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짱돌

청소년 보호법, 청소년을 지킨다?

김성희 /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영화 <거짓말>, <춘향뎐>, 소년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된

그리고 단란주점, 원조교제….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문화, 경제, 정치 등의 사건들이 하나의 올가미 속에서 동일한 죄명을 뒤집어썼다. 미성년 여배우가 정사 장면을 연기했다는 이유로, 청소년간의 동성애를 그리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청소년의 성(性)을 상품화하고 범죄화하고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러한 사건들에 적용된 동일한 죄명의 키워드는 ‘청소년’. 그리고 그 스케일 큰 올가미는 다름 아닌 ‘청소년 보호법'(이하 청보법)이다.
1999년 7월에 개정된 청보법은 꾸준히 제기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 사회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력을 발휘하고 있다. “(…) 성장과정에 있는 청소년을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 구제하고 나아가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는 97년 청보법을 “(…)일부 법집행상 실효성 확보가 필요하거나 해석상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문 및 규정 미비로 청소년보호 사각지대가 되어온 부분 등을 보완하기 위하여” 개정한 것이 바로 현재의 청보
법이다. 결국 청보법은 불안정하고 미성숙한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을 보호하고,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참으로 많은 수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가 행정의 이 같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철없는 청소년들은 결코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청보법을 역이용, 술집주인들을 당황케 하고 공짜 술을 얻
어 마실 수 있는 호기를 노릴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길거리 혹은 사이버공간 상에서 떠돌아다니는 각종 음란물들을 탐닉하거나, 더 솔직하게는 기성층이 규정 내리는 그 음란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보법이 언급하는 각종 유해 환경, 특히 매체와 유흥업소에 대한 사법조치는 어찌 보면 기성세대의 헛수고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이미 일상이 되고, 문화가 되어버린 현실을 외면한 발상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전유하고 있는 현재의 소비문화와 행위들을 마냥 긍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시대에 뒤떨어진
청보법의 발상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음모를 들추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청보법은 청소년을 성장과정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보호와 규제의 대상으로 규정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청소년을 규정하는 담론이 성, 연령, 직업과 관계없이 ‘학생’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형성되는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학생다움의 외형과 행위, 미성숙한 정체성을 부여받게 되고, 이러한 미숙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유해환경들은 감추어지고 가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로써 청소년 스스로의 판단 능력은 상실되고, 다만 그들은 주어진 대로 제시되는 대로 만들어지는 하나의 수동적 주체로서 상정된다. 또한 이러한 학생다움을 강요하는 논리 속에는 자본주의 재생산 메카니즘이 내포되어 있다. 청소년의 일탈행위를 규정하고 규제하는 기득권 세력은 문제없이 자란 모범생을 요구한다. 착실하게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고, 의심 없이 자본주의의 메카니즘을 체화하는 미래의 노동자 말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사회적 규범과 전통을 위협하는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는 규제되고 잠재워야 할 골치거리이다. 하지만,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청소년의 소비적 형태와 결부된 그들의 일탈문화가 한편으로는 규제되고 통제되어야할 문제이지만, 한편으
로는 자본의 이윤 증대를 위해 조장되고 부추겨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적 환경 부재와 자본주의의 소비문화가 팽배한 상황에서 이러한 딜레마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즉, 청보법이 제시하는 각종 항목은 규제와 음성적 활성화라는 이중적 모습을 띠게 된다.
결국 청보법은 자본주의 기득권이 가지고 있는 만능 열쇠인 셈이다. 보호라는 미명하에 순응적인 노동자 재생산을 위해, 사회적 일탈행위의 규제를 위해, 그리고 때로는 각종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검열을 위해서 요긴하게 쓰이는 만능 열쇠. 청소년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발길을 돌리게 한다고 해서 존재하는 문제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된 문화적 지형을 인식하고, 이를 토대로 그 동안 점검되지 않았던 청소년을 둘러싼 각종 담론들을 뒤집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청소년을 규정하는 각종 정의들의 전환과 청소년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들의 생각으로, 그들의 언어와 스타일로 그들의 다양성에 접근해야만 한다. 동시에 보호와 규제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생산과 능동성을 부여할 수 있는, 성인과의 상대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로서 청소년의 인권과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청소년 정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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