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의 현장, 미군부대를 말한다!

■ 글 / 이소희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간사)

부대 시멘트 벽을 허물다 사람의 뼈가 기회가 닿아 처음으로 용산 미군기지 안에 들어갔을 때였다. 학교며 병원, 비디오가게, 심지어 버거킹, 파파이스까지 없는 것이 없어서 미국의 도시 한복판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특히, 기지 안에 시원스레 뻗어있는 도로는 여기가 기지 안인지 밖인지 조차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죽하면 “여기도 기지 안이예요?”라는 질문을 했을까. 그 때 역시 기지 안이라는 말을 듣고 심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미군기지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아직 낯설은 곳이다.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그곳은 으레 “100% 신분증 검사”라는 푯말이 붙어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는 미군기지가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몇몇 권세 높고 돈 많은 사람들은 신분 증까지 위조해가며 미군기지에 들어가는 것을 무슨 대단한 자랑인양 생색내기도 한다. 한편, 이런 폐쇄성은 부대 안의 갖은 범죄나 비리들을 은폐하는 보호벽 구실을 하기도 한다. 부대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자신도 들은 얘기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번은 부대 내 건물 공사를 하느라 시멘트벽을 허물다 사람의 뼈가 나왔다는 거예요…” 그 이야기의 사실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답은 ‘가능하다’다. 그만큼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되어 있음을 뜻한다. 또한, 사회적 보호장치로부터 철저히 유리되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내 내 노동자들의 경우 비록 한국인이지만 국내 노동관계법령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얼마 전 본 단체에 사건을 의뢰해 온 최만영씨(40)의 경우를 보자. 최만영씨가 미군부대와 인연을 맺은 건 1986년. 첫 근무지는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버거킹에서였다. 그곳에서 햄버거 만드는 일을 하다 1989년 AAFES(미군 교역처)에서 운영하는 한남빌리지 PX로 근 무지를 옮긴 뒤 작년까지 꼭 10년을 일해왔다. 그렇게 미군부대에서만 10년 넘게 일하는 동안 별 어려움 없이 순탄한 생활을 계속해오던 그에게 갑작스런 해고조치가 내려진 것은 작년 7월 27일,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되면서다. 졸지에 도둑이 된 최만영씨 그날은 일주일에 두 번, 부평 Camp Market에서 새로운 물품을 지급 받는 날이었다. 오전 10시가 좀 넘은 시각, 임 모씨가 물품을 가득 실은 트럭을 몰고 한남빌리지에 도착했다. 최만영씨는 직원 세 명을 데리고 하역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최씨는 트럭을 앞에 두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고 한다. 찌는 듯한 여름날, 창문 하나 없는 창고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창고에서 매장까지 물품을 손수레로 여러 번 옮겨 나를 생각을 하니 가슴부터 탁막혀 왔 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평소에 매장에 자주 찾아와 잘 알고있던 고객 David(한국계 미국인)이 다가와 “왜 그러느냐?” “물건은 좋은 게 좀 왔느냐?”고 말을 붙였다. 캠코더라는 답에 David은 빨리 진열해 달라고 보챘고 최씨는 물품을 하역해 진열할 때까지 일도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짜증을 냈다. 그러자 David은 자신의 봉고차로 물건을 옮기는 걸 도와주겠다고 제의했고 최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제의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는 병아리 손이라도 아쉬울 정도로 일손이 귀하던 때라…” 최씨의 후회는 이미 뒤늦은 것이었다. 봉고차에 물품을 실은 뒤 매장 입구 쪽으로 이동해 후미를 돌리려는 순간, 미육군수사대 직원이 차량을 강제로 정지시켰다. 동시에 최씨를 비롯해 당시 하역작업을 돕던 직원 두 명, 트럭 운전기사 임 모씨 등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모두 그 자리에서 체포당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미육군수사대는 PX가 들어선 같은 건물 2층 Snack-Bar에서 절도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에 따라 잠복 근무 중이었다. 수개월간 수사에 별 진척을 보고있지 못하다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이다. 체포 후부턴 그야말로 악몽의 연속이었다. 최씨는 체포 직후 부동자세로 한시간 가량을 서있어야 했던 일을 얘기하며 치를 떨었다. “아 왜, 영화에서 많이 보잖아요. 양팔은 위로 올려 벽에 손을 짚은 채로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것 말이예요. 제가 그곳서 오랜 동안 근무해 왔기 때문에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그런 모습으로 서있자니 어찌나 챙피하던지… 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데 정말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미군의 위압적이고 모욕적인 행태는 수사과정에서도 이어졌다. 조사관이 최씨에게 ‘Fuck You!’라고 욕을 하는가 하면 죄수복 같은 것을 입히고, 이상한 번호판을 들게 한 후 사진을 찍는 등 완전 죄인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점심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제때에 식사도 챙겨주지 않았다. 서울세관에 가서야 겨우 늦은 점심 겸 저녁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미육군수사대는 조사 결과 최씨가 David과 공모하여 물품을 빼돌린 후 한국 블랙마켓에 판매하려 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국 세관에 관세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한국 세관은 조사 결과 최씨를 포함, AAFES 직원 네 명 모두에게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는 당시 차량이 정지 당한 위치가 물품 하역을 위한 작업반경 내라는 점이었다. 따라서 통상적인 작업 중에 일어난 일로 볼 수 있으며, 단지 민간인의 차를 빌렸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후 최만영씨만 책임자라는 이유로 서울지검으로 넘겨져 관세법 위반, 절도죄 등에 관해 재차 조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인 AAFES에서는 관련자 모두 1999년 10월 7일자로 전원 해고시켰다. 이에 불복하여 동년 12월 15일 소청위원회가 열렸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측 증인으로 나온 미육군수사대 수사과장 리빙스턴은 피해자 측 증인으로 나와 이들의 무혐의를 주장한 한국세관의 윤모씨의 증언에 대해 “들리는 소문에 윤 모 씨가 모종의 스캔들로 서울세관에서 해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리고 한국은 어지간한 사건은 다 무혐의 처리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윤 모씨는 해고된 것이 아니라 다만 근무지를 서울세관에서 성남세관으로 옮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고 그로부터 약 2개월 후인 올해 2월 7일, 최종적으로 해고 결정을 통지 받았다. 관련자 모두 이전에 어떤 징계조치 하나 받은 바 없는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전 징계조치도 없이 취해진 막무가내식 해고였다. 한국인, 한국놈, 도둑놈 안타까운 것은 이런 ‘도둑 논쟁’은 미군부대와 그 주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1968년 3월 13일 한 일간지는 다음의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68년 3월 12일 미 제7사단 PX의 종업원으로 있던 한국인 홍경화씨(35)는 PX물품 배급과장 찰리 워렌을 노동청에 고발했다. 홍씨는 67년 10월에 워렌에 의해 억울하게 절도혐의로 고발되어 치안국 등 각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 후 무혐의로 밝혀졌으나 복직은 물론 퇴직금까지 지불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 오연호, 1990 연도와 이름만 아니라면 흡사 앞의 최만영씨 부당해고 사건을 보는 듯 하다. 1997년 7월, 동두천 캠프 캐슬(Camp Castle)에서는 40분만에 하역을 모두 마치고 나가던 배급트럭을 강제로 정차시킨 뒤 트럭이 텅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한국인 직원들을 절도행위로 해고시킨 일도 있었다. 이유인 즉, (미군들 생각에는) 트럭 한 대 분의 물품을 단 40분만에 하역작업을 끝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인 직원들이 비웃으며 물품이 가득 들어찬 창고를 보여주고는 “원한다면 당신들이 보는 앞에서 어떻게 40분만에 하역작업을 마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며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과는 해고였다. 물론, 현장검증 같은 건 없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PX에서 카운터 일을 보던 한 노동자는 어느 날 손님들이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물건을 체크하다 물건이 너무 많고 손님도 많아서 실수로 한가지 정도를 빼먹게 되었다. 이 장면은 감시카메라에 포착되었고, 즉시 미 헌병들이 달려와 그를 절도행위로 연행해 갔다. <노동법률>, 1995년 4월 호 만연한 절도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매장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대개 미군 손님들이 아닌 한국인 노동자의 근무행위를 감시하는데 쓰인다는 점이다. 몰래카메라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97년에도 주한미군 측은 AAFES-K(미군교역처 한국지부) 전체에 대한 연례 재고평가 결과 13만7천 달러의 손실 분이 발생하자 한국인 직원들의 절도행위에 의한 것으로 단정짓고 일부 매장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일이 있었다. 그 결과 수명의 한국인 직원들이 절도 혐의로 해고당했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물품 손실 분이 발생했을 경우 대개 한국인 직원들의 절도행위로 몰아 부치는 데 있다. 또한,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미군이나 군속, 그리고 그들의 자녀의 경우 처벌은 상당히 관대해 진다. 미군들이 이러한 행위를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데는 한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편견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앞의 미육군수사대 리빙스턴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인이 도둑놈이라면 한국정부는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인 것이다. 이 참담한 현실에는 한국전 쟁 직후 원조랍시고 미국이 모든 경제권을 장악하여 그들이 던져주는 물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깔려있다. 비록 지금은 한국전쟁 직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라경제가 성장했다고 하지만 IMF의 경제원조를 받고있는 지금, 달라진 건 미국이 IMF의 탈을 썼다는 것과 원조방식이 현물지원에서 현금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다. 그나마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50, 60년대에는 부대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조건 도둑으로 몰아 총살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1964년 2월 4일의 일이다. 동두천 못골 부락에 살던 허씨 부부는 살림이 매우 가난하여 남편은 산에 가 나무를 해다 팔고 아내는 미군부대 주변에서 깡통과 쓰레기를 주워다 팔아 근근히 생활했다. 그나마 임신 아홉 달째가 된 허씨 부인은 두어 달 전부터는 몸이 무거워 깡통 줍기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사고 당일 새벽 50원 벌이나마 깡통을 주워 내다 팔아야겠다고 오두막집을 나섰다. 큰 딸 개학식과 설날이 다가오자 아이들 때때옷이나 마련해 주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약 1시간 동안 깡통을 줍던 서 여인은 미7사단 31연대 보초 카메룬 로버트 일병(22)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가 아들이길 바랬던 뱃속의 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죽어갔다. 미군 측은 서 여인이 부대에 몰래 들어와 파이프를 훔치려 했기 때문에 발포했다고 발뺌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불과 이틀 후인 64년 2월 6일에는 엿장수 아들인 16세 소년 안재섭군이 미군보초의 정조준 사살에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친구와 토끼몰이를 나갔다가 미군부대 철조망에 접근하는 순간 보초병 머피 일병이 정조준, 실탄을 발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군 측은 두 소년이 부대철조망을 뚫고 안으로 침입했으며, 현장에 철조망을 뚫는 데 사용하는 특수가위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했다. <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 말라>, 오연호, 1990 당시 위와 같은 계속된 미군의 만행에 대해 한 신문에 투고한 독자편지는 3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시력감퇴증이나 색맹이어서 마치 평원에 뛰노는 사슴으로 착각했는지 몰라도 치즈, 버터 먹는 피나 김치, 된장 먹는 피나 다를 리 없지 않은가. 본인은 미군 어느 지휘관으로부터 전차 몇 대를 없앨망정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는 말을 들었다. 대구 YSH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아직까지 미군부대 물품을 빼다가 판매하는 블랙마켓이 성행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대다수 한국인들을 도둑 취급하고 확실한 범행증거도 없이 한국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한사람의 범죄자를 놓칠망정 다수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매장 내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거나 범행증거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중죄인 다루는가 하면, 한국인 피의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무시하는 태도는 소위’민주주의’를 가장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인권이 인종에 따라 그 값이 다를 순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보편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껍데기를 버리고 ‘미국식 민주주의’는 미국인들을 위한, 그 중에서도 백인과 돈 많은 자를 위한 민주주의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미행정협정 개정협상에 거는 기대 4월 말 중단되었던 한미행정협정 개정협상이 재개된다고 한다. 벌써부터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전면 개정으로 국민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