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인가, 아메리칸 파이인가?

[네이션] 4/3 피터 비스킨드

지난 해 나는 할리우드와 정치를 특집으로 다룬 「네이션」 첫 호의 객원 편집위원이었다.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왜 이 잡지가 이제까지의 기사 관례에서 그토록 멀리 떨어진 길로 나아가려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네이션」은 오랜 독보적인 역사를 통틀어 스튜어트 클라완스 같은 현직 작가들만이 아니라 위대한 제임스 애지나 심지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등의 영화에 관해 뛰어난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모두는 칼 브롬리가 네이션재단의 새로운 출판사인 네이션북스에서 발간할 두 권의 저서에 간략하게 정리될 예정이다. 따라서 올해는 이러한 작업을 잇는 시기이며, 할리우드의 자기복제 노력을 괴롭히곤 하는 속편병(sequelitis)의 위험에 대한 속편면역(sequel-immune)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아래의 작품 모음은 다소 절충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현상이 면밀히 관찰된 것으로 규정될 때 흔히 그러한 것처럼) 소위 “독립” 영화가 자기 자신의 성공에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가는 바로 이 때 이들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독립영화들의 위상이 너무나도 올라, 독립영화사를 사들이고 독립영화 감독들을 고용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생산비를 제외하고는) “할리우드 외부의” 영화들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한 영화들을 시험하기 시작할 정도였다. 작년에 나온 영화만 보더라도 드림웍스의 『아메리칸 뷰티』, 유니버설의 『악마와의 여행』, 파라마운트의 『선거』, 워너브라더스의 『쓰리킹즈』, 20세기폭스의 『파이트 클럽』, 파라마운트/미라맥스의 『리플리』 등이 제작되었다. 사실 작년에 가장 성공을 거두고 평단에서도 인정받은 메이저 영화의 감독 두 명은 미라맥스에서 감독 경력을 시작한 이들이었다. M. 나이트 샤말란과 알렉산더 페인이 그들인데, 한편 데이비드 O. 러셀과 안소니 밍겔라는 각각 파인라인과 골드윈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그 역도 진실이다. 긴 가뭄 후에 미라맥스가 만들어낸 첫 번째 히트작인 『스크림 3』은 과거를 힐끗 바라보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어느 모로 보나 메이저

영화였는데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픽쳐스사를 애도하고 있었다.

대다수 독립영화 감독들은 70년대 영화들에서 영감을 찾고 있다. 영화사들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던 변화에서 멀리 떨어져서 장발을 하고 마약을 피우는 일군의 감독들에게 돈을 쥐어주던(그 즉시 이들은 할리우드가 이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위대한 영화들을 만들곤 했다), “새로운 할리우드”라는 좋았던 황금의 나날들 같은 그런 시대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먼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69년에 『이지라이더』는 할리우드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1999년의 경우 『이지라이더』처럼, 할리우드에게 불쾌한 진실(복잡한 이동촬영 기술과 시험 상영들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는 아무 것도 모른다)을 상기시키면서 저예산으로 거대한 이윤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거친 촬영과 열악한 조명, 유치한 편집 등을 통해 기술적 정확성의 횡포를 전복시킨 작품은 바로 『블레어위치』였다. 수백만의 창백한 인터넷광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그래!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라고 외칠 수 있었다. 따라서 다시 한번 쾅하고 문이 열렸고, 전세대의 독립영화 감독들이 상당한 지위를 맛본 것과 마찬가지로 성냥갑 크기의 디지털 카메라를 맨 새로운 일군의 젊은이들이 그 대열에 합류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 사이의 중대한 차이는 오늘날의 영화사들은 전혀 위기에 처해있지 않다는 점이며, 따라서 이들이 비록 젊은 인재에 굶주려있긴 하지만 그나마 극소수의 운좋은 이들에게만 고용조건을 일방적으로 지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독립영화인들과 그들의 팬은 젊고 불경하긴 하지만 베트남전쟁 시대의 반문화 지지자들처럼 “정치적”이지는 않다. 이들 영화감독의 대부분은 작년의 칠칠치 못한 틴에이지 블록버스터인『아메리칸 파이』의 뒤를 잇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있으며, 영화관객들 또한 이런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은 어느때보다도 비타협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는 올해 개최한 포럼에서 일곱 명의 독립영화 감독(킴벌리 피어스, 데이비드 O. 러셀, 알렉산더 페인, 앨리슨 앤더스, 케빈 스미스, 크리스틴 배천, 존 피어슨)에게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논의하도록 요청하였고 그 결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이들은 어쨌든 ‘독립’영

화 감독이다), 이들이 거의 모든 점에 있어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이저/독립 혼성물과 영화 배급망, 매점 및 인수합병 등이 너무나도 물을 흐려버리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독립적인가 하는 것에 관한 낡은 주장들은 바늘귀 위에 얼마나 많은 천사가 앉을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속담 속의 논쟁으로 변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은 벌써 단념해버리면서(이는 할리우드와 독립영화 감독들 사이의 결혼을 암묵

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인디우드(Indiewood)”를 새롭게 구성하자고 말하고 있다.

한편 메이저 영화사들에서는 또다른 변화들이 진행중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우리가 복합영화관에서 무슨 영화를 볼지 결정하는 데 있어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 관해, 그녀 자신이 영화제작자이

자 소녀클럽의 창립멤버인, 현명하고 익살맞은 린다 옵스트는 어떻게 이렇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감독, 행위예술가인 대니 호흐 자신이 할리우드에서 겪은 불행을 다룬 작품과 더불어 달라이 라마가 아욕(我慾)과 권력, 이따금 이루어지는 기부라는 사악한 땅을 통과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오빌 셸의 날카로운 단편을 갖고 있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예술과 상업 사이의 격전장이었다. 지난해 본지의 주제가 돈이었던데 반해 올해 우리는 다소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돈이란 것은 파친코 기계에서 돌아가는 달러 그림처럼 항상 영화사 윗대가리들의 눈을 환하게 만드는 반면, 예술은

(부분적으로는 독립영화 감독들 덕택에, 그러나 또한 수익 결산보다는 용기를 중요시하는 한줌도 안되는 영화사 중역들 덕택에)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 피터 비스킨드 :「배너티페어(Vanity Fair)」의 객원 논설위원으로 독립영화인들에 관한 책을 저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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