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진보세력, 우파, 반중국 무역 캠페인

「무역 포커스」2000/5 월든 벨로·아누라다 미탈

미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모순으로 가득찬 나라이다. 물론 중국을 “인권남용을 명예훈장이나 되는 듯이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악당 국가”라고 단순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1)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 의장 존 스위니의 이와 같은 묘사는 미국 파퓰리즘 정치의 황화(黃禍) 전통의 수사에 새로운 외침을 덧붙이며 중국에 대해 카산드라식 경고를 보내는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과 공명하고 있다. 브라운은 중국인들이 육류 소비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식량 연쇄를 기어오르고 있기 때문에 세계 식량 공급에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2)

이러한 주장들은 당혹스럽다. 다른 때라면 우리는 그저 그들을 지지하는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와 세계 최강대국 사이의 미래의 관계를 다시 모양짓는 데 있어 의도적인 무책임성을 보이며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

일군의 세력들은 중국에게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중국의 WTO 가입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정상무역관계(NTR) 지위를 떠받치고 있는 자유무역 패러다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WTO를 지지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중국의 WTO 가입은 커다란 실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 논쟁의 진정한 쟁점은 자유무역과 WTO가 바람직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쟁점은 미국이 WTO와 같은 국제기구의 수문장을 맡을 권리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넓게 보자면, 문제는 미국 정부가 누가 국제사회의 정당한 성원이고 누가 아닌지를 결정할 권리를 오만하게 자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방주의(워싱턴의 오랜 대외정책 전통인 파괴적 접근)인 것이다.

일방적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미국의 수많은 진보 그룹들을 우익(이들은 무엇보다도 중극을 견제하려는 미국방성의 거대 전략을 추진한다)과의 비신성 동맹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 캠페인은 지난 수년간 가장 굳건한 동맹 속에서 결합을 형성하던 진보 운동을 분열시킨다. 이는 또한 오마 브래들리가 한국전쟁을 표현한 말을 빌면 “최악의 시기에 최악의 장소에서 벌어진 최악의 전쟁”이다.

중국의 진짜 모습

중국에 대한 정상무역관계 부여를 반대해온 이들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셉 매카시의 붓놀림에서 흔히 나올 수 있는 중국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진짜 중국은 무엇인가? 반중국 로비가 우리에게 중국의 나쁜 측면만을 말하면서 이토록 훌륭한 일을 해냈으므로, 이제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을 지난 십년 간 연간 7∼10%의 성장을 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가운데 하나로 찬탄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 내전 기간 동안 극빈 상태에 처해있던 국민 대다수를 50년만에 상당한 생활조건으로 올려놓은 것은 대단한 성과이다. 이러한 경제적 역동성은 남반구의 대다수 나라들이 놓쳐버린 기회와 분리해서 사고할 수 없다. 중국은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 사이의 사회혁명을 통해 토지 및 소득 분배상의 최악의 불평등을 종식시켰고 1970년대 후반 농업 부문에 시장 개혁이 도입되면서 경제적 이륙을 준비하였다.

또한 중국은 세계 나머지 지역을 지배하는 강력한 국가 아래 살아온 북반구의 많은 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내준다. 이는 해외의 이해관계로부터 국민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은 해방운동의 중요한 공헌이다. 중국은 혁명 속에서 태어나 수십년의 냉전과 열전 가운데서 단련된 강력한 국가이다. 중국 국가 형성의 역사는 이 나라와 타이, 브라질, 나이지리아, 남한 등의 여타 남반구 나라들 사이의 차이를 밝혀준다. 이 점에서 중국은 혁명 속에서 벼려진 다른 나라, 베트남과 유사하다.

해외투자자들은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투자 규범을 완화하고 자기들의 편의를 봐달라고 강요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 베트남에게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이 두 나라의 경우 해외 자본이 고용 창출에서 기술 이전에 이르기까지 자국의 경제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 무수한 규제를 준비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성은 필리핀과 한국, 심지어 일본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여러 면에서 가신(家臣) 국가와도 같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이나 베트남과의 관계에서는 매우 신중하다. 이들 두 나라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해 위협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국에 가르쳐준 바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초국적기업과 북반구 정부들로부터 존중받고 있다. 반면 우리 남반구 정부 대부분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국익을 추구하는 문제에 맞닥뜨릴 경우, 중국과 베트남을 우리 정부들로부터 갈라놓는 것은 실재하는 국가에 제도화된 혁명적 민족

주의 운동의 성공이다.

중국에 대한 “소송”은 무엇인가?

물론 중국은 발전 모델이나 환경, 노동자 권리, 인권, 민주주의 등에 있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의 기록은 많은 미국 NGO들이 그리는 상보다 훨씬 복합적이다.

– 선진국가 시장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집약적 생산물의 수출에 근거한 외부지향적 성장의 발전 모델은 한 사악한 체제가 발명해낸, 조직 노동을 파괴하려는 책략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세계은행과 여타 서구가 지배하는 발전 기구들이 지난 20년간 개도국들에 처방해온 모델이다. 1980년대 초 중국이 세계은행에 참여할 당시 이 기구의 관료와 전문가들이 추천한 발전 경로는 바로 이 모델이었다.

원조와 차관, 세계 자본시장 진입을 위한 인증 부여 등을 전략적으로 조작함을 통해 세계은행은 수출지향적이고 노동집약적인 제조업을 강요했으며 임금 및 소득의 증대에 기반한 내수시장지향적 성장을 방해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과 제3세계에 대한 세계은행의 정책이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북반구 국가들(이들 나라에서는 임금과 소득의 증대에 기반한 케인즈주의나 사민주의적 경로가 로널드 레이건이나 마가렛 새처, 그리고 이들의 이데올로기적 동맹자들의 반노동적이고 친자본주의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저지되었다)의 정책을 단순히 확장시킨 것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 그렇다. 중국의 발전은 많은 환경파괴를 동반했으며 이는 비판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미국의 많은 환경주의자들은, 자원집약적, 폐기물집약적, 유독성집약적 생산과 억제되지 않는 소비 수준에 근거한 두 자리수 GDP 성장의 모델은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이 북반구에서 본받은 것이라는 점, 북반구에서도 이러한 모델이 여전히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제한적인 소비와 발전을 동일시한 세계은행과 서구의 신고전파 경제기구 전체가 가장 우선적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북반구의 환경주의자들은 중국을 지구 환경에 대한 미래의 최대 위협으로 즐겨 묘사한다. 이들은 중국이 미국과 북반구의 무제한적인 ‘소비자는 왕이다’ 모델과 경쟁할 것이라고 단순히 가정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중국의 1인당 소비가 선진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3) 이들은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는 미국이 현재 지구 기후변화의 단일한 최대의 원천이라는 점, 지구 온실가스 방출의 4분의 1이 미국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길 거부한다. 과학환경센터(CSE)가 지적하고 있듯이, 1996년 현재 미국 시민 1인의 탄소 방출은 인도인 19명, 파키스탄인 30명, 몰디브인 17명, 스리랑카인 49명, 방글라데시인 107명, 부탄인 134명, 네팔인 269명에 상응하는 수치이다.4)

식량 소비의 경우를 보자. 중국인을 식량 공급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육류 및 우유 소비자로 그린 레스터 브라운의 묘사는 자민족중심주의에다 인종주의이며 완전히 그릇된 것이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데이터에 따르면, 1992∼94년간 중국의 육류 소비는 일인당 연간 33kg이었으며 2020년경에는 60kg으로 증가할 예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선진국의 수치는 1992∼94년간 76kg이고 2020년에는 83kg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유의 경우 1992∼94년 중국인 일인당 소비량은 7kg이고 2020년 예상치는 12kg이다. 선진국은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에 일인당 195kg의 우유를 소비했으며 2020년에는 189kg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5)

이러한 두 가지 수치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국과 여타 북반구 나라들의 무제한적인 소비 수준이야말로 여전히 지구 환경의 주요한 파괴자라는 것이다.

– 그렇다. 중국은 노동자의 천국이 아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아무런 권리가 없다거나 중국 정부가 뚜쟁이가 하는 방식으로 자국 노동자들을 초국적기업의 착취에 넘겨버린다는 주장은 너무 단순하다. 중국에는 노동조합이 있다. 사실 중국은 1억 명의 조합원을 가진, 세계 최대의 노동조합연맹을 갖고 있다. 맞다. 이 연맹은 중국 정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메히코, 남아공, 짐바브웨 등 많은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노동조합들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진 않지만 정부가 노동자들의 요구와 관심사를 무시하지 않도록 지켜낸다. 만약 AFL-CIO가 선전하듯이 중국 정부가 반노동자적이라면, 중국 정부는 이미 국영 기업 부문을 급격하게 축소시켰을 것이다. 중국 정부로 하여금 자국의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와 해외 투자자, 기업 언론, 미국 정부(이들 모두는 협소한 효율/수익성 기준에 지배받고 있으며 중국 정부가 고용 문제에 민감한 것에 대해 완전히 무감각하다) 등에서 나오고 있는, 국영 기업 부문을 철저히 해체하라는 처방에 저항하게끔 만든 것은 바로 국영 기업들에 종사하는 수억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었다.

사실은 이렇다. 중국 노동자들은 십중팔구 미국의 노동권(right-to-work) 주들(이곳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이 법률로 장려된다)에 살고 있는 산업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보호와 정부에 대한 접근권을 누리고 있다. AFL-CIO가 반노동자적이라고 타겟으로 삼아야 할 정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국 정부이다. 미국 정부는 기업세력과 한패거리가 되어 노동자들에게서 수많은 전통적인 법적 보호와 권리를 박탈해버렸으며, 그 결과 미국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비율은 전체 노동력의 13%에 불과하게 되었다!

– 그렇다. 중국에는 진정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존중을 확대시키기 위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 많이 있다. 그리고 분명 톈안먼 학살 같은 행위나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억압은 비판받아야만 한다.6) 이는 국제사면위원회가 사회통제의 기본 메카니즘으로 대규모 투옥에 의존한다고 미국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버마의 군사정부 같은 정당성을 결여한 억압적 체제는 아니다.

미국 및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정부에 대한 불평소리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의 정당성 결여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중국 주재 해외 관측통들이 지적하기로는 중국에 민심이탈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정부의 정당성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 및 전국 수준에서 공산당에 의한 의사결정의 독점이 여전히 문제이지만, 중국의 많은 농촌 촌락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선거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뉴욕타임즈」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에 따르면 이는 농촌의 경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베이징 당국으로부터 권력을 분산하기 위한 노력이다(그는 다른 측면에서는 중국 지도부에 매우 비판적이다).7)

사실 서구식 다당제와 정기적인 자유경쟁 선거의 결여가 중국 정부가 국민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산당은 자신의 권력 지속은 국민적 정당성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정당성은 네 가지 목적(국가 주권의 방위, 정치 불안 방지,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 고전적 사회주의 시기로부터 물려받은 평등이라는 미완성의 전통의 유지)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확신시키는 데 달려 있다. 최근 중국 역사의 드라마는 이와 같은 네 가지 국민적 관심사를 균형맞춤으로써 당이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방식이었다. 아시아 전문가인 찰머스 존슨에 의하면, 이러한 균형맞추기 행위는 “포괄적인 공산주의로부터 포괄적인 민족주의로의 이데올로기적 전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환은 중국 사회를 한데 묶도록 해주었으며 경제적 변화의 강도높은 압력 아래 지적이고 정서적인 에너지와 안정을 부여하였다.”8)

– 민주적 참여에 대한 요구의 경우, 이는 분명 증대하고 있으며 중국 바깥의 민중들은 이를 강력히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적 표현의 미국식 형태가 중국 국민의 압도적인 요구가 되었다는 주장은 낙관적 해석에 불과하다. 모든 지점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자신의 고전적 저서『잘못된 여명』에서 반중국 로비 진영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정확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중국의 현 체제는 분명 과도기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민주적 자본주의’로 향해가기보다는 과거의 서구, 소비에트적 기관들로부터 중국의 전통과 필요, 환경에 보다 적합한 현대적 국가로 진화해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중국을 위한 역사적 의제상에 올라있지 않다. 지금도 종종 지켜지지 않고 있는 아이 하나 갖기 정책이 자유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러나 중국의 현 통치자들이 정확히 믿고 있듯이, 자원 부족이 환경 재앙과 정치 위기로 귀결되지 않게 하려면 효율적인 인구 정책이 필수불가결하다.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국가 붕괴와 민족적 무기력에 대한 대중의 기억으로 인해 중국인 대다수는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와 같은 무정부 상태를 가져올 위험을 보이는 모든 형태의 정치 자유화 실험을 의심이나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보게 마련이다. 국가의 해체를 최대의 악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 체제는 이러한 재앙을 피해왔다는 사실에 대중적 정당성의 잠재적 원천을 갖고 있다.”9)

반중국 무역 캠페인: 위험하고 그릇된

우리는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부여에 관한 미국내의 최근 논쟁을 바라볼 때, 서구적 노선에 따르면 민주적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정당성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정당성의 지속적 유지가 경제 성장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정치 체제 아래 발전을 위해 분투하는 한 나라의 복잡한 배경을 유념해야만 한다.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는 중국, 아프가니스탄,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쿠바, 라오스, 북한, 베트남을 빼고 거의 모든 교역 상대국에 미국이 부여하는 표준 관세 대우이다. WTO를 수립한 1994년 마라케시 협정이 회원국들로 하여금 정상무역관계를 다른 WTO 회원국들에게 상호 아무런 조건 없이 확대하도록 요구한 이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의 부여는 중국의 WTO 가입을 위한 핵심적 단계로 간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를 둘러싼 싸움이 그토록 중요하게 된 것이다.

조직 노동자층은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지위 부여에 반대하는 잡다한 동맹세력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이 동맹에는 팻 뷰캐넌이나 타이완의 반공주의 국민당과 연계된 오래된 반중국 로비단체, 보호무역주의적인 미국의 기업단체들을 비롯한 우익 그룹 및 개인들과 일부 환경주의자 및 인권, 시민권 그룹들이 들어 있다. 이 좌우 동맹의 의도는 무역제재를 사용해서 중국의 경제, 정치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중국의 WTO 가입을 어렵게 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연합세력의 입장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물론 그들 가운데에는 분명 좋은 의도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본질상 미국식 일방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다.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반대 동맹의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상무역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자유무역 패러다임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중국이 WTO 회원국 지위로부터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국민 복지를 향상시킴에 있어 자유무역 패러다임과 WTO가 바람직한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은 어느 나라가 국제 경제공동체의 정당한 성원이 될 수 있는가(이 경우 어느 나라가 WTO에 가입하고 회원국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워싱턴의 일방적 조치의 타당성 여부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중국과 WTO의 137개 회원국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 강대국이 이 과정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미국과의 특별한 양자간 협정(이는 가입하려는 나라의 미래 행태를 상당히 제약한다)에 종속시키는 것은 일방주의의 전통으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반중국 무역 캠페인이 특히 불온한 지점은 최근 일련의 일방주의적 행위(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1998년 8월 수단 및 아프가니스탄의 테러리스트 진지로 추정되는 곳에 대한 워싱턴의 크루즈 미사일 공격, 1998년 12월 대이라크 폭격, 1999년 12주간 계속된 코소보에 대한 미국 주도 나토의 폭격 등이다) 직후에 나왔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경우 모두에서 미국은 유엔의 제재나 승인을 위한 노력을 거부한 채 국제법상의 억제 없이 행위하는 쪽을 택했다. 중국의 세계 경제공동체 편입에 대한 수문장 역할은 워싱턴의 군사적 일방주의의 경제적 쌍생아이다.

둘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이중의 기준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중국에 적용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경우 수많은 나라들이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지위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 일부만 꼽아보아도 싱가포르(정부가 노동운동을 관리한다), 메히코(이 나라 또한 노동진영이 정부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만 국가들(법률과 관습에 의해 여성들이 이류 시민의 지위로 체계적으로 격하된다), 파키스탄(군부독재가 통치하고 있다), 브루나이(민주적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이 이러한 경우이다.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사실상 자국 시민의 정치, 사회, 경제적 필요에 완전히 무감각한 상황에서 중국만을 배제하는 논리적, 도덕적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셋째, 이 캠페인은 저명한 상원의원 J. 윌리엄 풀브라이트가 베트남 패전을 낳은 미국 정신의 어두운 면이라고 비판한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십자군 정신으로 촉발된 절대적 자기확신의 도덕”10)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중국의 인권이나 민주적 권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아니라, 냉전의 종식 이후에도 미국 대중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무조건반사적 반공주의의 정서적 총체로부터 그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다. 한 진보적 활동가가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부결이 “야만적이고 교만하며 부패하고 독재적인 베이징의 과두정치 체제”에 타격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 이러한 격한 언어는 무심코한 말이 아니다. 이는 “진보적” 목적으로 (아무튼) 방향지워질 수 있는 좌우익 파퓰리즘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희망 속에서 낡은 반공주의, 보수 계층을 조직화하기 위해 낡아빠진 냉전 버튼을 누르고자 한 것이다.

넷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극히 위선적이다. 이 캠페인을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미국의 기록을 감안하면 사회적, 환경적 이유를 근거로 중국의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도덕적 권리가 미국에는 없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죄수를 보유하고 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국가에 의한 사형집행이 많으며 세계 최대의 온실 가스 배출국이고 농장 노동자의 노동 조건은 노예와 같은 수준이다.11)

다섯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지적으로 보았을 때도 결함이 있다. 현재 중국의 노동 통제 문제가 이 캠페인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캠페인측은 중국이 미국의 산업과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가격경쟁력이 매우 높은 상품을 저임금으로 생산한다고 중국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중국의 상대적인 저임금은 임금 억제가 아니라 경제 발전의 역동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개도국의 경우 저임금의 중요한 이유는 빈곤의 확대나 낮은 경제성장이다. AFL-CIO가 주장하듯이 노동조합의 상태가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중심 요인이라면, 권위주의적 중국과 노동조합운동이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민주적 인도의 노동비용이 동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와 유사하게, 타이완과 한국, 싱가포르(이들 나라는 급속한 발전의 시기에 독립적 노동조합이 없었으며 파업이 불법이었다)의 경우에서 보여지듯이, 한 국가경제에서 임금 수준의 급속한 증대를 촉발시키는 것은 주로 경제 성장의 과정(노동생산성 증대, 임금을 억압하는 농촌 잉여 노동력의 감소, 이윤의 증가 등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이다.12)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대의 결정요인으로 노동 조직화 상태 대신 발전의 역동성을 드는 것은 노동 조직화가 중요치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성공적인 조직화는 경제 발전의 역동성만이 있을 때 가능한 것보다 더 높은 임금 수준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왔다. 이는 개도국에서 노동 조직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노동 조직화는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다. 노동자들이 보다 많은 생산가치를 자신들을 위해 확보하고 초국적기업 및 국가자본주의 엘리트들의 착취를 줄이며 자신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보다 많은 통제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부정직하다. 이 캠페인은 중국 노동자들의 권리와 중국 국민의 권리에 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지만, 그 주요 목적은 중국으로부터의 값싼 수입물에 맞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는 이타적 수사라는 외투를 뒤집어쓴 이기주의이다. 캠페인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최우선적 목표가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정당한 우려이자 목표다. 또한 캠페인은 인권을 근거로 제재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관리무역과 같은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관리무역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 필요성을 균형맞추는 한편 다른 나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위한 시장 접근을 허용하고 이들 국가가 자신의 발전 모델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일정한 성장 수준을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13)

그러나 반중국 무역 캠페인의 수사는 위선으로 인해 인권 및 민주적 권리의 언어를 악화시키고 고용 보호라는 목적(이는 중심적인 사회적, 경제적 권리이다)을 감춤으로써 오히려 이의 정당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일곱째,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희생자를 비난하는 고전적인 사례이다. 중국은 적이 아니다. 사실, 중국은 초국적기업들에게 차별적인 발전 수준에 있는 나라들의 차별적인 임금 수준을 악용하게끔 하는 전지구적 규범과 제도들의 체제의 포로이다. 이의 결과는 초국적기업의 이윤 증대를 한편으로 하고 수출지향적 고도소비 발전 모델의 일반화를 통한 전지구적 환경파괴와 세계 소득의 소수의 손으로의 집중 증대이다.

중국에 항구적 정상무역관계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러한 전지구적 체제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에 정상 교역 및 투자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초국적기업들에 해가 가지는 않을 것이다. 초국적기업들은 인도네시아나 모리셔스, 메히코 등으로 옮기는 쪽으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초국적기업들은 이들 나라의 약한 정부들보다 해외의 이해관계를 훨씬 잘 버텨낼 수 있는 중국보다는 이 나라들에서 더 쉽게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

AFL-CIO와 다른 세력들이 해야 할 일은 중국을 핑계삼아 변명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전지구적 체제를 타겟으로 삼는 것이다.

적극적인 의제

반중국 무역 캠페인은 초국적자본에 맞선 전세계 노동자 및 진보적 노동, 환경운동과의 실질적 연대를 저버리면서 미국의 조직화된 노동을 위한 일정한 공간을 사들이려는 파우스트적 거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방주의라는 미 제국주의의 전통적 대응에 편승함을 통해 이 캠페인은 결국 미국과 전세계 모두의 진보적 노동, 환경, 시민운동의 지위를 침식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조직 노동과 NGO가 해야 할 일은 초국적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도모하는 다자간기구들과 전지구적 기업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의제를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진보 운동이 현재의 논쟁을 틀지우고 있는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찬성, 반대 사이에서 압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일방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위협에 반대해야 하지만, 진보세력은 항구적 정상무역관계의 기반이 되는 자유무역 패러다임과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반대 세력의 일방주의적 패러다임 양자 모두를 피할 수 있는, 전지구적 경제관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모델은 관리무역이다. 관리무역은 교역 상대자들로 하여금 상호 관계에서 중심이 되는 문제들(이 가운데는 개도국의 시장 접근 필요와 더불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존 필요가 포함된다)을 다루는 양자간, 다자간 조약을 협상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나 관리무역의 옹호는 진보적인 세계경제 관리를 위한 보다 폭넓은 캠페인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캠페인의 전략적 목표는, 노동을 희생시키면서 자본의 이동성에 대한 국가 규제 및 사회적 규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기업 주도 자유시장 발전을 대체하는 것, 또는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업 주도 자유시장 발전의 자리에는 진정한 국제적 협력 및 보다 완화된 세계경제 통합의 체제(이는 전지구적 시장이 아니라 국내시장 및 지역적 시장들을 성장과 발전, 고용 창출의 동력으로 만든다)가 수립되어야 한다.

이는 각국 국내시장의 생존력을 떠받히는 구매력을 창출하게 될 자산 및 소득 재분배 조치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이는 또한 각국으로 하여금 상품 및 자본 흐름의 파괴력과 불안정성을 경감시키도록 자국의 교역과 재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도록 만드는 교역 조치와 자본 통제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이는 무차별적인 세계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지역 통합이나 지역 경제연합에 대한 지지를 의미한다.

새로운 세계경제 관리를 위한 이러한 캠페인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기업 주도 세계화 체제의 중추로 기능하는 IMF와 세계은행, WTO를 해체하고 이를 서로 억제하고 균형을 맞추는 여러 기구들의 다원적인 체제로 대체하여 개도국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발전 경로를 추구할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애틀의 패주와 워싱턴의 4월 시위, 그리고 세계은행과 IMF의 발본적인 축소나 구조변혁을 제시한 미국 의회의 국제금융기구자문위원회(멜처 위원회) 보고서14)의 발간 이래, IMF, 세계은행, WTO는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진보운동이 공세적 입장에서 이들 기구의 종식이나 근본적 변화를 밀어붙일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릇된 적을 고립시키기 위한 무분별하고 분열적인 캠페인에 의해 이러한 중요한 과제 앞에서 멈춰서 있다!

적극적 의제의 또다른 측면은 국제노동기구(ILO)의 모든 협약을 비준, 시행하고 이러한 협약의 준수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감시, 감독, 판결 권한을 ILO에 부여하도록, 북반구와 남반구 시민사회 그룹들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모든 나라 정부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이 캠페인은 진정한 노동자 연대의 정신 아래 중국과 미국 남부, 여타 모든 지역에서 진정한 노동조합의 형성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노력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제3세계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목적이 아니라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부의 무역 제재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북남을 가로지르는 진정한 굳건한 연대를 창출하는 길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은 제재를 삼가는 한편, 수출주도적, 고소비 발전 모델을 대신하여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의 촉진을 강조하고, 저비용 환경 체제를 추구하면서 각국을 경쟁시키는 초국적기업들을 저지하는 공동의 환경 규약 채택을 추진하며,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들에 적절한 환경친화적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환경 마셜 플랜을 추구하는,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전략과 결부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접근은 중국과 남반구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북반구의 생산 및 소비 행태(이야말로 환경 파괴의 최대 원천이다)를 전략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의제는 민주적 공간의 확대를 지지, 지원하기 위해 중국과 미국, 그리고 민주주의의 결핍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나라의 민중운동과 건설적으로 연대하는 북반구 시민사회 그룹들을 자신의 핵심 요소로 가져야만 한다. 우리의 캠페인은 톈안먼 학살이나 미국 정부의 교도소 남용 등 억압 행위를 비난하는 데는 비타협적이어야 하지만, 서구의 절차상 민주주의 형태를 다른 지역에 강요하는 일은 피해야 하며, 고유한 운율과 전통, 문화에 맞게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 주도권을 쥐는 것은 이들 나라의 민중뿐이라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일방주의의 포기

항구적 정상무역관계 반대 동맹은 기회주의로부터 탄생한 결합이다. AFL-CIO는 중국산 수입품을 저지하려 노력하면서 낡아빠진 냉전의 수사학에 기댐으로써 뷰캐넌주의 우익을 비롯, 미국 국민 가운데 보다 보수적인 계층에 호소하고 있다. 올해 4월 12일 열린 대중국 교역 반대 집회에서 존 스위니와 팀스터노조 위원장 제임스 호파, 팻 뷰캐넌이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호파를 최우선적인 교역 협상자로 삼겠다고 뷰캐넌이 약속하는 장면은 이 더러운 프로젝트의 가장 혐오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랫 동안 노동진영에 구애의 손길을 (헛되이) 던져온 몇몇 환경 단체와 시민 단체들은 이 캠페인을 지지하였다. AFL-CIO와 다리를 놓을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우리가 얻게 된 것은 연대와 평등, 환경 보존이라는 공통의 근본 목표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주의를 초석으로 삼는 동맹이다.

이는 진보적 동맹이 아니라 냉전 시기의 거대정부-거대자본-거대노동 반공산주의 동맹,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중국, 일본, 필리핀 노동자들에 대한 배제 및 잡혼금지 법안을 낳았던 서구의 노동-자본 동맹, 그리고 보다 최근으로는 자국 시민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 사이의 분할을 강조하면서 이주 노동자의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를 박탈한 인종주의적 이민법의 강화를 지지한 파퓰리즘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익 파퓰리즘 동맹이다.

게다가 이는 중국을 악마로 만들고 미국의 거대전략으로서의 봉쇄정책(이번에는 미국의 전략적 헤게모니의 도모를 위해 고안된 패러다임에서 소련 대신 중국이 적이 된다)을 부활시키려는 미국 우파와 국방성의 노력을 지지함으로써 전지구적 불안정을 낳는 정책이다.

우파와 진보운동 일부 분파와의 무원칙한 단결을 보여준 다른 모든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자들은 결국 자신들은 원칙도 지키지 못하고 남아버리는 동안 우파들은 이 운동에서 제발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중국을 악마화함으로써 진보운동을 탈선시키려는 이 끔찍하게 잘못된 노력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또한 기업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맞선 전세계 시민의 운동인 시애틀의 정신으로 되돌아가 진정한 국제적 협력으로 향해야 할 때이다.

■ 월든 벨로는 방콕에 있는 연구분석교육 기관인 남반구 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의 집행부장이다. 아누라다 미탈은 오클랜드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식량발전정책연구소(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푸드 퍼스트(Food First)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의 공동부장이다. 니콜라 불라드, 피터 로셋, 샐 글린 등 의 헤아릴 수 없는 조언과 도움에 감사한다.

1) 존 거쉬먼(John Gershman), “중국을 비난하지 않고 중국문제를 논하는 법(How to Debate the China Issue without China Bashing, Progressive Response, Vol. 4, No. 17, April 20, 2000.)”에서 인용.

2) 레스터 브라운(Lester Brown),『누가 중국을 먹여살릴 것인가?(Who Will Feed China, New York: Norton, 1995)』

3) 아닐 아가르왈, 수니타 나라인, 안주 샤르마 공편,『녹색정치(Anil Agarwal, Sunita Narain, and Anju Sharma, eds., Green Politics, New Delhi: Center for Science and Environment, 2000)』, p. 108.

4) 같은 책, p. 16.

5) 국제식량농업기구(FAO)와 농산품 교역을 위한 국제 마케팅 프로그램(IMPACT)의 데이터. 시메온 에후이(Simeon Ehui), “개도국의 무역 및 식량 체제(Trade and Food Systems in the Developing World, Presentation at the Salzburg Seminar, Salzburg, Austria, May 11, 2000)”에서 재인용.

6) 다니엘 라자르(Daniel Lazare), “민주주의적 적 미국(America the Undemocratic, New Left Review, No. 232 Nov-Dec. 1998)” p. 7.

7)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렉서스와 올리브나무(The Lexus and the Olive Tree, New York: Farrar, Straus Giroux, 1999)』p. 50.

8) 찰머스 존슨(Charlmers Johnson),『역풍: 아메리카 제국의 비용과 결과(Blowback: The Costs and Consequences of American Empire, New York: Metropolitan Books, 2000)』p. 50.

9) 존 그레이(John Gray),『잘못된 여명(False Dawn, New York: New Press, 1998)』pp. 189-190.

10) J.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bright). 월터 맥두걸(Walter McDougall),『약속받은 땅, 십자군 국가(Promised Land, Crusader State, Boston: Houghton Mifflin, 1997)』p. 206.에서 재인용.

11) 아누라다 미탈(Anuradha Mittal)과 피터 로셋(Peter Rosset), “진정한 적은 중국이 아니라 WTO이다(The Real Enemy is the WTO, not China, Peaceworks, March 1, 2000)”와 짐 스미스(Jim Smith), “중국 증후군, 또는 운동을 공중납치하는 법(The China Syndrome–or, How to Hijack a Movement, LA Labor News, April 2, 2000)”을 보라.

12) 급속한 성장기에 이들 나라의 노동운동의 상황을 보려면 월든 벨로(Walden Bello)와 스테파니 로젠펠드(Stephanie Rosenfeld)가 쓴『곤경에 처한 용들: 위기에 빠진 아시아의 경제기적(Dragons in Distress: Asia’s Miracle Economies in Crisis, San Francisco: 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1990)』을 보라.

13) 관리무역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존슨의 저서 p. 174를 보라.

14) Report of the US Congressional International Financial Institution Advisory Commission(Washington: DC, US Congress, Feb. 2000).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