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새벽 3시 43분.나는 꼼작도 않고 최종 개표결과를 응시했다.전국 낙선율 68.6%(59명)에 22개 집중 낙선지역 68.2%(15명). 믿어지지 않는 수치였다. 예상치를 20% 이상 웃도는 성과였다.
“유권자들이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을 함께 했구나!”
일순 내 가슴을 벅차게 하는 끝모를 신뢰감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이 운동을 처음 준비하던 지난해 12월, 낙선운동을 처음 발기한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여연·녹색연합 등 8개 단체는 이같은 성공을 꿈도 꾸지 못했다.
새해들어 낙선운동에 대한 불법성 여부가 논란이 되자 우리 고민은 커지기 시작했다. 시민단체가 불법을 자행하는 집단으로 비춰질 때 과연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난해 가을 시민단체들이 국정감사 모니터를 하겠다고 했을때 국회의원들이 버여준 행태를 보고 우리를 깨달았다.
부패·무능 정치인을 뽑아놓은 뒤 이들의 의정활동을 감시하는 것은 뒷북치기라는 것을.불법운동으로 매도당하고 구속되더라도 선거에서 정치판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다짐했다.더구나 법률가와 교수들의 자문결과,낙선운동은 현행 선거법에는 불법이지만‘합헌적’이란 유권해석을 받아냈다.
1월 12일 총선연대는 4백12개 단체로 구성된 전국적인 유권자운동체로 출범했다.
낙천리스트에 모아진 국민적 관심은 너무도 큰 힘이자 부담이었다.1차 발표를 18일에서 24일로 연기했지만 조사작업은 끝이 없었다. 자료조사팀은 밥먹듯 밤을 샜다.
발표 일주일 전 각 의원실에 소명자료를 보내도록 요청한 것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일감을 만들어냈지만 사실확인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었다.국회‘고스톱 의원’의 한 명으로 지목됐던 모 의원은‘본인은 눈병 때문에 화투를 칠 수 없었다’는 소명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보’사건은 두고두고 쟁점이 됐다.대형부패사건에서 불기소된 정치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핵심문제였다.매번 대가성이 있느니 없느니,떡값이니 뇌물이니 하는 논란거리를 만들어온‘고무줄’정치관계법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내부논의를 거쳐 부패 관련 불기소 대상자 중 금품을 받은게 분명하거나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발행하지 않은 경우는 전원 낙천 대상자에 포함시켰다.한보 관련 2심에서 무죄를 받은 여당의 K의원도 낙천대상자에 포함시켰다.평소 마당발로 유명한 K의원은 시민단체 대표들과도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예외일 수 없었다.
2월 2일 원외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2차 명단발표엔 곡절이 많았다. 낙천대상자로 거론된 서울의 K전의원은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파동때 여당의원으로 유일하게 대통령 탄핵안에 서명하는 등 지조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딱하게도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었다.게다가 자료 조사팀장을 맡은 김기식 공동사무처장의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로 평소 김처장이 ‘아버지’처럼 모시던 분이었다.K전의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낙천대상자가 되느니 공천신청을 아예 않겠으니 미리 연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명단 발표 전날,김처장은 공천신청을 하지 않는게 좋겠다는 전화를직접 해야 했다.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조심 또 조심.살얼음판을 걷듯 자료를 검토하고 또 검토했건만 2차 명단 발표 이후 일이 터졌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었으나 자료가 섞이는 바람에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항의전화를 받을 때는 명단 선정과정의 모든 중압감이 송곳이 돼 정수리를 내리찍는 느낌이었다.
1·2차 명단 발표 직후엔 각종 항의전화에 시달렸다.그 중에서도 박원순 상임집행위원장은 거의 모든 항의전화의 표적이었다.상당수가 평소 안면있는 정치인들이었지만 그는 실무진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그 모든 부담을 감내했다.그는 검찰에 불려가면서 당시의 심경을‘창살없는 감옥’으로표현했다.
1·2차 낙천대상 발표 후 총선연대는 예정된 정치권의 역공에 직면했다.
음모론과 유착설에 총선연대 지도부는 절망했다.지도부 개개인에 대한 조직적 유언비어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다.최열대표의 경우는 고약했다.
내연의 여자와 일본으로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식의 황당한 내용이었다.그‘동행’이 한참이나 연상인 L교수와 국제회의 참석차 동행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황당한 거짓공세는 계속됐다.
최대표는 또 다른 아픔도 겪어야 했다.춘천에서 출마를 준비중이던 동생이 최대표의 중립성 시비를 우려해 공천신청을 포기한 것이다.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최열 대표도 그날 시종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총선 릴레이가 시작되자 총선연대 대표단은 86명의 낙선대상자와 22개 집중지역을 발표하고 낙선운동에 돌입했다.
“○○○후보는 부패한 사람입니다.찍지 마세요….” 좋은 말도 10번만하면 피곤한 법.하물며 남을 떨어뜨리는 유세라니? 시민단체 대표자나 회원들에게 커다란 마음의 짐이 아닐 수 없었다.나도 거리에 나서 봤지만 처음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열성지지자들의 핀잔과 욕설,심지어 삿대질과 몸싸움에 시달리며‘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스스로 묻고 또물었다.
낙선운동은 지역에서 더욱 힘들었다.그들은 지역감정의 최전선에서 마땅한 대안도 없이 정치개혁을 위해 싸웠다.서울에서 야유를 받을 때 지역에선 밀가루 세례를 받았고,서울에서 지지자들에게 떠밀릴 때,지역에선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지역총선연대는 이런 악조건을 뚫고 만들어낸 성과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전주 총선연대는 전주에서 임실까지 연일 차량시위를 벌여 2천명이 모이는 집회를 이끌어냈다.
부산은 한달간 역광장에서 지역감정에 맞선 텐트농성을 전개하며 낙선운동을 펼쳤다.음모론의 발원지인 대전에서는 지지율을 20%나 뒤바꿔 낙선대상자인 L모의원을 정말 낙선시켰다.전남 해남에서 3천명이 모인 장터의 환호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선거운동 마지막날 저녁.
우리 모두는 명동성당에 모여 촛불집회를 가졌다.박원순 집행위원장이 총선전야 메시지를 낭독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우리를 지지하기 위해 서명한 수십만명의 시민들.3억5천여만원에 이르기까지 한푼 두푼의 후원금을 내준 시민들.총선연대 인터넷을 찾은 85만명의 네티즌을….정치의 방관자,역사의 소외자로 살아왔던 우리 국민들이 이제 정치의 주체,역사의 주인공으로 무대로 올라갈 때입니다.한표 한표로 우리의 소박한 꿈을 실천할 때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깊어가는 4월의 밤과 함께 촉촉히 젖어들었다.
이태호<총선연대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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