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지구화된 자본주의의 지배를 뒤흔들다

「뉴스 & 레터스(www.newsandletters.org)」 3월호 마야 잔시

새로운 지구적 여성 운동이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전세계 여성들은 작년 11월 시애틀을 뒤흔든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항의 시위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조직과 행진, 직접 행동 참여 등은 물론이고, 자본주의적 확장이 곳곳에서 야기시킨 재앙에 대한 자신들의 단호한 입장을 밝힘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공표했다.

전세계의 여성 단체들은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성 노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2000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맞춰 세계 여성 파업을 제창했다. 또한 138개국의 여성들이 2000년 세계여성행진을 위한 여러 국내적 행동들을 조직하고 있다. 10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예정된 행진도 그 중의 하나이다. “포스트페미니즘”의 쓰레기통 속으로 물러서기는커녕, 국제 여성 운동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또한 강력하다.

이런 지구적 행동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성은 소위 지구화가 강요하는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빈곤층의 70%가 여성이다. 여성은 세계 식량의 50%를 생산하지만, 그들이 받는 소득은 겨우 10%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성의 50%가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부당한 역설이 되고 만다. “자유화”된 자본의 팽창과 그것이 잉태한 근본

주의의 억압을 받으며, 여성은 현재의 지구적 위기를 바라봄에 있어서 다른 어느 것에도 비길 수 없는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어떤 종류의 노동인가?

더 싸고 더 “유연한” 노동을 찾는 자본의 움직임은 세계 노동력 구성에 있어서 여성의 비중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여성은 여전히 남성보다 25%∼50% 더 적은 급여를 받을 뿐이며, 기업가들은 여성을 더 순종적이고, 덜 조직적이며, 결혼이나 임신 같은 사유로 해고하기 쉬운 존재로 보고 있다.

여성들은-종종 십대나 더 어린 나이-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그리고 손재주를 요구하는 조심스러운 일에 더 적합한 것으로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있다. 하청 및 시간제 노동, 계절 노동, 성과급 노동 등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는 세계 경제에서 여성은 특히 불안정하고 더욱 착취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의 노동은 부차적이며, 하기에 쉽게 잘라버릴 수 있는 노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의 94%가 비정규, 비조직 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사회적,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들고 또한 노동권 단체들의 지원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필리핀에서 여성은 경제지구 노동력의 70%에서 73%를 점하고 있으며 노동조건은 사상 최악의 상태로 하락했다.

이런 사정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민 여성 노동자들은 의류 산업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의 주된 노동력을 구성하고 있다. 최근 경제 및 사회권센터는 패션 디자인 업체 DKNY가 “강제적 노동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구화 과정에 있어서 또하나의 중요한 경향은 외주와 하청으로서 더 많은 여성 노동자를 비조직 부문으로 내몰고 있으며, 이들은 소규모 사업장이나 심지어는 집에서 초국적 기업의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가내 노동은 여성을 가부장적 가족 구조의 압제 속에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점점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이주 노동자 공급원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홍콩으로만 6만 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 가사 노동자들이 “수출”되고 있으며 매년 십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 또한 다른 많은 여성들이 성장하는 섹스 산업에 투입되기 위해 이나라를 떠나고 있다. 남성들이 에이즈 감염을 우려한다는 이유로 8살 밖에 되지 않는 소녀들이 매매춘에 투입되기도 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고용의 여성화”를 “양날의 검”으로 파악한다. 즉, 한편으로 외적인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이나 도심으로의 이주가 여성의 독립이나 자신의 의사 결정 기회를 제고시켜왔다. 하지만 아시아 경제 위기 이후 지난 2년 동안 한층 더 분명해진 사실은 그러한 독립은 기껏해야 변덕스러운 자본주의의 본성에 내재한 위기의 먹이감으로 순식간에 전락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은 아시아 경제 위기의 가장 큰 희생양이었다. 예를 들어 태국에서는 수출지향적인 의류나 가구 산업, 하급 플라스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최우선적으로 해고되었다. 필리핀에서는 여성 실업률이 1997년 12.3%에서 일년 후 15.2%(전체 실업률은 13.3%)로 떨어졌다. 남한에서는 매일 5,000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여성이 주된 구성원이었던 서비스 부문에서 많은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 (‘여성행동’ 자료집, 1999년 2호)

인도네시아 여성들 역시 많은 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 지역을 떠나왔던 여성들은 이제 엄청난 고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구화로 황폐화된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갈 수도 없다.

소위 구조조정은 실업 수당이나 복지 혜택 같은, 이들에게 유용할 수도 있었을 얼마 안되는 사회안전망마저도 파괴시켜 버렸다.

무임금 노동

“자유화”에 동반하는 것은 복지나 보건, 교육 등 공공 부문의 지출 축소와 가격 통제 완화, 농업 보조금 삭감 등이다. 사회적 필요를 조달하는 부담은 거의 온전히 여성이 짊어지게 되었다. 그 결과는 한 성(gender)에 전적으로 특화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무임금 여성 노동의 증가가 그것이다.

기술적으로 발전된 자본주의는 가사노동이나, 물긷기, 땔감 구하기 같은 일에 여성이 소비하는 시간의 양을 줄이기는커녕 대부분의 경우 그것을 증가시켜 왔다. 한 예로 북부 인도에서 여성은 땔감을 구하는데 종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개발”로 인해 주변 숲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모히니 데비라는 여성은 이시스(ISIS

International (www.isiswomen.org), 1974년 설립되었으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여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에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땔감을 구하기 위해 조금만 걸으면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한 시간 혹은 그 이상을 걸어야 하며, 이것은 보통 우리를 탈진 상태에 빠뜨린다.” (‘여성행동’, 1999년 2호)

더 많은 여성들이 외부 수입을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종종 점점 더 어린 나이에 무임금 노동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오직 임금 노동만을 수치에 집어넣는 아동노동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인도에서는 5천 4백 만에 달하는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2천 백만이다. 인도 여성의 전반적인 문자해득율은 39.4%이지만 남자의 경우엔 63.8%이다. 여성의 문자해득율은 라자스탄 주에서는 4%, 안트라 프라데시 주에서는 9%라는 놀라운 수치까지 떨어진다.

점점 더 시장에 의한 규정력이 커지고 있는 세계에서 여성이 하는 무임금 노동은 더욱 저평가되고 있으며, 종종 인식되지도 못한다. 이것이 2000년 3월 8일에 세계 여성 파업이 기획된 이유이다. 처음 아일랜드의 여성들이 제안한 이번 파업은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칠레, 페루, 메히코, 쿠르디스탄, 네덜란드,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 다른 수많은 나라에서 지지를 얻었다.

페루에서 원주민 여성들과 가내 노동자들은 “송꼬 와르미(케추아 말로 여성의 심장이란 뜻)”라는 자신들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이용, 그들의 노동을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들의 성명 중 일부를 옮긴다. “안데스 지역의 여성들은 농사일(여성이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하며, 가축을 돌본다)을 통해 가족 수입의 50% 이상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우리가 재배하고 준비하는 곡물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

다. 우리의 노동은 국가 재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성은 또한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사를 돌본다.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평가받지 않고 있다. 우리는 농촌 지역 생명과 문화의 주된 생산자이며, 유지자이다. 우리의 경제적, 사회적 기여는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여성들 간의 동맹이나 조직, 노동 및 환경 그룹들이야말로 세계 자본이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에 대한 협정들을 통해 분쇄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자들로부터 점점 더 많은 무임금 노동을 뽑아내는 것이 자본주의의 운동이다. “생산적” 경제로부터 “비생산적” 경제의 여성에게로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 사회적 서비스를 이전시키는 것은 여성으로부터 더 많은 무임금 노동을 뽑아내는 것에 다름 아

니다.

임금 노동에 있어서 극악한 노동 조건은 가사나 보육, 부양 같은 여성의 전통적 노동의 확장과 궤를 함께 한다. 이것은 자본의 지배가 “새로운” 세계 경제에 내재하고 있는 여성의 자결권에 대한 잠재적 기반을 침해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여성의 중심적 위치는 창조적 저항을 위한 공간을 열어 젖히고 있다. 국제 여성 운동에 있어서 새롭고 중요한 한 요소는 비정부기구(NGOs)이다. 많은 비정부기구들이 세계은행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그 통제하에 있지만 몇몇은 여성 노동자를 조직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임신에 관한 여성의 권한과 세계은행이 부과하는 구조조정 정책이 침식하고 있는 여타 여성의 권리들을 위해 싸우고 있기

도 하다.

NGOs 외부로 눈을 돌리면, 여성은 환경에서 노동 및 원주민 권리 운동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중요한 기층 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여성들은 가혹한 복지 “개악”에 맞선 싸움을 이끌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는 켄싱턴 복지권연합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여러 기층 조직의 여성들이 범아메리카 행진(March of Americas)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구화의 다른 얼굴

세계 전역에서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의 자결권을 위한 싸움이나 그 잠재적 기반을 자신들의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의 불안정화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서, 특히 성별(gender) 관계에 있어서 근본주의자들은 신비주의적 전통 질서를 재구

축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종종 여성의 배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편협한 민족주의가 지구화가 약속한 국경없는 세계로 대체되기는커녕, 근본주의와 우익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으며, 종종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가리기 위한 가면이 되기도 한다.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공포스러운 폭력이 자행되는 곳도 없다. 탈리반의 통치는 아프가니스탄 영토의 80%에 이르는 지배지역에서 절대적인 성별 아파르트헤이트를 실시하고 있다. 공공 장소에서 여성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신의 몸을 감싸야 할 뿐 아니라, 남자 친척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거리를 걸을 수도 없다. 교육과 보건, 노동에 대한 여성의 권리는 무조건적으로 부정된다.

망명중인 혁명적 아프가니스탄 여성 연합(RAWA (www.rawa.org), 1977년 카불에서 창립된 단체로 사회적 정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독립적 정치 조직. 근본주의자들에 맞서 평화와 자유, 민주주의,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음)은 국제 여성의 날에 파키스탄에서 천여 명의 여성이 참여하는 집회를 계획했다. 최근에는 흑인여성연합이 RAWA에 지지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미국 내의 자유주의적 여성 그룹(Feminist Majority (www.feminist.org), 1987년 설립된 여성운동 조직, 미국 여성의 대다수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간주하고 있다는데서 출발)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여성들이 아프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알려내기 위한 행동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것은 국경을 초월하여 조직되고 있는 여성 운동의 또 하나의 중요한 예이다.

여성 운동에 있어서 비정부기구의 중요성은 이들에 대한 우익 정부의 반동적 움직임에서 부분적으로 찾아질 수도 있다. 한 예로 파키스탄은 ‘시르카트 가’라는 중요한 여성 운동 그룹을 포함, 약 2천여 개의 비정부기구들의 등록을 취소했다. 현재의 군부 체제는 전 총리 나와즈 샤리프가 물꼬를 튼 바 있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파키스탄 의회는 “의로운” 죽음에 반대하는 결의안 통과를 거부했다. “수치”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이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인권 그룹들은 작년에만 최소한 286명의 여성들이 “의로운” 죽음이라는 명목으로 살해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잔혹한 살인에 대한 법적인 제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여성 운동 NGO들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나치 동조 세력인 파시스트 자유당이 참여하고 있는 신생 연립 정부가 여성부를 폐지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여성부는 많은 여성 운동 NGO들을 재정지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단체들의 사활을 건 투쟁과 인종주의자와 네오파시스트의 유럽연합 국가 통치 허용에 강력히 반대하는 모든 오스트리아인에 대한 여러분의 지원을 요청한다.”

인도의 근본주의자들은 여성에 대한 좀 더 분명한 방식의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세계 각지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영화제작자인 디파 메타에 대한 지지를 위해 결집하고 있다. 바라나시라는 힌두교 성지에서 배우자를 사별한 여성들이 겪는 고난을 그린 디파 메타의 새 영화 “워터(Water)”가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이다. 메타를 지지하는 망명 방글라데시 페미니스트 작가 타슬리마 나스린의 인도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비난 성명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무원칙한 침묵을 지킬 뿐이다.

이상은 세계 각지에서 지구화된 자본에 맞선 투쟁의 최전선에 서있는 여성 진영의 성장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일 뿐이다. 죽음과 불구의 위험에 맞서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좀 더 인간적인 세상에서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지구적 연대 행동들이 세계 혁명 운동의 서막이 될 것인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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