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1999년 8월 7일자 5면

아나키스트들, 최근 사회운동과 가두시위 현장에서 이들의 숫자가 불어나면서 프랑스의 무

정부주의 운동이 마치 순풍에 돚단듯하다. 집권당인 사회당뿐만 아니라 혁명적 공산주의 동

맹(LCR; Ligue communiste revolutionnaire, 트로츠키 계열) 같은 급진 정당들까지도 현재

프랑스 젊은 청년들에 대해 무시할수 없는 동원력을 확대해가는 이들 무정부 공산주의자들

에게 적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아나키스트-조합주의자들의 운동단체인 전국노동연맹(CNT, Confederation nationale du

travail)은 현재 4천 명의 열성당원을 확보하고 있다. 1995년 12월의 프랑스 총파업을 계기로

이들은 프랑스의 노조 부문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하였으며 최근 단위 노조 선거에 참

여하기를 결정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아나키스트 단체인 ‘자유 무정부주의적 대안(AL, Alternative Libertaire)’ 또한 다

양한 사회운동과 단체들 사이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러한 무정부주의 단체들은 서적, 영화, 음반사업등 문화영역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면서 적과 흑(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색깔)의 과거의 찬란했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무정부 공산주의 운동의 부활

카롤린 모노

흑과 적, 검은색은 무정부주의를 그리고 붉은색은 혁명적인 정체성을 의미한다. 최근 적과

흑의 깃발이 가두행렬을 메우고 있다. 지난 파리에서의 노동절 행사에서 엄청난 수의 이들

아나키스트들이 가두행진을 벌인 바 있다. 며칠 후, 5월 29일 독일 퀼른에서 벌어졌던 ‘실업

과 고용불안에 대항한 유럽행진’이라는 시위에서도 이들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대의정치 위기의 소산인가? 아니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맞선 뒤늦은 맞바람인가? “반자

본주의적” 무정부운동의 돌풍이 불고 있다. 무정부-조합주의 단체인 전국노동연맹(CNT)은

현재 3, 4천명의 열성회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자유 무정부주의적 대안(AL)’의 회원들은 급진

노조인 연대·단결·민주주의(SUD)로부터, 실업자 단체(AC). 노숙자 단체(DAL)에 이르기 까

지 거의 전 부문의 사회운동의 현장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가두시위 현장에서 그 존재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전국노동연맹(이하 전노맹)은 요즘

급진 성향의 젊은이들로부터 특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 집권 사회당의 대외연락 책임자인

쟝-크리스토프 캉바델리스의 말을 굳이 믿자면 30세 미만의 젊은 좌파 열성당원들은 대개

‘청년 사회주의자 운동'(사회당 계열)과 무정부주의 단체 이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실정

이라고 실토하면서, “요즘 전국노동연맹은 -조직 명칭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지만- 진

보 계열중에서 유일하게 젊은층들에 어필하는 단체로 특히 집회 동원력이 뛰어난 급진단체

이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붉은 바탕에 털을 곤두세운 검은 고양이의 상징으로 유명한 전노맹은 파리 비뇨블가 33번

지에 그 유서깊은 본부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옛날 ‘무정부 혁명조직(ORA,

Organisation revolutionnaire anarchiste)’의 본부, 그리고 지난 70년대 초반 명성을 떨쳤던

기관지인 ‘무정부 자유전선(Front libertaire)’ 의 사무실로 쓰인 곳이기도 하다.

….

전적으로 정치조직이라고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도 없는 전노맹은 90

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젊은이들이 찾기 시작했다. 특히 1994년 우파정부에 의해서 발안된

고용진입법안(Contrat d’insertion professionnelle, 젊은층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이유로 젊은

이들을 법정최소임금 이하로 고용할 수 있게 허용하는 노동 및 고용에 대한 법률 개정안 –

역주)에 대한 대규모 반대시위와 국민전선(극우파)의 ‘질서유지대'(시위당시 자체적으로 질서

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조직으로 건장한 청년당원으로 구성된다. 또한 반대 단체의 역시위로

부터 시위대열을 보호하면서 가끔 린치를 가하는 임무를 띰 – 역주)와 ‘주먹다짐’을 위해 만

들어진 하위 특수조직인 ‘확실한 반극우 분과(Sections carrement anti-Le Pen)’에 청년들이

쇄도하면서부터였다. 그러나 당시 이 조직은 너무 폭력·폐쇄적이어서 대학생 연합회

(UNEF-ID) 및 인종차별 폐지단체(SOS-Racisme)와의 불법체류자 합법화를 위한 연대시위 당

시 사소한 의견차이로 이들의 질서유지대와 충돌하여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그 사건은 너무 과장되어 있어요”라고 쥴리앙(32세, 연맹사무국 비서, ‘확실한 반극우 분

과’ 출신)은 변명하면서 “어쨌든 95년 12월 총파업을 계기로 해서 우리도 많이 개방적이 되

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조직의 질서유지대도 쇄신되면서 군사적인 모습은 지양하였다. “카우

보이들은 떠나고 아가씨들이 이 조직에 들어왔지요”라고 코르토(30대 초반의 여성, 연맹 사

무국 위원)가 설명했다.

1995년 겨울의 총파업은 확실히 전노맹으로서는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조합단체들과 ‘평화적인’ 연대시위를 약속하고 실천한 해였기 때문이다. 시위당시 이들

은 로피탈 대로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모두에게 모두 주라!”라는 구호가 적힌 큰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연도의 시민들이 갈채를 보냈다. “이때, 집회할 때 고작 6명밖에 안

모이던 과거 80년대 초반시절의 운동원으로써 외로이 사무실을 지켰던 한 선배님의 눈에 눈

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쥴리앙은 회상했다.

“그들은 결국 열린마음으로 당원을 모집하게 되었지요.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아직 멀

었습니다. 더욱 열려야되요. 특히 트로츠키스트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혁

명적 공산주의 동맹(LCR, 트로츠키계열)의 대변인인 알랭 크리빈의 한숨섞인 푸념이다.

…

또한 1995년은 이들 아나키스트들에게 새로운 노동조합을 건설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

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해이다. 1998년 연례총회에서 “재 노동조직화”의 노선을 정립하

기도 하였다. “노동총동맹(CGT, 공산당계)의 최근 추세로 볼 때,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전노맹의 책임자중 한명인 제라르 멜리낭은 확신한다.

… 조직내 상근조합원의 존재문제는 무정부 조합주의자들이 해결못한 숙제로 남아있지만

이들은 이미 전국에 걸쳐 50여 개의 단위 사업장에 조합을 구성하고 있으며 단위 노조 선거

에 참여하기를 결정한 바 있다. 또 다른 새로운 점은 과거 관계가 서로 냉랭했던 무정부주의

자들의 2대 조직인 전노맹과 자유 무정부주의적 대안이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나르쇼(아나키스트들 별명)”의 부활을 관심있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스기사>

시락 대통령, ‘전국노동연맹(CNT)’을 구하다

전국노동연맹이 파리 20구 비뇨블가에 소재한 본부 사무실을 계속 점유할 수 있었던 것은

쟈크 시락 대통령(RPR, 드골당)의 공헌이 크다고 할 수 있다. 1996년, 이 지역에 한창 재개발

사업이 진행중이던 때, 이 곳에 위치한 전노맹 본부는 철거·추방의 위험에 직면했다. 이때

“페페”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페페”들이란 과거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파편에서 싸운

스페인 무정부주의 단체(CNT-FAI)의 일원으로 패배 직후 프랑스로 망명와서 줄곧 근처 동네

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서점, 선술집을 운영하며 항상 모여

서 토론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한편 이들은 과거 2차대전 당시에는 드골장군 휘하의

자유프랑스군에 자원입대하여 그 유명한 르끌레르 제2기갑사단의 2중대 소속으로 나치로부

터 파리를 해방하는 선봉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2중대는 스페인 지원병으로 구성되

어 스페인어가 공용어로 쓰였으며 중대의 전차들은 스페인 내전당시 공화파들이 승리했던

격전지의 이름이 붙여졌었다.

그후 이들 “페페”중 일부는 알제리 전쟁직후 극우 비밀군사조직(OAS, 당시 스페인의 프랑

코 독재정권의 지원을 받은 적도 있는 프랑스 군부내 극우조직으로 쿠데타 기도 및 드골암

살을 계획하다 미수로 그침)에 대항하여 드골파를 도와주기도 하였다. 이 “페페” 할아버지들

도 당연히 파리시청앞에서 벌어진 전노맹 본부사무실 철거반대 시위에 가담하였다. 시위행렬

은 비교적 초라했지만 이 할아버지들이 내건 구호는 가공할만한 폭발력을 지녔었다. “1944

년, 스페인 공화파들은 파리를 해방했다: 1996년, 파리는 스페인 공화파들을 추방한다.”

수년간 잠자던 초인종이 울렸다. 피에르 마조(헌법재판소 판사, 정치인, 드골당)와 상기네

티 제독이 문제해결에 직접 발벗고 나섰으며 대통령궁에도 경보가 울렸다. 몇 주후, 파리시

청은 결국 결정을 내릴수밖에 없었다. 전국노동연맹 본부는 철거되지 않았다.

운하 수문지기들의 혁명적 조합주의

“젊고 위계질서에 거부하기 때문에 이 신생아는 아름다운 무정부주의적인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무정부-조합주의의 축복이 있기를…”

이것은 피카르 지방 운하 수문지기들이 1998년 여름에 구성한 아나키스트 조합을 축하하

는 전노맹의 전문 일부이다.

“휴가철이고 지겨웠어요. 그래서 우리는 혁명을 하기고 결심했습니다”라고 세느강 항해 용

역국장인 디디에는 말했다. 그 해 여름의 혁명과업은 “신념을 바꾸지 않기 위해 조합을 바꾸

는 일이었죠”. 과거 노동총동맹(CGT, 공산당계) 조합원이었던 디디에, 위그, 도미니크 그리고

쟝프랑소아는 이 노총 지도부의 신조합주의적 “제안”들을 더 이상 따르지 않게 되었다. “나

는 노동총동맹에 1978년 가입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는 조합이 매우 공격적이고 혁명적이었

죠. 그냥 조용히 기다리며 살고 싶었으면 프랑스 민주노동연맹(CFDT, 카톨릭계 노조이며 친

사회당적)에 가입했었겠죠. 점진적 개혁주의요? 그것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는 1995년 겨울의

총파업에서 증명된 것 아닙니까?(당시 프랑스 민주노동연맹 지도부는 우파정부의 신자유주의

적 ‘개혁안’에 찬성하면서 총파업을 거부하였다 – 역주) 협상이요? 그것은 가두에서 하는 것

이지 살롱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기는 하지만 장기집권하면서 조합 귀족이 되어버린 지도부”에 실망하고 모임 때마다

“조합 노선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의견이 무시당하면서 소외되버린 느와양

과 생캉탱지역의 수문지기들은 “무위계질서, 무조직이기주의, 무상근직원”의 ‘3무’ 조합이념

이 결국 자신들의 발에 맞는 신발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에게 계급투쟁이라는

것은 조합비 납부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또 조합원을 많이 모으기 위해 세일즈맨처럼

행동하지 않아요. 우리는 확신에 찬 사람들만 바랍니다. 그 다음, 국지적으로 일을 해쳐나갈

것입니다. 청소부도 만나고 교사들도 만나겠지요. 어떻게 보면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 같지만

적어도 각자 모두가 할말은 합니다.” 도미니크의 말이다.

쟝프랑소아는 전노맹이 “사용자들에게 가장 공포감을 주는 조합”이라고 말한다. 물론 전노

맹이 “대중적인 힘”에 근거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자동소총을 든 피에 굶주린 늑대”의 이

미지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지금은 1936년이 아니예요. 스페인 내전은 이미 끝났습

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화나면요 우리는 언제든지 세느강을 완전히 말려버릴 수 있습니

다. 우리같은 수문지기가 없다면요 국회의사당 건물도 겨울에는 물에 잠겨버릴겁니다. 그리

고 여름에는 세느강이 보잘것 없는 실개천으로 변하겠죠.” 라고 위그는 엄포를 놓았다.

전노맹의 수문지기 조합원들은 인원감축과 고용불안정에 대항하여 싸우고 주 30시간 노동

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우리 주장이 실현되려면 최소한 20년은 걸릴 것입니다.

따라서 일찍 투쟁에 돌입해야지요.”

이곳 저곳에서 무정부-조합주의자들은 그들의 조합 대표성을 확보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세느강 항해용역 부문의 여타 기존 단위조합들의 방해를 받고있는 실정이다. “아직 한 의석

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도미니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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