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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며…

권현숙 / 신규여성실업자모임 ‘희망선언’

3·8 여성대회는 차별 받고 억압받는 여성들의 저항의 장이자, 집단적 여성들의 대안

적 미래를 설계하는 여성들의 축제의 장이다. 여성운동내의 다양한 이슈들, 조직들을

넘어 연대를 실천하는 여성운동계의 핵심사업중의 하나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3월이 오고 있고, 3·8여성대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밀레

니엄의 시대, 여성들의 현재와 미래는 심상치 않다. 군가산제 폐지 논쟁을 둘러싸고

쏟아졌던 여성운동과 여성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격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아마도 2000

년은 여성들에게 매우 잔인한 해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2000년이라는 숫자에 많은 의미들을 부여한다. 운동진영 역시 마찬가지이

다. 사실은 어제와 별로 다르지 않은 오늘의 연장임을 알면서도 굳이 그 의미를 찾고

자 함은, 의식적으로 목적을 부여함으로서 오늘과 내일의 투쟁을 재조직화 하기 위한

집단적인 최면이 아닐까? 3·8 여성대회를 1∼2주 정도 앞두고 있지만 유난히 조용하

다. 여성운동진영의 3·8 준비관련한 자세한 내용과 이후 과제를 싣기에는 정보의

부족과 글쓴이의 역량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이 글에서는 3·8 여성대회의 역

사적 유래를 소개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되살리기 위한 현재의 과제는 무엇인지”라

는 고민을 던지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함께하길 바란다.

‘3·8 세계여성의 날’

3·8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1만 5천여 여성노동자들이 뉴욕의 루트

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위를

벌인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은 먼지 자욱한 현장에서

하루 12∼14시간씩 일해야 했다. 귀부인들의 화려한 외출복에 은색, 금색의 번쩍이

는 장식을 박느라 눈이 머는 여성이 생기기도 하였으나, 여성들에게는 선거권과 노

동조합 결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굶지 않기 위해 일하면서도 인간 이하의 삶

을 강요받아야 했다.

1908년 3월 8일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는 결국 1910년 <의류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고, 3월 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선정하여 1911년부터 세계 곳곳에서 여성

의 날 기념행사를 펼쳐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3월 한달간 여성단체들이 다양한 행사

를 개최하고 있고 정부에서는 3월 8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해 여성들을 위한 갖가지

행사를 열기도 한다.

한국에서의 ‘3·8 여성대회’의 역사와 의의

한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3·8 기념행사를 치루어 왔다. 이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맥이 이어지지 못하다가 해방 후 부활하게 되었으나, 1948년 이후에도 탄압으로 맥

이 끊어진 후 1985년이 되어서야 재계승되었다. 여성단체들이 연대하여 ‘민족·민

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로 1985년 제 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

하였고, 86년에는 “민주화와 여성생존권”이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그후 8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가 되어 한국여성대회를 매년 개최해왔다. 또한

1994년 제10회 한국여성대회부터는 대중적인 여성문화행사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했다.

여성노동자단체에서도 노동조합과 함께 여성노동자대회를 매년 개최해오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특히 작년의 경우 노동조합과 여성노동운동단

위가 IMF이후 대량의 여성실업과 결혼퇴직제의 부활 등 퇴보하는 여성노동권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쟁취를 위해 정부에 지속적인 실업대책촉구 및 대중투쟁들을

공동으로 벌여왔으며, 그 성과를 이어 한국여성노동자대회를 함께 개최했었다.

한국의 3·8 여성대회는 매년 3월 8일을 계기로 여성의 현실을 진단하고 여성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중점과제를 선정해 공동실천의지를 모아내는 단결과 연대의 자리라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성차별과 여성인권이 외면당해온 사

회에서 이 날만큼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서 우리 사회의 성차별 구조를 제거하

고, 여성의 인권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는 자리를 제공

한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역사속에 되살아나는 3·8 을 위해

미스와 미터는 “신자유주의적 노동재편은 노동자에 대한 새로운 착취형태를 포함하는

데, 그 과정에서 제1세계 및 제3세계 여성노동력이 중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들

을 새로운 형태의 프롤레타리아라고 한다.

즉, 첫 번째 국면에서 자본이 싼 노동력을 찾아서 제3세계로 이전되는데, 특히 여성의

종속적 조건 때문에 여성노동이 강도높게 착취되면서 제3세계 여성은 자본을 위한 노

동력 저수지가 된다. 두 번째 국면에서는 신축적인 노동실천의 새로운 형태들이 중

심에서도 출현하는데, 제1세계로 다시 돌아온 자본은 값싸고 신축적인 일회용 노동

력을 요구하고, 이 요구를 만족시키는 노동력은 역시 여성인 것이다. 자본주의적 경

제조직화의 새로운 형태는 중심노동자와 주변 노동자로의 양극화를 포함하고, 새롭

게 만들어진 ‘신축적’인 임시직에 인종적이고 젠더적인 분할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는 것이다.

이러한 재편의 과정은 전세계적으로 빈곤의 여성화, 세계화를 낳고 있다. 국제자유노

련(ICFTU)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선 이하에 사는 전세계 인구 가운데 여성이 70%

를 차지하며, 개발도상국의 경우 전체 여성의 60%인 5억7천만이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일하는 여성들이 세계노동력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여성은 여

전히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노동시장퇴출과 재편은 가부장적 보수이데올로기와 병행하여 가속화되는데,

이것은 대량실업시의 남편기살리기, 가족지키기의 주체로서 여성이 가정으로 되돌아

갈 것을 요구받았던 것을 시작으로 동선동본 금혼유지, 황혼이혼 패소, 군가산제 논

쟁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21세기는 ‘3F'(fiction, feeling, female)시대로 여성성과 여성적 감수성이 요구되며,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성들이 살기좋은 시대라고 떠들어 대는 이면에는 80대 20

의 사회에서 20내의 또 다른 소수자인 여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생계부양자가 아니라

는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대규모 추출을 당하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는 열악한

노동시장으로의 진출을 강요받고 있었다. 이것은 결국 자본이 원하는 형태로의 노동

력 재편인 것이다. 공식노동시장의 의도적인 추출과 배제, 가부장적 보수이데올로기

의 이면에서 실제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21세기의 화려한

(?) 여성의 모습이라면 과장일까? 단적으로 남성 노숙자는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리지만 여성노숙자는 남아있는 아이를 업고 거리에 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21세기는 여성에게 결코 장밋빛일 수 없다. 그러나 여성의 위기상황은 새로운

자본의 축적전략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프롤레타리아인 여성노동자의 존재형태를 규

정하고, 이들 사이의 새로운 연대의 형성에 거꾸로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1984년 4월 24일 전자, 의류 및 섬유산업 여성노동자들의 페미니스트 회의에서는 세

계기업의 노동조건에 대한 분석과 토론을 통해 고용 불안정을 창조하는 초민족적 자

본의 역할을 명확하게 하고, 흑인 여성/백인여성, 제3세계 여성/제1세계 여성을 분리

하는 분할 전략에 저항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결의를 강화했다고 한다. 또한 이

회의결과 ‘전세계적으로 노동하는 여성'(Women Working Worldwide)이라는 네트

워크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조직되는 여성, 새로운 노동자계급으로서 여성의 투쟁은 3·8 여성대회

를 맞이하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커다란 것을 시사한다. 사회적 약자로서 억압과 차

별에 대한 보호와 평등적 요구를 넘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속에서 여성의 존

재형태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의 연장에서 투쟁전략을 마련할 것이 요구된다. 자본의

국제분업 배후의 중요한 원리가 인종과 젠더라면 여성운동이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어떻게 제기하느냐는 이후 여성운동과 전체운동의 전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3·8 여성대회는, 의류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은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결코 여성들을 위한 기념과 축제의 장일 수만은 없다. 이휘

호씨 축하 메시지를 들으며 자축하기에는 우리 여성의 현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동안 노동조합과 여성노동운동 단위가 공동으로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투쟁과제와

결의의 장으로써 치루었던 여성노동자대회의 의미가 채 평가되기도 전에 각기 다른

여성노동자대회로 개최된다는 것은 그 독자적 의미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여성노동

자들을 실망케 한다.

기념과 축제의 장을 넘어 투쟁의 장으로, 고립과 페쇄를 넘어 연대의 장으로 나아가

기 위한 여성운동의 진지한 모색과 실천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하여 발전적인 여성운

동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2000년 여성들의 재조직화와 집단적 실천을 위한 최면은 무엇이어야 할지, 3·8 여

성의 날을 맞이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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