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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조직화, 우리는 어디까지 왔나?
김광원 / 평화인권연대 자원활동가
들어가며
요즘 대부분 노동운동진영에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진영의 중심세력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에서는 정규직 중심의 사고와 조직형태의 틀을 깨지 못해 그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평상시에는 지지, 지원을 하며 공동발전을 모색하는 듯 하다가도 임단투의 투쟁에서는 늘상 배제되어 온 것이 비정규직이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익숙해져버린 단어인 ‘신자유주의’하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급격히 늘어가고 있다. 정규직의 비정규직으로 전환은 자본의 노동유연화전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의 이러한 발빠른 흐름에 반해 운동진영은 아직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해고위협과 임금인하로 인해 뭔가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 이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상태다.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인 흐름이기에 세계적인 시각에서 방대하게 다룰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간단한 현재 비정규직의 사례 몇몇과 외국의 성공사례를 소개하는 정도로 하겠다.
우리 나라 비정규직 사례
작년 여름 한라중공업의 파업이 메스컴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될 때 그 이면에는 어렵게 어렵게 끝까지 투쟁을 함께 한 하청노조의 동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투쟁과정에서도 교섭과정에서도 자신의 요구를 하나도 반영시키지 못하고 회사와 정규직 노조 양쪽에서 외면을 당한 채 끝이 났다. 그 외에도 재능교사노조, 서울경기지역 설계노조, 서울대 시설관리노조 등 많은 비정규직 노조의 건설과정, 어려운 조건, 지난한 투쟁사례는 일일이 모두 나열하기도 힘들다. 하
지만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동향]을 보면 전체 경제활동 인구 중 40%가 여성이며, 이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남성의 경우는 35%인데 반해 여성의 경우는 66%가 넘는다. 더군다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가 거의 전무한 점을 생각한다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경우 인권침해 사례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고용과 관련된 실 사례를 간단히 소개하면
▲골프장 경기 보조원들의 해고사례 : 경기보조원(캐디)이 근로자로 인정을 받지 못해 기혼이라는 이유와 40세 조기정년퇴직을 빌미로 해고된 사례.
▲밤까기 부업 임금체불사건 : 부업하는 여성의 경우 노동법의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로 전북일대에서 (주)대아에 의해 6∼700명이 임금을 못 받았다.
▲대한 적십자사 동부 혈액원 : 계약직 시간제 노동자들의 일방적 해고 통보 사례이다.
▲세종물류 해고 : 비정규직 노동자의 해고 위협 사례로, 세종물류 지게차 운전직 150명중 3명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했다. ▲학교 급식소 조리사의 비정규직화 : 식당 등이 민영화되면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형태로 재고용되는 사례로 대부분의 대학식당 뿐만 아니라 대기업 등에서도 많은 사례가 나오고 있다.
민노총 – 그리 기대하지 않는다.
얼마 전 우연히 민노총 국제국 담당자와 함께 한, ‘노동조합운동과 국제연대’라는 토론에 간적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국제연대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도의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연대활동을 하고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시각이 단위사업장내로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단위사업장 투쟁의 시기에는 그 외의 국제적, 지역적 사안은 받아 안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단위사업장 중심의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의 문제를 다루기에는 한라중공업등의 실 사례
에서도 보이듯 한계가 명확하다.
또한 비정규직 토론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노동조합과 민노총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적극적인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존 조직틀 밖에 두려는 입장과 그래도 한발 양보해서 받아들여달라는 나머지 사람들의 입장이 대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조직화’란 언명은 정규직 중심의 관료적 조직형태로의 편입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규직 중심의 사고와 조직형태를 가진 노동조합의 한계는 명확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 노조주의
현재 우리가 봉착해 있는 한계점, 그리고 현실 여건을 고려해 대안은 마련되어야 하겠지만,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전 세계의 노동자의 사례를 접하다보면 이것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그것을 우리 나라에 현실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접어두더라도…
그래서 [신자유주의와 세계의 노동자]란 책에서 소개하는 ‘사회운동 노조주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사회운동 노조주의는 어떤 단일한 조직이나 중심 지도부가 아니라 오늘날의 세계화된 세계에서 노조주의가 어떤 내용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시각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노조운동의 시각에서 중심적인 것은 기존의 노조민주주의와 지도부의 책임성, 조합원 능동화와 참여, 노조의 성장과 충원에 대한 몰두, 단순한 노조 확장 등등을 넘어서서 노동계급의 다른 부분들, 조직들에까지 이르는 전망과 실천이다. 따라서 노조를 국제적, 국내적자본과 그 신자유주의 정치 동맹자들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시각의 노조운동이 성공한 사례는 많이 있다.
캐나다 자동차노조(CAW)는 1996년 단체 협상에서 소속산업과 국가의 고용을 증대시키기 위한 공개적인 협상을 진행했다. 단축된 노동시간, 외주에 대한 제한, 각각의 공장이 위치한 지역공동체들에 대한 고용수준보장이 그 내용이었다. 협상내용은 해당지역 공동체들에게 고용기회를 보호하고 심지어 그것을 증대시키는 것을 겨냥하고 있어서 쉽게 지역 노동계급의 지지를 규합할 수 있었다.
이런 실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운동이 대중적 파급력을 지니는 것, 이것은 대중정치파업만이 아니다. 단위노조, 산별노조에 국한된 고용, 복지등의 임단투 또한 그 시각을 단위사업장이 아니라 사회로 돌린다면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의제를 생산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과 대중사이의 이해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회운동 노조주의를 설명한 것은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이런 시각이 토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규직 중심의, 사업장 중심의 노조 시각에서 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속속들이 그 한계가 드러난다. 당장의 열악한 작업환경과 불안한 고용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신자유주의 하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에 대한 노동진영의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역노조’가 이런 형태로 제기되어지고 있고, 벌써 조직되고 있다. 물론 기존의 운동형태-관료적, 조합 중심성-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해 형태적으로만 사업장을 벗어나 지역이라는 확장된 개념이 도입되었을 뿐이다.
다시 한번 ‘비정규직 조직화’는 단순한 고용과 복지의 개선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맞선 노동운동진영의 투쟁임을 강조하며 글을 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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