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하는 이유 ■

글 / 김주영 (기지촌 여성운동단체 새움터 사무국장)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일어나는 부작용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미군기지 인근에 형성된 기지촌 문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지촌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해방 직후 일본군이 물러간 자리에 미군이 들어오게 되면서, 미군기지 주변에는 소위 말하는 ‘기지촌’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은마는 오지 않는다’나 ‘하얀 전쟁’과 같은 영화에서 보신 것과 비슷한 형태의 기지촌들이 경기도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생겨났던 것입니다.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기지촌의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였습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10여개 국가의 연합군이 자유 수호라는 명분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게 되면서 많은 외국 군인들이 유입되었던 이유도 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지촌의 성산업은 더욱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즉, 많은 한국 남성들이 전쟁 과정에서 사망하게 되고,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여성 민중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여성의 정조나 순결을 중요시하던 봉건적 가치는 급격히 유입 된 서구 문화와 자본의 위력 앞에서 그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풍부한 물자와 자본으로 무장한 미군 기지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가부장적 남성성의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측면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전쟁이라는 과정에서, 그 이전에는 감추어졌던 성적 모순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전쟁은 끝났지만-정확히 말하면 휴전 상태-미군의 주둔과 전쟁으로 인해 시작된 기지촌의 문제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더욱 은폐되고 있습니다. 혼혈아동과 매춘여성으로 대표되는 기지촌 문제의 근원에는, 아무런 여과장치도 없이 유입된 서구의 자본과 군사 문화,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확고한 지위를 굳힌 이중적 가부장제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에서 언급한 원인들은 상호 작용을 통해 서로의 영역을 더욱 강화, 유지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는 약 100여개의 미군 기지가 주둔해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의 용산 기지를 비롯해서 동두천, 송탄, 군산, 왜관 등 전국 각지에 주둔한 미군 기지를 중심으로, 많은 기지촌들이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필리핀, 러시아 등 에서 많은 여성들이 유입되면서 한국 여성들의 수는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오히려 기지촌 성산업의 구조는 더욱 산업화되고 인근 지역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지촌의 역사적, 구조적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논의가 기지촌 문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기지촌 여성의 인권 문제로 소급되지 않는다면 한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간의 갈등이나 이중적 가부장제와 같은 거대 담론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면, 기지촌 여성 개개인의 ‘삶’은 묻혀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논의의 중심이 되었던 적이 없는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 슬픔, 그리고 삶입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거창하고 어려운 말들로 풀어내기보다는 제가 활동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기지촌 여성이 아닌, 그리고 될 수도 없는 남자인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짓고 자신의 문제를 당당히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의 위치는 ‘일반’ 시민과 기지촌 여성 사이의 어디쯤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지촌 여성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당연히 주한 미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지촌 생성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 미군의 한국 주둔이고, 지금까지 기지촌에서 매매춘 산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난 3월의 의정부 서 정만씨 살인사건에 이르기까지 기지촌 여성에게 저질러진 수많은 범죄의 가해자 역시 미군이었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기지촌에서는 많은 범죄가 일어났지만, 반공 이데올로기와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결과라는 논리로 대부분 은폐되어 왔습니다. 지난 1992년 동두천에서 미군에 의해 한 여성이 처참하게 살해되고, 그 모습이 시민들에게 공개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군에 의한 ‘한국여성’의 살인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순결한 민족의 딸…’, ‘우리의 누이…’ 등 당시의 구호에서 상징화되었던 피해자의 이미지에는, 도덕적 결점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매춘여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미군 주둔의 부당함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피해 여성이 순결하고 보호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여성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최근에 의정부에서 살해된 서정만씨의 경우에도, 여러 유인물이나 성명서에서 서정만 ‘할머니’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기지촌 매춘여성을 ‘양공주’라고 부르던 사람들조차, 미군에게 살해된 지금에 와서는 할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순이 넘 도록 양공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 분이, 미군에 의해 그렇게 죽임을 당하고 나서야 할머니로 불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오히려 여성들을 미군 범죄가 계속되는 기지촌이라는 공간에 그대로 묶어둘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가부장적 논리는 계속되는 기지촌의 미군 범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알려짐으로써 추상적인 담론 수준에서 머물던 기지촌 문제가 구체적인 활동의 장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기지촌에서 미군 범죄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사건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와 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여성들이 기지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지, 왜 기지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미군 범죄에 희생될 수밖에 없는지, 그러면서도 왜 빠져나올 수 없는지, 무엇이 기지촌이라는 공간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기지촌에서 활동하면서 주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기지촌 여성들이 미군에게 살해당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지촌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과 억압의 원인 중에서 미군이 차지하는 부분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살인 사건들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정과 원인, 그리고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결과와 가해자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점은, ‘미국’의 군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대’ 자체에도 원인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폭력적인 남성성을 강화 재생산해내는 군대문화는, 여성을 성욕 해결을 통한 사기 진작의 수단이며 열등한 존재로 규정지을 뿐입니다. 게다가 점령군의 지위로 상대 국가에 주둔하는 경우에는, 약소국 국민-특히 여성-에 대한 상대적 우월성이 겹쳐지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기지촌의 미군전용클럽이나 매춘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많은 범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미군에 의한 폭행 사건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지난 2월 이태원에서 발생한 기지촌 여성 살인 사건의 원인이 된 변태적인 성행위 요구나 화대 지불 거부 등과 같은 일도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 건의 살인 사건은 이런 범죄 피해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미군에 의한 범죄 피해뿐만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겪게되는 물리적, 심리적 피해는 너무나 많습니다. 포주나 클럽 업주에 의한 착취, 매춘 강요에서 강제적인 성병 검진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일반 시민들의 편견어린 시선 등 기지촌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는 억압의 고리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는 감금 상태에서 매춘을 강요당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군을 상대로 술을 한 잔이라도 더 팔고 매춘을 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기지촌 여성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그 곳을 빠져 나오지 못하냐고 되묻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자신들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 여성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건소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병 검진 역시 미군들에게 깨끗한 여성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에 의한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한때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매춘을 장려했던 정부가, 이제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착취만을 일삼고 있습니다. 엄연히 매매춘이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매춘 여성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매춘을 장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매춘 여성의 인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미군을 위한 성적 대상물로서의 가치만이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저희 새움터 직업재활센타에서 일하고 계신 회원들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이런 경험에 의한 상처들로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피해의식, 분노, 사회 부적응,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 오랜 시간동안의 매춘 경험으로 많은 상처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한 예로, 작년 여름 수해로 인해 인근 초등학교에 대피해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저희 회원들과 클럽에서 일하시는 많은 여성들이 대피해 있던 교실로 방송국 기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단지 수해 피해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만,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어떠한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이미 그런 비난의 시선에서 많은 상처를 경험하였던 기지촌 여성들이 자신의 어려움이나 피해 사례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파생된 문제점은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가장 심각하면서도 소외되어 왔습니다. 분명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아왔던 기지촌 여성들은 아직까지도 스스로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의 상처가 너무나 깊고 우리가 그 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한미군이 한국에 남긴 수많은 모순들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절대 놓쳐서는 안됩니다. 미군기지가 한국에서 없어지는 날, 기지촌 여성을 비롯하여 많은 억압받았던 이들의 상처가 함께 치유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그 날을 준비해야 됩니다. 삼팔선이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미군 역시 한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상처받고 고통받아 왔음을 이해하고, 진정 열린 마음으로 모두를 감싸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