가 되리라던 21세기의 목전에서 터진 끔찍한 살육전에 분노했다. 또한 이것은 평화운동의 침체 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졌으며 바로 이어 개최된 헤이그 평화회의엔 전세 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평화운동가들이 결집하여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 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20세기 말미를 피로 장식한 이 전쟁을 발판으 로 나토라는 군사조직의 팽창, 그리고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미 상원 비준 거부, 무기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 나라별 무기경쟁의 가 속화 등 평화를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이 생성되거나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할 수 있는데 작년 인도·파키스탄의 핵 경쟁은 거의 10주간의 피의 대결로 이어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상황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불안한 안보 상황 속에서 핵 경쟁의 분쇄와 군축에 관한 전세계 민중의 뜨거운 열망은 이제 거대한 힘으로 표 출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운동가들에게 이제 고도의 살상 력을 가진 무기(핵)경쟁의 축소와 군비통제라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다.

한반도에서의 군축과 군비통제의 실현은 지금의 국가안보체제를 변화시키 는 것이다. 또 이 안보체제를 유지해온 힘, 즉 미국의 패권과 미국에 의해 서 규정된 주적(북한), 그리고 각국에서 군부 및 군수산업에 기초한 초국 적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아직도 평화는 멀기만 하다. ▣

콰잘레인 산호섬과 새로운 무기경쟁

탄도미사일요격(BMD)과 아시아-태평양 조약

PCRC(PACIFIC CONCERNS RESOURCE CENTRE

■ 번역 / 이소연 (평화인권연대 회원) · 최미례 (최정민 동생)·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최진영 (평화인권연대 회원)

1940년대, 마샬 군도인들은 미국 핵 실험 시리즈를 위한 길을 만들기 위해 비키니와 에네워택 산호섬들에 있는 그들의 집을 뛰쳐나왔다. 섬주민들은 미국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을 실험하고 있을 때, 이주에 대한 조건으로 인류에 도움이 될 것, 그리고 세계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실험일 것을 요구했다.

오늘날, 마샬 군도인들은 1946년에서 1858년에 걸친 67 US기상실험의 방사능 유산과 함께 살고있다. 그리고 비록 태평양에서의 핵실험이 지난 1996년 모루로아 섬에서 있은 프랑스 실험으로 끝났더라도, 태평양의 섬들은 여전히 핵병기고를 위한 실험지로 남아있다.

1999년 10월, 미국은 먀샬군도 공화국의 콰잘레인 섬에서 새로운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실험했다. 캘리포니아의 발사대에서 발사된 모조 핵 탄두는 콰잘레인 섬에서 발사된 요격미사일에 의해 공중에서 격추되었다. 2000년 1월에 있은 실험은 목표물을 적중시키는데 실패하였다. 이러한 실험들은 탄도미사일요격(BMD) 시스템의 발전을 위한 미국작전 시리즈의 일부이다.

미국은 군사구조에 관한 뉴라운드에 속해있다. (오늘날 전세계 군사비중 미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구 소련과 대립해있던 냉전시기의 절정이었던 1985년보다 크다. )

군비에 관한 뉴 라운드를 정당화하기 위해, 주요대기권과 군사계양자를 받치기 위해, 새로운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은 이라크나 북한과 같은 악동국가의 미사일 공격을 겁을 주어 그만두게 하거나, 혹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혹은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잘못 발사된 미사일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 PCRC 보고서는 현 BMD 프로그램의 뒷배경과 그것이 마샬 군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

해서 이야기 한다. 그리고 또한 이 보고서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 간의 새로운 무기경쟁의 약화시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탄도미사일요격

미 탄도미사일요격(BMD) 프로그램은 레이건 행정부의 1983년 전략방어구상(Star Wars)의 축소판이다. 그것은 우주기지 시스템의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크고 육중해 보이는 소련 미사일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15년 동안, 500억 달러 이상의 연구비용을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Star Wars는 한번도 근거지를 이탈해 본 적이 없다. 레이건을 닮지 않은 1980년대 전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BMD는 전면적인 핵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위할 능력이 없었다. 이것은 아마도 북한과 같은 “건달” 국가로부터 발사되는 미사일에 대항하도록 통제되었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 하에서, 미국은 1985년에 육군, 해군, 공군 사령부와 공동으로 미우주사령부를 건설했다. : Star Wars 연구와 실험을 조정하기 위하여.

되살아난 NMD 프로그램과 함께, 1997년 10월 1일 클린턴 행정부는 새로운 군사령부를 건설했다. : 미군 우주&미사일 방위사령부. 탄도미사일요격위원회(BMDO)는 미군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기술적인 지원과 이 우주 과학기술 연령에 대한 몇십억 달러의 경영을 준비한다.

BMD프로그램은 두가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a) NMD 시스템이 전개된다면, 얼마 안 되는 장거리미사일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50개 주를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

b)TMD시스템(시트레미사일 요격)은 미국의 권력 혹은 단거리의 적국미사일의 파괴를 위한 그들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있다. 이것은 동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처럼 군사작전에서 특히 시트레미사일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있다.

국가의 대탄도미사일시스템을 전개할지 어떨지에 대한 미국의 결정은 2000년 6월

“Deployment Readiness Review” 과정에 따라 움직여질 것이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에 의해, 이 결정은 4개의 요소에 기반할 것이다: 기술의 준비성, 군대통제에 대한 영향력과 러시아와의 관계, 유효비용, 그리고 위협. 만일 이 결정이 진행된다면, 이 시스템은 미 국방성의 원래구상인 2003년이 아닌 2005년 안에 사용될 것이다. 그때까지의 여유시간은 주로 마샬제도의 콰잘레인 산호섬의 계약된 기지에서의 테스트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의 2000년 선거전의 중반에서 민주당은 “방어에 있어서 연약한” 모습을 보이길 원치 않는다. 공무원들이 2000년 6월까지 미국 미사일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대해 형식적 결정은 없다고 말할지라도, 근래의 국면은 당국은 시스템의 개발에 착수할 것이라는 암시를 풍기고 있다.

국제신문연합에 의하면, “1999년 10월 CTBT(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의 상원의 패배에 따라서, 당국은 이제 1972년의 대탄도미사일조약에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것에 주목한다라는 말이 누설되었다.” 몇몇 NMD가 미국과 소련사이에서 대탄도미사일조약(ABM)을 위반할 것이다. 논의아래서, 중국은 역시 일본과 대만과 TMD시스템을 공유하기 위한 미국의 계획에 저항했다.

만일 NMD가 진행되면, 2005년에 완성되는 첫 번째 국면에서 보면, 알래스카는 대미사일요격기 100대가 배치를 위한 우선적인 지역이 된다. 미 국방성은 알래스카 지역이 전미지역을 위해 적절한 대비를 해낼것이라 주장한다. 이 지역은 또한 새롭고 강력한 군수레이더(battle- management radar)시설을 포함하고 있다. 북다코타의 정치인들은 NMD 일부의 위력이 그들의 주에 배치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북아메리카 항공방위병력(NORAD)는 미사일추적과 명령센터구성에 180억불을 증액해냈다. NORAD, 즉 미국과 캐나다의 군병력은 콜로라도의 샤이엔산에 위치하고 있다. 로이터의 보도에 의하면, “이제 미 국방성은 거대한 시스템 통합계획에 착수하고 있으며, ‘건달정권’에 의한 한정된 미사일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물 건설 제안단계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 일은 단일하게 묶인 40개의 항공과 우주와 미사일시스템, 통합된 병력과 제어시스템-1966년 1월1일에 작전상 충분하게 된 복합체 이래로 가장 거대한-과 결합될 것이다

결정 없이 희생이 퍼지다

미국 정부는 다음 다섯해 동안 105억 달러가 넘는 돈을 연구와 BMD 실험을 위해서 할당했다.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1999년 2월 1일 국회에 제출된 그의 예산안에서 다음 6년 동안 국가간미사일방위시스템을 위해서 특별히 66억 달러 요구했다. 지금부터 2005년까지 총 예산은 105억 달러가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세출 세입 예산은 하찮은 최초의 시스템에서조차도 그들의 예산에 좀 더 많은 예산이 포함되길 기대했다. 미 일반회계청은 작은 시스템 하나를 배치하는 데 18억에서 28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측했다.

1999년 3월, 미 의회는 탄도미사일요격(BMD)의 전개에 대한 법률제정을 위임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가능하자마자” 승인했다. 미 하원은 법원판결 317-102를 승인했다: 미 상원은 90-3에 투표했다.

이 군비 지출에 주요 수취인은 미 항공우주 분야와 방위 회사들이다. 보잉사는 레이던 사(이전 휴즈 항공사)가 “살인 요격기”를 제조하는 동안 NMD 미사일을 위한 발사대를 세웠다. 레이던은 콰잘레인 미사일 범위에서 주요한 도급자이다.

이 거대한 총액은 1993년에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워즈(Star Wars) 프로젝트를 착수한 이래로 단지 600억 달러를 쓴 NMD와 TMD를 위해서 배분되었다. 이 모든 돈은 단 하나의 효과적인 시스템의 배분을 이끌지 못했다. 이것은 좀 더 많은 실험을 요구할 것이고 대체로 예산의 증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스템의 배치는 신뢰할 수 있고 또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NMD와 TMD의 배치는 태평양의 섬들과 아시아의 도처에 문제의 원인이 된다. 미사일 방위에 대한 미국의 지출은 다른 나라에 그들의 미사일 역량과 대응책, 심각한 무기 경쟁 그리고 불안정한 시기(국제적인 안보 증가의 가장 좋은 길인 핵무기 철폐를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에 용기를 주고 있다.

콰잘레인 산호섬 미사일 실험 구역

TMD와 NMD에 근거한 중요한 미사일 실험이 콰잘레인 산호섬에 위치한 미군기지에서

실시되었다. / 마샬 아일랜드 공화국의 콰잘레인 산호섬에 위치한 콰잘레인 미사일 구역(USAKA/KMR)

수십년 동안 콰잘레인 산호섬 내의 석호는 캘리포니아의 반덴버스 항공기지로부터 폭발된 미사일 실험의 착수지점이 되어오고 있다.

제해권, 대형 핵 미사일, 대륙간 탄도탄 그리고 다른 미국 미사일의 개발에 대한 콰잘레인 법의 역사는 콰잘레인에 대한 기프 존슨(Giff Johnson)의 충돌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콰잘레인 산호섬은 2300평방 킬로미터의 석호로 둘러싸인(세계에서 가장 큰 석호인) 거의 100개의 산호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4년 이래 미군의 통제하에서 산호섬 내 11개 섬들은 USAKA/KMR 임대지역으로 되었다. 콰잘레인 기지들은 레이다 통로, 정보수집체, 미사일 발사의 용이성등을 포함하는 40억 달러나 되는 복합체들이다. 미 예산안 문서들은 콰잘레인의 많은 역할들에 대해 약술한다.

·군과 방어성 미사일 체계들의 테스트와 평가

·미군 구역 감독

·나사(NASA) 체계적 구역 계획

·탄도미사일요격(BMD) 조직 실험

·대륙간 미공군 탄도미사일 개발과 작동실험

·미구역 감독망

1970년대와 80년대 마샬섬 거주자들은 콰잘레인 산호섬들을 점유하기 위해 입항을 꾀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의 실패에 대해-섬의 손실과 환경위험에- 그들에게 보상할 것을 주장했다. 1982년 ‘귀국작전’은 콰잘레인 섬 소유자들이 그들 자신의 섬으로 되돌아 갈 귄리를 요구하면서 넉달동안 지속되었다. 오늘날은 콰잘레인 산호섬 개발 기관(KADA)과 땅 소유자들에게 1년에 1천3백만 달러의 요금을 지불하며 임대 받고 있다. KMR 임대 동의하에 미국은 땅 소유자들에게 콰잘레인 섬 36위토스(한 필지)에 대해 돈을 지불한다. 이전의 마샬섬 대통령인 이마타 쿠브나(Imata Kubna)가 그 땅들 중 22위토스의 주인이고 아뉴아 로액(Anjua Loeak)가 12위토스의 주인이다. 나머지 2위토스는 각각 다른 주인들이 있다.

콰잘레인에 고용된 1277명의 마샬 주민들 중 106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구역 시스템 기술과 통합 구역기술에 종사하는데 이 둘은 모두 레이던 사에 의해 운영된다. 150명이 넘는 여성들이 콰잘레인 섬의 미국 직원들의 가정부로 일한다. 이들은 매일 낮에 에베예 섬으로 출근해서 밤에야 집으로 되돌아가는 출퇴근을 한다. 한때 “태평양 빈민지대”로써 묘사되었던 에베예는 오늘날 100 에이커도 안되는 땅에 1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주한다.

냉전 종식이 끝난 후조차도 콰잘레인 산호섬은 새로운 미사일의 개발과 실험의 중심지로 남아있다. 미국의 동아시아와 태평양 담당 서기관보 스탠리 로스는 1998년 10월 국회에서 말했다.

“방어성 평가에 따르면 USAKA/KMR은 국가적인 보배이다. 최고 장거리 미사일의 완전

한 규모의 테스트에 적합한 면적을 가진 세계에서 유일한 용이성을 지닌 지역이다. 또한 학계는 콰잘레인이 정보수집에 유일무이하게 적합하고, 우리의 스페이스 프로그램(space programs)에 중요한 지지기반을 공급한다고 결정했다. 우리는 이러한 용이성에 40억 달러를 투자해 오고 있다. 새로운 장소에 재배치 한다는 것은 값이 매우 비쌀 것이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콰잘레인 기지에 대한 우리의 임대계약은 2001년에 만기가 된다. 만약 우리가 토지 임대계약 갱신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마샬 공화국(RMI)과의 접촉을 추가로 15년 동안 할 수 있는 자동적인 재계약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미군 지역과 미사일 방어 지휘부의 지휘자인 육군중장 존 코스텔로(John Costello)는 콰잘레인을 “왕관속의 보석”으로 묘사한다. 그는 콰잘레인이 TMD와 NMD 때문에 미래에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 “콰잘레인은 미사일 방어체제의 성공과 실패를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만약 우리가 미국인에게 국가방위체제가 행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더 잘 진행될 것이다. 세계에서 정확한 테스트를 할 유일한 장소는 콰잘레인이다.”

콰잘레인 초호의 얕은 물들은 테스트 목표물들이 복구되는 것을 쉽게 한다.

그리고 깊은 수심으로 둘러싸인 해양은 미사일이 안전하게 처리되도록 하며 탄두가 재발견되지 않게 한다.

콰잘레인에 ALTAIR 레이다는 고도의 공간추적의 가능성을 가진 전 세계에 있는 단 세 개의 레이다 중 하나이다.

콰잘레인과 탄도미사일요격(BMD) 실험

1999년 10월 1일, 미국은 국가미사일방어망(NMD) 시스템의 첫 번째 실험을 실시했다. 수정된 밀레니엄 탄도요격미사일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반덴버그 항공기지에서 발사되었다. 태평양을 향해 폭격 비행될 때, 미사일은 가짜 핵탄두와 레이더 탐지 방해용 물체를 투하하였다. 다른 미사일은 4,300마일 떨어진 콰잘레인 산호섬에서 발사되었고, 이 연습용 표적은 태평양 140마일 상공에서 외기권 살인 물체(EKV)에 의해 요격되어 파괴되었다. NMD 연합 프로그램부(NMD Joint Program Office)에 따르면: “이 ‘살인타격’ 요격은 대중적인 파괴용 무기를 나르는 핵탄두-핵, 화학제품 또는 생물제제-가 총체적으로 파괴하며 불편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미 과학연구자 연합(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의 존 파이크(John Pike)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들이 한 일은 홀인원(hole-in-one) 사격과 맞먹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시간 홀인원 사격과 같은 것이다.

만약 그것을 계속한다면 미사일 방어는 완벽해야 한다.”그러나 2000년 1월 18일에 있을 시리즈의 두 번째 실험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미 방위부(The US Defence Department) 보도는 투하실험 이후에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적고 있다. “요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는 소중한 패배였다. 그 의미는 수백만 달러의 최첨단 테크콜로지 시스템이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요격 미사일이 표적을 놓쳤다는 것이다.

1999년 10월의 실험은 단지 2번의 표적을 맞추는데 그쳤던 지난 1984∼1991년 16번의 별들의 전쟁(Star Wars) 실험보다 진보된 것이다. 그러나 콰잘레인 실험은 고도로 통제되었고 긴장상태의 전투에서 시스템의 신뢰도에 대한 의심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10월에 표적은 지난 “저공비행” 실험에 비해 보다 소수의 레이저 탐지 방해용 물체를 포함할 수 있도록 보다 간소해졌다.

이것은 단지 “살인물체” 실험이었고, 마지막 요소는 날아오는 핵탄두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보조 로켓, 레이더, 그리고 통합된 경영 시스템은 실험되지 않았다. 센서에 기반한 우주공간과 레이더에 기반한 땅과 새로운 로켓 보조장치들 그리고 지휘 센터를 포함하는 시스템의 다른 요소들도 아직 실험되지 않았다. 최초의 세 번의 실험 중 단지 하나만 완벽한 시스템을 포함할 것이다. 그리고 3가지 모두는 실제 요소가 아니라 대용물로 사용될 것이다.

1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드는 콰잘레인 실험은 이후 6년간 NMD 시스템 테크놀로지의 효과와 신뢰도를 증명하는 요격 실험이 계획된 20개 중의 첫 번째 이다. 그러나 2000년 6월의 전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BMD 협회는 NMD 시스템에 의해 제안된 3번의 요격실험을 할 것이다.

태평양 섬들의 미군기지는 NMD 실험과 마찬가지로 또한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성장에 사용될 것이다. 미군부대의 다른 부문은 TMD 시스템의 성장을 위해 경쟁할 것이다.

해군 TMD 프로그램은 걸프 전쟁 기간에 미사일 배치에 대항하여 미 해군의 방위 시스템의 일환으로 제안되었다. 미 해군은 하와이 군도의 아홉번째 섬인 카와이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바킹사막의 태평양 미사일 사정 기지(PMRF)에서 단거리 미사일 실험을 지휘했다.

미 해군은 2000년 실험 동안 니하우 섬으로부터 발사되는 단거리 미사일을 목표로 한 요격기 미사일 폭격을 계획했다. 1999년 12월, 파괴자 미군함 케인(Kane)은 새로운 로켓의 첫 번째 수중발사인 TMD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PMRF로부터 두 개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국은 TMD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섬들에서의 발사를 증강시키는 것과 도움이 될 만한 장소를 찾고 있다.: 턴 섬, 존스톤 산호섬, 니하우 그리고 하와이 군도의 아홉번째 섬인 카와이 섬에 있는 PMRF 현장.

NMD 실험과 마찬가지로, 콰잘레인 산호섬은 TMD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되고

있다. 하와이 군도의 아홉번째 섬에 있는 바킹 사막으로부터의 중거리 미사일과 웨이크 섬으로부터의 단거리 전술 미사일은 TMD 작전연구의 일환으로 콰잘레인 석호를 통과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이래로 미국은 아우르 산호섬들 중 비키엔 섬을 콰잘레인 석호를 향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장소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콰잘레인 산호섬들 중 맥 섬에서 발사되었는데 그것은 1997년 2월과 3월에 아우르 산호섬에서 발사된 2기의 스커드미사일을 명중시켰다)

콰잘레인은 고지대 방위(THAAD)와 웨이크 섬에서 발사된 추적미사일을 위한 레이더 시스템 실험에 사용되었다. (뉴멕시코에 있는 군대의 백사 미사일 범위에 대한 첫번째 8번의 THAAD 실험-1995년에 시작된- 은 단지 두 번 단일목표 미사일을 맞췄을 뿐이다) 펜타곤 관리들은 그 이상의 THAAD 실험(콰잘레인에서의)을 요구했다.

마샬군도 공화국에 격돌

미국은 앞으로 15년 동안 콰잘레인 미사일에 실험장에 관여하겠다고 확언했으나, 두 나라간의 조약 전면에 대한 교섭이 현재 진행 중 이어서, 마샬군도와 미국의 관계는 흐릿하다.

태평양군도에 대한 UN의 신탁통치령은 1990년 UN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종식되었고, 그후 마샬군도 공화국(RMI)과 미크로네시아 연방(FSM)은 1986년에 미국과 자유연합 조약을 비준했다. RMI와 FSM에 대한 그 조약은 15년간으로, 2001년까지 효력을 지닌다. (팔라우 공화국의 조약은 10년간 더 효력이 연장되는데, 그것은 팔라우의 핵금지법에 대한 오랜 투쟁 때문이다.)

그 조약에 따라, 워싱턴은 제3세계 나라들에 대한 간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대신에, 그에 대한 대가로 RMI, FSM과 팔라우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지닌다. 전략적인 거부정책은 원래 소련 연방에에 대항한 지침이었다. 그 조약은 태평양에서의 소련의 행보가 예상된다는 냉전의 망상에 젖어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

1999년 10월에, 마샬군도와 미국은 자유연합조약에 대해 재협상을 시작했다.

1999년에 미국 정부는 그 조약의 재협상을 위한 특별 교섭자로 알렌 스테이먼(Allen p. Stayman)을 임명했는데, 그는 과거에 군도업무부(미크로네시아 군도의 내정에 관련된 일들에 책임이 있는 내무성의 한 부)의 장관으로 일했었다. 스테이먼은 자유연합국가들에 관한 관계부처합동기관을 지휘했는데, 그 기관엔 미국 국무성, 국방성, 내무성의 대표들이 포함되었다.

1999년에 새롭게 선출된 마샬군도 정부는, 통일 민주당의 정치인 케사이 노트(Kessai Note)에 의해 이끌어졌다. 노트대통령은 전 대통령인 이마타 카부아(Imata Kabua)의 후임자가 되었는데, 카부아는 콰잘레인 섬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였다.

그 조약의 협상은 재정운영과 경제적 원조에 크게 역점을 두었지만, 안보와 방위 문제 또한 중시했다. 스텐리 로스(동아시아와 태평양 업무를 위한 미국의 차관)의 1998년 10월 의회 증언에 따르면, 마샬군도, FSM, 팔라우와 맺은 조약에는 다음과 같이 3가지의 주요한 안보상의 이유가 있다.

“첫째, 세 자유연합국가와 각각 맺은 협정에서 구체화 된 전략적인 거부의 기본방침은, 이들 나라와 그 주변 항로에 미국의 독점적인 군사적 접근을 보장했다. 둘째, RMI와 우리의 협정은 콰잘레인 군사시설에 계속적인 접근을 확보했다. 셋째, 팔라우와의 협정은 만약 미국이 필리핀에 대한 대안으로 요구한다면, 군사기지를 확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안보차관인 커트 켐벨(Kurt Campbell)은 1998년 10월 국회증언에서 다음을 시인했다. “협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군사적 이익은 콰잘레인 미사일 기지와 콰잘레인 섬에 있는 시설을 계속적으로 이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미사일 안보에 대한 요구와, 콰잘레인의 독특한 지리적 위치가 겸비된 지역 감시 프로그램의 요구, 기본 군사시설에 대한 투자 요구, 그리고 현실세계 조약을 제한할 필요 등에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이슈가 된다.

미국은 콰잘레인 임차권을, 2001년 자격이 소멸한 뒤에도, 15년동안 일방적으로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마샬군도 정부는 증가된 임대료 상환을 정부와 콰잘레인 지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콰잘레인에 관한 RMI와 미국의 협상은 에베예섬(콰잘레인 미사일 지역 주요본부의 주인 노릇을 하는 콰잘레인 섬 옆에 위치한)에 살고 있는 회랑지대 중앙부 사람들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1960년대 초기에 콰잘레인에 길게 뻗은 미사일 통로를 만들기 위해, 약 200명의 사람들이 그 섬의 회랑지대 중앙부에 있는 섬들로부터 강제 이주되었고, 에베예에 재배치되었다. 오늘날엔 20,000명 이상의 중간회랑지대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주택공급이 충분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더 나은 교육과 직업훈련, 고용(USAKA가 “채용에 있어서 균등한 기회를 주는” 고용주로서 거절하고있는)에 있어서 직업에 대한 특혜에 대한 요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그 조약에 따라 방위와 안보에 대한 통제를 엄격히 지켜왔다.

1997년 12월, 마샬군도가 대인지뢰를 금지하는 오타와 협약(미국은 그 조약에 서명하기를 거절했다)에 서명하기 전에 미국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 미국정부는 RMI 정부에 불만을 제기했다. 그때, RMI외무장관인 필립 뮬러(Phillip Mull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을 거슬리게 만들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 양심에 투표해야 했었다. 우리측은 통상적으로 미국에게 표를 던져왔지만, 우리가 미국이라면 그저 무턱대고 도장을 찍어주는 건 아니다. 우리는 마샬군도가 이러한 인도주의적 노력에 있어서 자주적인 독립국으로 우뚝 서야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구별하지 않는 세계의 무기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나머지 세계들에게 마샬군도가 찬성하기를 원했다.

마샬군도와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UN의 이스라엘에 대한 해결책과 같은, 심지어 태평양 안보와는 관련없는 이슈들에 조차 미국의 정책에 가두어졌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조약 협상자인 아스테리오 타케시(Asterio Takesy)는 1998년 10월 의회 증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전략과 안보에 대한 고찰이 미국과 우리의 자유연합관계에 있어 초석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조약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단지 입에 발린 책임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은 예를 들어, 남태평양 핵무장 금지 지대 조약에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이웃한 섬나라들이 참여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그리고 대인지뢰에 반대하는 협약에 서명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지역방위와 안보정책에 대해 미국을 전적으로 지지해왔다.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끊임 없는 지지는, 일정정도 내재적인 숙고에서 비롯되는 한편, 또한 주요안보지역에 대한 미국정책을 지지할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샬군도 사람들은 더욱이 안보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다. RMI정부는 1946에서 1958년 사이에 에네웨타크와 비키니섬에서 행해진 67번의 미국의 핵실험에 대한 결과로 할당된 보상금을 재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95년 이후로, 미국정부는 이전 기밀문서들을 공개해왔는데, 그 문서들은 마샬군도에 있는 22개중 20개의 유인도가 이 실험으로 생긴 방사성 강하물(죽음의 재)에 의해 해를 입었다는 것은 알려준다. 그 이전에는 4개의 섬이 미국 정부에 의해 해를 입었다고 알려졌었다.

외무장관 뮬러는 또한 미국이 1983년 일방적으로 파기한 협약의 규정에 대한 보상으로 약속된 2천만 달러의 개발자금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RMI는 이 자금 중 겨우 2백만 달러를 받았을 뿐이다. 원래 그 조약에 따르면, RMI 시민은 일하거나 살기 위해서 미국에 비자없이 입국할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미국 관리들이 그 법을 바꾼 후, 이제 마샬군도 사람들은 관계당국의 승인을 받아 일자리를 얻어야 하는데, 관계당국의 승인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마샬군도 정부는 미국이 15년 이상의 기간동안 그 조약을 연장하는데 동의하고, 미국의 투자를 이끌어낼 동기를 제공해 주길 바란다. 미국 관리들은 마샬군도 정부의 부패와 그릇된 운영을 폭넓게 비판하는 반면에, 미국정부는 한 나라의 경제를 왜곡시키는 신탁통치 관계에 있던 식민지의 역사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 1945년부터 1968년까지, 외국인들은 미국 해군의 입장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마샬군도를 방문할 수 없었다. 1973년이 되서야 그 섬에 외국인의 투자가 허용되었다.

태평양 지역의 다른 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RMI는 공공부문 개혁프로그램을 통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다. 이것은 민간부문 단위를 통한 정부자산의 박탈을 수반한다. 공공부문 개혁프로그램에 따라, 내각통합, 1996년 1월 이후로 정부인력의 27% 감소, 공공부문 임금동결(이웃한 FSM 또한 1995년 이후로 IMF 구조조정중에 있다)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 외무장관인 뮬러는 미국에 의해 강요된 아시아 개발 은행으로부터의 대규모 차관이 RMI 경제를 위협해오고 있다고 말한다. “대규모의 차관, 이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거대한 채무부담, 공공부문을 급속히 축소하라는 권고는, 마샬군도의 경제적인 안정을 동요시킨다.” 1999년 초에, 아시아 개발 은행은 RMI가 정부인력을 더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까지는 자금양도를 거절했다.

한정된 자원 기반 때문에, RMI 정부는 마샬군도에 있는 핵폐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최근 10년간의 몇가지 제안을 포함해, 재정을 늘릴 다른 여러 방법들을 고찰하고 있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있었던 핵실험에 의해 오염된 섬에 폐기물 집적소를 세우려는 타이파워(타이완정부가 운영하는 원자력 에이전시)에 의한 끊임 없는 시도가 있었다. 전 대통령인 카부아는 1997년에 핵폐기물을 동결시키자는 플랜을 발표했지만, 제출된 “타당성 조사”라는 것은 그 계획이 아직도 검토중이란 것을 암시했다. 1998년 12월에, RMI 정부는 마샬군도내로 어떠한 핵폐기물도 들여올 수 없다는 성명을 공고했다. 그 성명은 1998년 11월에 마샬군도가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은 후에, 타이완의 계획이 되살아 날수 있다는 우려에 대한 응답이 되었다. (그 성명에 대한 응답으로, 중국은 마샬군도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했고 마쥬로에 있는 대사관을 폐쇄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있어 난관은, 미크로네시아 국의 키리바티에 근접해 있는 타이완 섬의 본리키에 중국이 위성추적기지를 건설함으로써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중국과 키리바티가 1996년 9월 추적기지를 위한 협정에 서명한 후, 중국의 우주 원격 측정, 추적, 명령기지가 1997년에 건설했는데, 그것은 중국 외부에는 처음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 추적기지가 콰잘레인 미사일 실험장을 감시하는데 사용되어진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키리바티 중국대사는 그 몰래 감시(정찰)한다는 주장을 “조작된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면서, 중국와 키리바티 양 정부는 그 기지가 중국의 민간위성발사계획을 제어하는데 사용되는 시설이라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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