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본 세상 : Peacecinema <숨결>

고통과 기억을 함께 나누는 할머니들의 작은 연대

– 미망(未忘), 불망(不忘), 비망(備忘) –

김일란 / 평화인권연대 회원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리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을 위하여」부분, 고정희

하루가 시작된지도 상당히 지났지만, 나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으름이 자랑인 줄 아는 나는 으레하듯이 빈둥거렸다. “3시에 영화가 시작이니까… 여기서…” 영화관에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최후의 시간을 계산하였다. 출발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으나, 시계를 노려보면서 계속 누워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정신없이 준비를 하였다. 급히 집을 나서는데, 마루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무언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가 작아지셨다.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치료를 받은 후로 더 작아지셨다. 대학이며 대학원을 진학할 때도, 영화를 한다고 집안을 발칵 뒤집었을 때도 할머니는 항상 나를 믿어주셨다. 여자도 하고 싶은 거하고, 배우고 싶은 만큼 배워야 한다면서. 그렇게 든든하던 할머니가 8살짜리 계집아이만큼 작아졌다.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뜨거운 것이 목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괜스레 울컥하여, 할머니를 안으며 말했다. “오래 살아야 돼요.” 이 한마디를 휙 던지고 서둘러 나온 것이 내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일까? <숨결>을 보는 동안, 이용수 할머니가 강묘란 할머니를 찾아가 장수(長壽)를 부탁하는 장면에서, 김윤심 할머니가 딸을 어루만지고 손녀딸을 걱정하는 장면에서, 강묘란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에서 울어버린 것은.

<숨결>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것은 죽음의 이미지였다. 시계 초침 소리가 더욱 크게만 들리는 할머니들. 죽음을 앞 둔 할머니들. 삶의 기억들을 잊을 수도 없고(未忘), 잊지도 않았고(不忘), 잊어버렸을 때를 대비하여 기록하려는(備忘)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안타깝다. <낮은 목소리2>는 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은 강덕경 할머니의 권유로 진행되었다. 강덕경 할머니는 자신의 투병생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카메라에 담아 줄 것을 부탁했고, 그런 결과가 바로 <낮은 목소리2>였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 3부작의 완결인 <숨결>은 강덕경 할머니의 묘지에서 시작한다. 제작진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강덕경 할머니의 묘지를 방문하여, 할머니가 평소에 좋아하던 담배를 묘지에 놓아둔다. 사운드 오프(sound-off)로 처리된 묘지 위로 들판과 강물이 보인다. 그러나 소리를 죽인 화면에 “죽고 나면 못 찍는다. 실컷 찍어라. 이 영화 나중에 다 볼 수 있도록… 내가 저 세상에 가서라도 기도할거고 시청자들

이 많이 생겨서 우리를 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래요”라고 말했던 할머니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겹쳐지는 듯 했다. 이러한 시위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반복된다. 이번에는 강묘란 할머니의 죽음이다. 강묘란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은 제작진의 진심 어린 주장이 담겨 있다. 그것은 관객을 설득시키겠다는 강변이 아니었다. 다만 관객에게 더 늦기 전에 현재의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체로 나서기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숨결>은 할머니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말, 그림, 글 등의 수단을 사용하여, 자신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으려 애쓰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있었다. 할머니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경험을 서술했다. 우선적으로 성폭력 피해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을 직접 인터뷰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할머니들이 위안부 수용소에서 겪었던 경험을 상세하게 들려주는데 할애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만난 심달연 할머니는 ‘나물 뜯어러 갔다가 언니랑 끌려간’ 뒤로 상해, 대만, 필리핀, 파푸아 뉴기니의 위안소로 끌려 다녔다. 위안소에 간 첫 날, 군인들이 위협삼아 던진 칼에 허벅지를 다쳐 기절 한 뒤로, 거듭되는 성폭력과 강간에 실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 후 동생의 지극한 간병으로 정신을 좀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담담하게 때로는 질문자가 때로는 해설자가 되었다. 그러나 강원도 횡성의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는 강묘란 할머

니 앞에서는 끝내 울어버린다. 너무나도 힘겨운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종말을 고하고 있는 한 인간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묘란 할머니의 메마른 육체 너머에 있었을 어린 모습을, 인권을 유린당하기 전에 당당한 모습을 상상해 보려 했으나, 세월의 무게를 걷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강묘란 할머니의 모습 위로, 나의 할머니의 모습이 그리고 나의 모습이 겹쳐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렇듯 이용수 할머니가 ‘말’을 통해서 발언을 했다면, 김윤심 할머니는 ‘글’로서 자신을 드러냈다. 김윤심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처럼, 강간과 폭력의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며억울한 일이 있어도 성폭력의 피해자이기에 정당한 주장을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사회에서 폭력의 역사에 감추어진 진실을 밝힌다는 행위는 멸시와 외면을 각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윤심 할머니의 장면은 내용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형식상으로도 <낮은 목소리> 3부작 내에서 가장 명 장면이라 생각한다. 김윤심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탈출을 한 후 바로 결혼을 했다.

그것은 또 다시 끌려갈 것을 두려워한 부모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결혼’이 이성간의 육체적 관계를 내포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여성의 몸과 정신을 강탈해간 남성들(과 일본)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가 꽃처럼 예쁜 딸을 낳았다. 그러나 엄마의 성병 때문에 뇌성마비에 걸려 말을 못하게 되었다. 위안부로 끌려갔던 ‘과거’를 들킬까봐 말 못하는 딸아이를 업고 무작정 서울로 도망쳤다. 파출부에, 음식점 주방일에, 바느질까지 억척같이 고생하면서도 딸아이에게 할머니의 과거는 비밀이었다. 이제는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투사가 된 할머니일지라도 딸이 아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딸에게만큼은 험한 역사와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딸은 알고 있었다. 카메라도 당황하여 움찔거리는데 대화는 감동적으로 진행된다. 엄마가 아는 것을 싫어하니까 비밀을 지켜왔노라는 딸의 미소가 너무나 해맑고 예뻤다. 김윤심 할머니는 수요집회를 통해 다른 할머니들과 만나면서 가장 기쁜 것은 “활달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동일한 경험을 이해하고 그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수치심을 느껴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를 깨달았으니까.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혼자 ‘무덤까지 가져가야 했던’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 만남은 상처받기 전의 자유로웠던 어린 시절을 되새길 수도 있으며, 성폭력과 구타로 멍든 몸과 육체를 위로 받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수요 집회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위해 정대협 교육관으로 모인 할머니들은 그간에 돌아가신 할머니들, 국민기금 거부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 것인지를 의논한다. 그러한 할머니들의 대화는 관객에게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가를 넌지시 질문하는 듯했다.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지도 10년 정도 되었다. 여성으로서는 힘든 증언을 감행했던 김학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4년이 되었다. 21세기를 운운하며 세상이 현저하게 변화된 듯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할머니들은 점점 힘겨워하신다. 이 문제를 삶의 모서리로 미루어 두었던 나조차도 마음이 너무나 급해진다. 수요집회는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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