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이데올로기와 현실

– ‘벤처토론회’를 다녀와서 –

알다시피 ‘벤처(venture)’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비장하다면 비장하기도 하고, 고집이라면 또 고집일 수 있겠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갈 정도로 실패 확률이 높은 벤처산업은 지금 한국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벤처’는 미래의 기업이 가야 할 정착지로서 여겨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연구소, 국가 소속 연구소 자료들을 뒤져보면 온통 벤처의 아름다움과 구세대기업의 비대함을 비교함으로써 기존기업의 다이어트를 추동하고 있다.

언론 또한 마찬가지이다. 벤처의 성공사례는 신화가 되어있고, 벤처의 지식인은 전부 (한물 간 이야기지만) 신지식인이 되어 구세대와의 단절을 꾀한다. 비록 관 주도의 담론이기는 하지만 신지식인 논의는 농부, 어부, 아르바이트, 배달업 등 한국사회에서 가장 소외 받고, 불안정한 계층들이 이제 자신들의 살아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야기였다.

‘벤처’는 기존의 대기업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산측면과 기업구조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서, 신지식인 담론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해 어떤 측면에서 주도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주도적인 흐름과 이를 주도하는 그룹을 구별해내는 작업은 “기술과 체계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따라 여러 변수들에 의해 다르게 형성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 과정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견제하기 위한 논의들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벤처담론과 그 논의의 확산은 기존의 재벌구조와 경제주도세력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이라는 관점에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소자본의 기술중심 기업과 전문직 노동자에게 유한기회와 무한경쟁의 관점에서 제시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공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벤처열풍’을 단순히 자본의 공세적 측면으로만 해석할 것인가? 이것은 다분히 논쟁적인 질문이 될 수 있다. 또한, 자본의 공세에 대해 노동의 측면에서 이에 대한 진단을 내릴 수는 없는가? 이러한 논쟁적인 질문을 포괄적으로 다룬 토론회가 진보네트워크의 주관하에 진행되었다.

‘한국사회의 벤처열풍,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서는 “과연 벤처열풍이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가?” “이데올로기라면 그에 대한 맞대응이 가능한가?”라는 점과 “우리의 벤처 현실은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들로 진행되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토론회가 어떠한 합의나 의견을 절충하는 것이 아닌 만큼 다양한 입장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벤처노동조합이라 할 수 있는 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이 토론회에 참가하여 벤처의 현실을 노동자의 입장에서 제시하였다.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토론회에 모인 이유는 ‘벤처열풍’이 현재의 사회적 대세라는 점과 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절실히 요구된다라는 점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열풍은 기업과 노동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회의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는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최근에 사회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한탕주의의 만연 속에서 ‘벤처열풍’의 환상과 이것의 사회적 침투현상을 볼 수 있다. ‘벤처열풍’과 함께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복권열풍’, ‘주식열풍’은 농부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일확천금’의 기회가 주위에 있다는 기대감과 이것의 수혜자가 극소수에 그친다는 허탈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벤처기업의 관련성에 대해 발제를 맡은 홍석만씨는,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이에 대한 결과로서 노동의 불안정성과 소득불균형을 중심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홍석만씨는 “IMF위기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벤처’는 기업 측면에서는 노동을 유연화시키고 노동자의 연대를 가로막는 최첨병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나아가 벤처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단순노동을 감내하게 하는 집단환각을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하면서 벤처열풍의 이데올로기성을 지

적한다.

한편 “벤처가 이데올로기만은 아니다”라는 지적과 함께 벤처에 대한 기존견해를 비판하는 의견이 나와 주목을 끌었다. 경제학자인 류동민씨는 우리 사회에서 벤처의 함의가 실업대책의 측면에서 국가 주도적으로 신규창업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코스닥이라는 시장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벤처기업 자체의 긍정적 측면을 살려나간다면 벤처현상이 오히려 긍정적

인 형상으로 자리 매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벤처가 이데올로기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어떻게 보면 때늦은 논의로 보일 수 있다. 또한 구체적인 대응방향을 제시하는 논의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성’ 자체에 매몰될 위험이 있기도 하다. 나아가 벤처가 현실이고, 이것이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면 이에 대한 대응이데올로

기도 생각해봄직하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인 백욱인씨는 벤처의 사회적 책임(social option)을 이야기하면서 벤처운동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social option’이라 함은, “참여자들의 기술과 노력에 대한 기업내부차원의 보상을 의미하는 ‘stock option’과는 달리 사회의 몫으로 남겨놓은 기업의 이윤”을 의미한다. 그는 벤처가 진정 새로운 경영과 조직구조를 갖출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의 대안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대안적 기업형태와 문화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분명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문제이고, 이는 한국 최초의 벤처노동조합인 멀티데이타시스템 노동조합의 주장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노동조합 측은 벤처자본이 코스닥상장과 스톡옵션을 빌미로 벤처노동자들에게 초과노동과 저임금을 강요한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벤처열풍’에 대한 이번 토론회는 벤처 이데올로기와 이에 대한 대안, 노동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벤처 현실 등을 폭넓게 다루었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는 현실적으로 벤처노동과 경제를 주축으로 다루어졌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즉 ‘벤처’적 삶과 이데올로기, 그로 인한 일상의 변화들이 아직까지는 깊이 파고들어 있지는 않지만, 사회 문화적 현상분석도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

■ 글 : 홍창욱 (대안 문화·미디어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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