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군축을 위한 5·24
국제 여성의 날
매향리 오폭을 계기로 주한미군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SOFA 개정에서부터 미군범죄, 미군기지 반환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와 미군간에 애써 숨겨왔던 문제들이 표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매향리를 비롯한 미군관련 문제들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 속에 존재해 왔다. 굳이 미디어가 시끄럽게 떠들어주지 않아도, 새삼스럽게 서명운동과 법정투쟁을 하겠다고 주류 시민단체들이 달려들지 않아도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피해자이다. 새삼스럽게 해결사를 자처하는 많은 사회적 이해관계의 맹아들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미군과 관련된 수많은 정치적, 문화적 폭력 속에서 오랜 시간을 싸워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간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폭력을 해결하고자 외롭게 노력해 온 것이다. 따라서 미군과 관련된 문제들의 중심에는 바로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다. 그리고 미군을 비롯한 모든 군사적 폭력에 대한 운동은 이들의 입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개별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사회구조를 구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번 사건은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번 평화연대의 특집은 ‘군사와 군축을 위한 국제 여성의 날’이다. 주한미군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사문화의 가장 일반적인 피해자는 여성이다. 남성의 힘으로 상징화된 물리적 군사력 앞에서, 군사문화의 유지를 위한 성폭력 앞에서 군산복합체와 카지노 자본주의의 결탁 앞에서 여성은 언제나 이중 삼중의 피해를 감수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특집은 군사와 군축을 위한 국제 여성의 동향과 연대를 살펴보고자 준비되었다. ▣
5월 24일 ‘평화와 군축을 위한 국제 여성의 날’
트레이시 모아베로 (Tracy Moavero)
국제평화사무국(International Peace Bureau,IBP)
■ 번역 /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소개
여성들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여성은 캄보디아와 다른 나라들이 지뢰로 인한 피해로부터 해방되도록 싸우고 있다. 러시아의 어머니들은 체첸 전쟁으로부터 그들의 아들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시아-태평양의 여성들은 그들의 땅과 물을 핵실험에 이용하는 것에 항의하고 있다. 여성들은 수단, 이전의 유고슬라비아 나라들, 그리고 세계의 많은 부분에서 폭력 분쟁의 종식과 공동체를 갈라놓는 싸움을 치유하기 위해서 일하고 있다.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노력들은 그 가치에 비해서 그리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베이징에서 있었던 여성 NGO 포럼의 평화텐트에서 많은 나라들에서 모인
여성들은 여성 평화운동을 위한 기념일을 요구했다. 국제평화사무국과 국제화해협회(International Fellowship of Reconciliation)는 5월 24일을 ‘평화와 군축을 위한 국제 여성의 날’로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
요즘에는 여성평화활동가에 의해 인지되어서, 여성들 스스로가 그들 공동체의 당면 문제에 관련된 활동을 통해 그들 나라와 도시와 마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할 수 있다. 그들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 여성들은 세계적인 문제의 해결로서 폭력을 거부한다. 여성들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그것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요구이다.
‘평화와 군축을 위한 국제 여성의 날’은 여성들이 그들 공동체에 가장 적절하게 적용시켜서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름이 어떻게 불리워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행동을 위한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
모든 것이 시작된 곳…
“당신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제도를 공격하는 강력한 방법은 그것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대신에 여성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군축을 위한 여성의 날’ 초안에서, 1981)
1981년 유럽 여성평화활동가들 사이의 토론은 11개국에서 40명의 여성들이 참가한 여성평화와 군축 행동의 날 계획을 세우기 위한 회의에서 극에 달했다. 그들은 준비 능력이 있는 여성으로 비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함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성 자신에게 권한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최초의 안건에 의하면 : “위대한 날이다. 행동은 현재에 대한 우리의 비판보다도 더 미래의 희망을 표현한다.” 행동들은 작고 개인적일 수 있고 혹은 크고 사회적일 수도 있다. ‘군축을 위한 여성의 날’은 처음에는 대륙 곳곳에 여성들의 단결이 가능한 유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981년 만났던 여성들은 분권화, 민주화, 그리고 권위주의의 철폐를 위한 여성의 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안건에 의하면 : “지구상에서의 삶은 위험 속에 있다. 매일 큰 핵 공장들이 생겨나고 총체적인 파괴의 위협이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유럽의 여성들은 이것을 매우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 그들은 위협을 감지하고 있으며 폭력과 군사주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리와 지방에서, 가정에서 폭력을 매일 접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통제할 어떠한 권한도 없지만 그 힘은 근시안적인 몇몇 사람의 손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하고 있다. – 우리는 강해지고 있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보고 있다. 우리는 작은 그룹들로 모이고 있고 집회를 열고 철야를 하고 단식을 한다. – 그 모든 시간 동안에 우리는 효과적인 행동 방법을 찾고 있다.
원래 목표와 생각들 사이에서 : 여성들은 가정과 일 사이의 전형적인 활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행동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과 그리고 당연히 비용이 들지 않는 참여를 유지하는 데 관련이 있었다. 여성들은 창문 밖으로 담요를 흔들거나 완장을 착용하는 등의 간단한 행동들을 통해 주장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그것에 동참할 수 있었고 학교를 벗어날 수 있었다.
초기의 행동들
‘군축을 위한 여성의 날’은 그들의 가장 거대한 행동을 – 여성의 평화동맹, 여성평화그룹연합, 그린햄의 여성평화캠프에서 여성들과 함께 한 많은 행동들이 벌어진 – 영국에서 목격했다. 1982년의 첫 번째 여성의 날엔 영국과 유럽의 다른 곳에서 많은 작은 규모의 행동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마당극, 시위, 시 광장의 야외무대, 철야기도 등을 이용하였으며 그들의 평화 메시지를 알리기 위해서 다른 많은 방법을 동원하였다.
가장 큰 성공은 많은 나라에서 대략 백만 명의 여성들이 참가한 1983년에 있었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평화캠프를 열고, 철야와 시위를 하는 등 많은 행동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그들 주장의 거점으로서 전쟁을 예비하기 위한 장소를 사용하였다 : 공급대피소, 시의
회, 군사기지, 그리고 거대한 묘지로 정부에 의해 지정된 런던공원. 행동들은 또한 유럽,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그리고 미국의 다른 곳에서도 있었다. 많은 여성들은 영국 여성 참정권 확장 운동의 전통적인 색깔(보라색, 녹색 그리고 흰색)을 사용하였다.
비록 80년대 중·후반 여성의 날에 대부분의 장소에서 조용했지만, 그후 몇 년간 유사한 행동들이 조직되었다. 80년대 초반 이래로 나라 곳곳에서 대중행동이 지속적으로 펼쳐진 특별히 뉴질랜드와 같은 몇몇 지역에서 여성의 날은 행동의 날로 남아있다. 1996년, 세계는 핵실험, 폭력 분쟁, 그리고 더 이상 당해낼 수 없는 강력한 군사 시스템을 틀어쥐고 있다. 우리는 그 이전의 정신과 행동을 다시 각성시켜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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