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세계 자본주의

「시류에 반대하여(Against the Current)」 3·4월호

베로니카 듀존<포틀란드 주립대학 사회학 연구소>

여성들은 현재의 세계 경제통합으로 인해 독특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의 경험, 관심사, 그리고 요구들은 세계 경제를 이해하고 전화시키는데 있어 중심적인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사실, 즉 반세기 이상 동안 제3세계 발전을 위한 경제정책이 여성들에게 매우 다른 방식으로, 그리고 흔히 해로운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들에 대해서 기술했거나/기술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1970년대부터 지배해온 신자유주의(소위 “자유시장”) 정책에 기반한 현재의 세계 경제통합이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그들을 착취하여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니다.

특히 여성들은 개도국과 선진국을 가리지 않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농업부문의 40%, 산업부문의 4분의 1, 그리고 서비스 부문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노동력이 여성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식량 생산량의 최소한 50%는 개도국 여성농민들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80%에 이른다. 그리고 전세계 빈곤층 인구 13억명 중에서 여성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유엔 보고서는 매일 노동 시간의 66%가 여성들의 노동에 의해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의 수입은 전세계 수입의 10%, 전세계 재산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빈곤은 도대체 무엇을 설명해주는 것일까? 외채 위기를 전후로 하여 제3세계 경제발전 전략은 여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덧붙여서 여성들이 정말로 수출공장지대 노동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운 좋은 노동자들”이라면 왜 그들은 세계화된 경제 저 밑바닥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일까?

발전에서 외채 압박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은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국가발전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것에 착수하기 시작했다(이 발전 계획은 사실상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 수입대체 산업화, 국내 산업 보호, 그리고 자본 수출에 대한 엄격한 통제 등과 관련되어

있다). 일부의 국가들이 꽤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제3세게 국가들이 내부 지향적인 발전에 초점을 둔 시기였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초국적 은행과 세계은행으로부터 차입할 수 있는 자금이 쏟아지자 많은 국가들이 자국 경제의 유지 능력을 뛰어넘는 재원을 빌려오기 시작했다. 그 재원의 일부가 건설적인 계획에 투입되긴 했지만 대부분은 부정부패로 탕진되

거나 개인의 외국 은행 계좌로 흘러들어 갔다. 어떠한 경우도 이러한 정책이 민주적으로 진행된 예는 없다.

1970년대 석유 위기와 뒤이은 미국의 불황, 그리고 급격한 금리 상승은 1980년대 과도하게 확대되어 있던 제3세계 국가 경제에 큰 재앙을 가져왔다. 제3세계 국가들은 부채를 상환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전 계획의 초점을 급격히 변화시켜

야 했다. 그들이 지지했던 의제들은 애초에 만들어졌던 것보다 훨씬 덜 민주적으로 폐기되기 시작했다.

외채 위기는 제3세계 국가들을 새롭고 전례 없는 종속으로 이끌어갔다. 외채를 처리하는 데 있어 IMF에 의해 강요된 구조조정 정책과 긴축정책은 이들의 평범한 삶에, 이제는 악명높은 유산이 되어버린 사회, 경제적 파탄을 가져왔다. 국가들마다 신용도 유

지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자국 경제를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국민들과 자연자원을 착취하면서 발전 계획의 궤도를 포기해야만 했다.

수많은 정부 프로그램이 민영화되었다. 교육, 보건의료, 식생활 보조금 등의 사회적 성과는 급격히 해체되는 한편, 국민들을 일자리를 잃고 통화는 평가절하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의 효과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여성들이었고 그 영향은 아주 혹독한 것이었다. IMF의 긴축 정책은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로부터 의료혜택, 식생활 보조금, 편의 시설, 그리고 다른 사회적 서비스들을 빼앗아 갔다. 모든 자녀를 체계적으

로 교육시킬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아들의 교육을 지속시키기 위해 딸을 자퇴시켰다.

왜 여성들이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가?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여성들은 자신들이 외채를 끌어쓴 계약 당사자도 아니고, 외채로부터 아무런 이익도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외채 상환을 위해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곤 한다.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카리브해 여성들은 IMF와의 협상 대표가 남성들이 아닌 여성들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페기 앤트로부스의 말처럼 “그들(IMF)은 여성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No’라는 대답을 해야만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삶의 질이 계속해서 하락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주요 생계 책임자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없었던 남성 파트너와 가장들은 가정을 버리고 떠나거나 일을 찾아 도시로 이동했다. 남겨진 여성들은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려 부족한 수입을 채워야했다.

여성들은 비가시적인 가사노동과 기본적인 농촌 경제활동의 책임을 져야했을 뿐만 아니라 가계의 수지를 맞추기 위해 공식 및 비공식 경제 영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어느 쪽에서건 안정적인 경제 생활의 가능성은 매우 빈약했거나 계속 빈약해졌

다. 어떤 여성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국제 섹스 무역의 상품으로 전락하여 매매춘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섹스 무역은 선진국 남성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제3세계 국가들에 압도적으로 집중되는 사업이다. 최근에는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이전의 동구권 국가의 여성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

IMF 지배 하에서 외채를 지닌 국가들은 이른바 산업화를 촉진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경을 개방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이 ‘자유화’가 수출 공장 지대 여성들의 땀에 의해 가동되는 전세계 조립라인을 만들고 있다.

초착취 지대(EPZs)

여성들은 직면한 빈곤에서 해방되고 가부장적인 가정으로부터 상대적인 독립을 원하기 때문에 수출 공장 지대(EPZs)의 일자리는 여성들을 끊임없이 현혹시키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사회 일반의 공식적인 경제에서 전통적으로 배제되어왔던 여

성들이 EPZs 기업들의 유혹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PZs는 제3세계의 수많은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산업 편입을 용이하게 하고 있다. 이곳들은 원래 국가 내의 산업단지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고용 창출과 모조품 산업 건설의 한 방편으로 이곳들을 육성하고 있다.

EPZs는 흔히 국내 경제의 다른 부분들과는 아무런 연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때때로 이들 EPZs에는 도로, 전기, 그리고 공장외관과 같은 인프라가 지방 정부의 비용으로 제공되며 다른 곳에서 적용되는 노동조합의 기준들이 폭력적으로 탄압되기도 한다.

EPZs는 값싼 노동을 찾는 외국 투자자들을 위해 만들어진다.

여성들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이유로 인해 EPZs가 최고로 선호하는 고용 대상이다. (a) 여성들의 노동이 남성들의 노동보다 열등하다는 관념이 여성들의 노동의 댓가를 최소 임금이 하에 두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b) 여성들이 정밀함을 필요로 하는 부

품 조립과 같은 노동에 이상적인, 섬세한 손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c)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권위에 더 잘 복종하며 열악한 노동조건을 잘 견뎌낸다. (d) 젊은 여성들은 부모와 살기 때문에 숙식 비용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적은 임금을 지불해도 된다. EPZs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소름끼칠 정도로 참혹하다. 수당도 지급되지 않는 장시간 초과 근로, 변변치 않은 환풍 시설로 인해 공장 내에 가득 찬 유독 가스, 화장실 이용시간의 규제와 한 달에 한번 임신 테스트 요구 등의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침해는 증거로 제출된 여러 학대 사례의 일부분일 뿐이다. 무역과 이윤을 위해 여성을 삶을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지구적 노동착취

개도국의 여성들은 세계 경제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직한 노동조건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극히 제한적일지라도 자신들에게 제공된 경제 공간에 대해 감사하기도 한다.

여성, 특히 산업국가에 있는 빈곤층 노동계급의 여성들은 그들 자신의 모순과 속박을 경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대부분 이주민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노동착취 공장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사실은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조차도 여성은 경제적, 인간적 비참함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가 전례없는 경제 성장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고 있지만, ‘복지 개혁’과 정부 예산의 균형을 핑계 삼아 축소를 단행하지 않을지라도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과 모성 보호를 위한 필수적 서비스들(의료혜택, 보육, 생활임금)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제3세계와 선진국 양자 모두에서 그 수가 계속 늘어나는 여성 임금노동자들은 노동력의 구성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여성들은 세계 시장에서 노동자 조직화의 목표와 전망을 확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제받고 있다. 임금 노동자로서 여

성들에게 있어서 임금이나 수당과 같은 전통적인 노조의 관심사들과 보육, 교육, 가족 수입 부양과 같은 사회적 관심사들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자본주의가 대격동을 일으킨 시기(1930년대), ‘조직화를 가로막았던’ 보수적 노조 관료들에 의해 극도의 착취를 받으며, 미조직화된, 그리고 선거권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미국의 엄청난 산업 노동자층은 산별회의(CIO)의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 세

계 경제에서 착취받는 여성노동자들의 조직과 사회적 해방은 세계적인 규모에서 그와 비견될 정도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현재를 보더라도 사회적, 산업적, 환경적 정의를 공공연히 무시하는 WTO와 그것의 세계 경제통합 구조에 대항했던 시애틀 시위의 사회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시애틀 시위에 대한 몇몇 시각은 「시류에 반대하여(Against the

Current)」이번 호의 다른 기사에서 다뤄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세계 시장화의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적절한 국제 기구를 갈구하고 있다. 고통과 비탄의 4반세기가 흐른 후, 부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운동인 주빌리2000(Jubilee 2000)이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4월 16일∼17일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IMF와 세계은행에 반대하는 행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

이다. 문제는 여성의 삶과 수많은 인간의 생존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