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평화책방
不惑과 不惑? 혹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이주영 / 평화인권연대 회원
프롤로그>
작년 1월쯤이었던가 대학 선배들과 오랜만에 조촐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그들은 대학 시절 나에게 있어서 문학과 삶에 대한 열정의 본보기였다. 선배들은 아직까지 문학의 언저리에서 노닐고 있는 나의 처지를 부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서 문학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르고 지냈던 서로의 근황을 교환하던 중 그 당시 신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던 황지우의 새 시집이 화제에 올랐다. 그러다 잘 기억나지 않는 구절을 떠올리기 위해 각자의 가방을 뒤적여 테이블 위에 동시에 올려놓았던 시집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이다.
시집 들여다보기
황지우의 여섯 번째 시집인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는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생각하게끔 만든다. 중년의 화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자기 자신, ‘바깥’에 대한 사유, ‘나무 崇拜’ 모티브, ‘어머님’의 임종을 맞이한 시적 자아의 내면 풍경 등이 그것이다. 평자에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점이 ‘바깥’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중년의 화자가 취하고 있는 시점에 준거해서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바라보고자 한다. 여섯 번째 시집에 도달한 황지우는 예전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단적으로 말해서 황
지우는 더 이상 『게 눈 속의 연꽃』이전의 황지우가 아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의 화자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다. 예전의 그의 시선이 ‘밖’으로 열려 있었다면 현재의 그의 시선은 ‘안’으로 침잠하고 있다. 사실 황지우의 변모 과정은 여섯 번째 시집 이전에 이미 예고되고 있었다. 『94 소월시 문학상 수상 시집』이나 조각 시집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에서 황지우는 이미 변모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그의 시선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여섯 번째 시집에서 ‘바깥’에 대한 사유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바깥’의 모습은 불투명하다. 이에 비해 ‘안’의 모습은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투명하다. 애처러움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고백시들이 이러한 사실을 반증한다. 동양에서는 40의 나이를 가리켜 불혹이라 말한다. 부질없이 망설이거나 무엇에 마음이 흘리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不惑. 황지우는 이번 시집에서 불혹의 나이에 이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대해서 물음표를 찍고 있다. 전자의 모습은 그가 더 이상 ‘밖’의 변화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는 데에서 나타나며, 후자의 모습은 중년의 처량한 모습을 반추한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不惑과 不惑? 사이에 있는 황지우의 모습을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쯤에서 황지우가 최근에 주장한 다음의 내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문학은 ‘문화자본’의 부가가치에 의해 계량화되고 교환되는 시장으로부터 은둔해야 한다. …… 문학은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내려가야 한다.” (「이제 문학은 은둔하자」,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1999, p.109) 이와 같은 황지우의 육성을 통해 우리는 不惑과 不惑? 사이에 있는 황지우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어쩌면 그는 다시 언더 그라운드로 내려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철저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깥’에 대한 사유가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밖’으로 향하게 될 지 혹은 ‘안’과 넘나들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다.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가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작은 실마리에 불구하기 때문에.
에필로그>
최근 그 선배들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각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화려했던 싱글 생활을 마무리하는 한 선배, 지역 활동을 접고 현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중인 한 선배, 그리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한 나.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들이나 세상의 통념들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 모두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할 현실이다. 다만 바램이 있다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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