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실업의 실태와 과제
-실업대책에서 고용대책으로의 전환-
■ 글 / 이보경 (평화인권연대 회원)
* 이 글은 ‘서울지역여성노동조합’ 소식지 제4호에 투고한 내용을 재게재한 것입니다.
1. 여성실업의 실태
정부는 2000년 1·2월 『실업대책평가』에서 “한국 경제의 급속한 회복 덕택으로 고용상황이 크게 호전되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노동부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고용수준은 곧 완전고용에 가까웠던 1997년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체 실업률은 1999년 12월 4.8%이며, 정부가 발표한 2000년 고용동향에서 밝힌 인력수요 전망대로라면 내년도 실업률은 3%대로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낙관적 예측에 힘입어 정부는 실업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50%이상 삭감하는 등 각종 실업대책의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정부는 여성 실업률과 여성실업정책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성실업률은 1999년 2월 7.2%에서 12월에는 3.9%로 크게 감소했다. 심지어 취업률(6.9%)은 남성 취업률(4.1%)의 상승폭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업률 하락이라는 통계수치만으로 완전고용을 운운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2. 여성 실업률 하락의 의미와 문제점
IMF 2년 동안 행해진 대규모 정리해고 등의 노동 유연화는 핵심산업의 남성 노동자들 보다 여성, 저학력 등 취약한 노동 계층에게 더욱 위협적이었다. 특히 상당수의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조건의 하락과 실업률의 증가로 인해 경제활동인구에서 빠져나옴으로써 실업률 상승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왔다. 거시적 경제지표에서는 경기가 IMF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임금수준이나 고용조건은 더욱 열악해졌기 때문에 상당수의 여성 노동자들은 아직도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만약 임금과 고용의 질이 정상적인 수준을 회복한다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여성노동자의 급증으로 실업률은 언제든지 다시 상승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실업률 하락은 매우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실업률 통계에서, 특히 여성의 실업률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첫째 취업률의 변화이다. 1999년 12월의 여성 취업률은 전년도와 비교해 볼 때 6.9%가 증가했다. 남성의 취업률 증가가 4.1%에 그친 것에 비하면 매우 높은 증가율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성취업자는 일용직, 임시직과 기능·기계조작·단순노무직종을 중심으로 증
가(전년대비 11.8%증가)했다. IMF 이후 전반적인 고용조건이 열악해지고 임금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을 감안해볼 때, 여성 취업률의 상승을 고용수준의 상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도리어 여성 실업률의 하락은 노동조건의 하락과 맞바꿔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고용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여성 취업자의 고용구조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1994년 OECD 연구에 의하면, 선진국에서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는 ’10개 직군’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해당 직군에서 여성의 지위는 2중화되어 있다. 가계 점원, 홀서빙, 청소, 기타 단순 서비스 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파트타임에 종사하고 있으며 동종의 남성에 비해 임금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한편 교원, 기업관리직,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임금과 고용수준은 남성과 거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북유럽과 서유럽의 선진국일수록 공공부문(특히 사회복지, 사회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중이 높았는데, 일부 국가(특히 북유럽)의 경우 전체 여성 취업자의 50% 이상이 공공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여성 취업은 주로 서비스, 단순 사무, 기계공작, 단순노무 등 여성 3D 업종에서 크게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정부의 사회복지 확대와 여성의 고용창출이 일정한 상관관계 없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용창출은 여성의 고용조건 향상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성실업률 변화의 두번째 요인은 경제활동인구의 변화이다. 여성의 낮은 실업률은 취업이 어려울 경우 가사노동으로 흡수되는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 실업에 직면한 여성들은 취업대기 상태에 있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러한 여성 노동자들을 “자발적 실업자” 혹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치부해 버리고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사·육아 등 가정활동과 취업을 동시에 부담해야 하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에서 퇴장하거나 자발적 실업자로 분류되는 것은 전체 노동(고용) 패러다임의 한계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생산직·사무직, 남성·여성을 막론하고 장시간 노동, 저임금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가사활동까지 담당하는 여성에게는 노동시장 참여가 더욱 불리하게 된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취업을 포기하거나 자발적(?)으로 파트타임, 파견근로 등을 선택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전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노동착취와 억압적인 고용 패러다임이 여성들을 “자발성”이라는 이름으로 생산현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IMF 이후 더욱 열악해진 노동조건은 여성의 자발적 퇴장을 부추기고 있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업률을 낮추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3. 진정한 여성 고용대책은 노동 패러다임의 변화이다.
여성의 실업대책은 궁극적으로 남성의 실업대책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이상적인 목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노동 패러다임과 정부 정책은 노동유연화를 조장하여 비정규직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 결과 노동조건은 악화되고 여성의 안정된 고용과 자기개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 노동자와 실업자들은 더욱 더 보호해야 될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여성 실업대책”은 통상적인 공공근로나 경기회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노동(고용)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켜야 가능한 것이다. 세계 주요 선진국은 여성의 노동력을 산업현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유럽연합
은 가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남성의 출산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의 법·제도적 장치를 강구해 왔다. 이들 정책의 핵심은 “여성을 보호”하는 방어적 수동적 대책이 아니라,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노동 패러다임
의 전환을 통해 당당한 생산의 주체로 세워내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여성 노동자를 보호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선심성 정책 대신에, 노동시간·노동조건·임금·휴가·고용안정 등의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노동자) 중심의 정책” 가
운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 보장하는 각종의 대안들을 세워야 한다. 특히 정부가 직접적으로 노동조건, 임금 등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공공부문에서의 여성 취업을 대폭 확대시켜야 한다. 만약 여성 실업자 혹은 노동자들에게 공공부문의 고용확대(취업)를 전제로 ‘직
업훈련’과 ‘취업알선’을 시행한다면 여성 취업률과 삶의 질은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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