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무정부주의

「레드페퍼(Redpepper)」 2000년 3월호 콜린 워드

무정부주의자들은 주류 정당들로부터 몽상가라고 조롱을 받으면서 고약한 평판을 얻어왔

다. 그러나 좌파의 대안에 관한 우리의 시리즈 중 두 번째를 통해 콜린 워드는 DIY 정치(Do

It Yourself politics)의 발흥은 무정부주의의 자조(self-help) 철학이 국가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이따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위니프레드 홀트비의 30년대 소설인 『사우스 라이딩(South Riding)』에서 한 주의원은 우

리가 세계 혁명을 요구함으로써 시작해서 새로운 하수처리 작업을 이룩하는 것으로 끝난다

고 곰곰이 생각한다. 열망과 현실 사이의 심연은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의 특징이지만, 20세

기 전체를 통해 노동당이나 페이비언협회, 공산당, 그리고 모든 여타 맑스주의 그룹의 지지

자들은 정치적 현실주의가 부족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완전히 무책임하게도 선거를 거부하고

있다고 무정부주의자들을 경멸해왔다. 그러나 한 영국의 성직자가 ‘세계의 사회주의 6학년’이

라 묘사한 소련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영국 노동당 강령의 핵심인 생산, 분배, 교환 수

단의 국유화는 어떻게 되었는가? 한발 더 나가 페이비언협회의 ‘가스와 수도’ 사회주의(‘gas

and water’ socialism)는 어떻게 되었는가? 빅토리아 중기의 초창기 시장 숭배 세력들이 이들

모두를 덮쳐버렸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정치인들은 재분배적인 재정 정책의 완화 효과를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 J. K. 갤브레이스가 간파했듯이, 이들은 낮은 소득은 가난한 이들

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고소득이 부유층에게 같은 효

과를 낳는 반면 말이다. 우린 사회주의가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인가? 영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백여 년간의 헌

신적인 노력이 결국 자본주의적 가치에의 완전한 굴종으로 귀결되었다. 맑스주의자라 자임한

이들에 의한 공포 통치를 겪어야했던 나라들의 경우 그 결과는 이와 동일하지만 더욱 노골

적이고 거친 것이었다. 무정부주의의 재창조를 낳는 것은 아마도 국가사회주의 경험 이후의

단순한 절망이나 환멸일 것이다.

정의

20세기 초반 가장 널리 알려진 무정부주의의 전도자인 피터 크로포트킨은 브리태니커 백

과사전으로부터 무정부주의 해설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무정

부주의는 사회가 정부없이 운영되는 삶과 행동의 원칙 또는 이론에 부여된 이름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조화는 법률에의 순종이나 어떤 권위에의 복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과 소비를

위해, 그리고 문명화된 인간의 욕구와 열망의 무한한 다양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역과 직업

등의 다양한 집단 사이에 자유롭게 제정된 협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가에 고착된 정치적 좌파는 산업혁명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조와 상호부조가 성장했음

에도 불구하고 크로포트킨이 무정부주의의 근간이라고 본 대중의 자주관리를 무시하였다.

농촌의 엔클로저에 의해 땅에서 쫓겨나 신흥 매뉴팩처 도시들의 과밀 슬럼가로 몰려든 도

시화된 농민들은 소액은행, 빈민학교, 보건의 등뿐만 아니라 병자클럽, 장례클럽, 그외 모든

종류의 공제조합을 마련하기 위해 푼돈을 모았다.

이들은 주택조합과 기계공 전문학교에 출자하였고 19세기 동안 협동조합운동과 노동조합

운동의 거대한 연합 네트워크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자유당원, 페이비언주의자, 맑스주의자를 막론하고 좌파 정치인들은 이들 자조와

상호부조 네트워크를 확대시키거나 보편화하도록 고무하는 대신 국가의 직접 공급으로 이들

을 대체하고자 하였다. 여기서는 서비스 이용자들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역할도 없고 정부가 계속해서 자의적인 변경을 부과하게 된다.

자유당 정부가 1911년 노령연금과 국가의료보험을 도입할 당시 크로포트킨은 『현대과학

과 무정부주의』라는 책을 저술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국

가가 관료제를 통해 수행하는 사회적 기능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찾게끔 강요당할

것이다… 이를 다하기 전에는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정치적 우파는 물론 이러한 교훈의 민

간 기업 버전을 좇았다. 정치적 좌파는 국가라는 개념에 너무도 집착한 나머지 그의 말에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직접행동

그러나 오늘날 도시의 불모지역 사람들은 빼앗긴 이들 가운데서 자조와 상호부조의 네트

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호보험 회사와 주택조합, 소비협동조합들이 약탈적

금융자본과 경쟁하기 위해 상호성의 유산이라는 곤란한 치장을 벗어버린 지난 10년간, 정치

인들에 의해 무시당한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로 소액은행과 신용조합을 재창조하고 있었다.

첫째 이유는 고리대금업자들의 마수에서 벗어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는 상업은행

들이 꾸준히 내팽개치고 있는 빈민 지역에 금융기관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대중적 직접행

동이 재등장하고 있는 또다른 영역은 주택부문이다. 1968년 되살아난 빈 건물이나 공공소유

건물의 무단점거(squatting) 이래 노동당 정부와 보수당 정부 모두 무단점거를 금하는 보다

확고한 입법을 서둘러 도입하였지만 거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가장 성공적인 주택 협동조합들 가운데 몇몇은 무단점거 운동에서 시작되었다. 노동당 정

치인들은 주택 협동조합이 시대에 뒤진 것이라고 보았다. 1970년에 영국에는 주택 협동조합

이 단 두 개 있었다. 오늘날에는 약 천여 개가 존재하지만 아직도 적은 숫자이다. 주택 필요

에 대한 또다른 직접행동은 청년 실업자와 홈리스들을 주대상으로 하는 자가건조 그룹들의

성장이다. 이들이 삶에서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데이비드 위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직접행동이라는 기질은 아마

도 자유의 기질, 즉 자유로운 사회에서 책임감있게 살 수 있는 기질과 동일할 것이다.” 그러

나 그는 덧붙였다. “우리의 사고는 너무 정치화되어 있고 정부 기관들의 활동에 너무 집중되

어 있기 때문에 개인의 환경을 바꾸기 위한 직접적인 노력의 효과는 아직 탐구되어 있지 않

다.” 거대한 식품 소매상들에 대한 대안으로 농민 시장(farmers’ market)이나 식품 협동조합,

현금 없이도 상품과 용역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교환교역제(local exchange trading systems;

Lets)와 같은 장치들이 고안되면서 직접행동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탐구가 마침내 시작되었

다.

이러한 친밀한 소규모 활동은 자본주의와 국가 모두의 임박한 파괴를 외친 1세기 전의 선

동적 슬로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좌파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와 동

일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역사가들이 무정부주의는 사멸했다고 선언하자마자 무정부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금 솟아오르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 무정부주의자들이 선취한 것에

가까운 반면 무정부주의적 접근을 상당히 새로운 분야로 확대시키는 경우도 있다.

『DIY 문화: 1990년대 영국의 파티와 저항(DIY Culture: party and protest in nineties

Britain, Verso, 1998)』의 편저자인 조지 맥케이는 서문에서 내가 거의 30년 전에 피력한 견

해를 인용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나의 견해가 “90년대의 DIY 문화에 말을 건네고 탐색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길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내가 말했고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국가와 관료제, 거대기업과 그것의 특권적 위계의 성장은 비협조

와 사보타지, 그리고 약한 자들이 그들의 약점을 활용하는 것 등에 이들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과 병행하는 조직, 대항조직, 대안조직 등을 생성시키며 이 조직들은

무정부주의적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운동 중 어느 것도 아직은 권력구조에 위협이 되지는 않으며, 1960년대 후반 이전에

는 이 중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운

동 가운데 어느 것도 전통적 정치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 사실 이들 운동은 정치정당들과

동일한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의 언어로 말하며 무정부주의적 조직

원칙을 설파한다. 이것은 정치 이론에서 배운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운 것

이다. 이들은 자발적이고 실용적이며, 일시적이고 소규모인 느슨한 연합체를 통해 조직화한

다. 이들은 회원카드나 투표, 특별한 지도부와 소극적인 추종자 집단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즉각적인 과제에 따라 치고 빠지며 결정과 해체를 거듭하는 소규모 기능적 그룹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네트워크이다.”

이러한 원칙은 『DIY 문화』에 잘 서술되어 있는 신규 도로 반대 캠페인에서 훌륭하게 입

증되었다. 당국과의 전쟁터로 도로건설 방해를 선택한 이 젊은 환경운동가들은 대중의 상상

력을 사로잡았다. 재치있고 기략이 풍부한 이 활동가들은 굴을 파고 나무 위에 집을 짓고서

국민 정서를 바꾸는 장정을 시작하였다. 급진적 시위대가 언론의 영웅이 된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여론의 분위기는 바뀌었고 민간 모니터링이 제공한 관심이라는 분노로, 교통 대안에

관한 접근이 아직까지는 명목상의 노력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도로건설 프로그램은 급정거하

였다. 그러나 상상력 풍부한 직접행동은 변화의 장정을 시작하였다.

예측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의 불행한 유산 중 하나는 역사적 불가피성이라는 개념이었다. 이사야

벌린은 “불가항력이라 함은 보통 저항받지 않는 것일 뿐이다”라는 미국 판사 루이스 브랜다

이스의 말을 즐겨 인용하곤 했다.

수많은 서구 소련학자들은 소연방의 몰락을 예견하지 못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끔찍한 내전을 겪지 않고 종식될 수 있으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곳이나

권력자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무기력 위에서 번창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취약하기 마련이다.

정치적인 의식을 지닌 사람들은 기이한 역사적 시대착오라고, 세기가 전환하는 시기에 뒤떨

어진 것이라고 무정부주의를 거듭 기각해왔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정치가들 스스로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의 마지막 구절을 살아가고 있다. 뜰에 있는 불쌍한 동물들이 농가 창문

을 통해 돼지에서 사람까지, 사람에서 돼지까지 보지만, 뭐가 뭔지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 이는 무관심과 체념만이 아니라 데마고그와 독재자의 발흥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믿음을 갖고 있다면, 대중의 자

기조직화와 창발성이라는 파도로 이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세대는 이러한 점을 배워

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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