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뉴스 100호를 축하하며

권희정 (상명사대부고 철학교사)

1. 그녀. K씨.

그녀. K씨는 일상을 스쳐 다니는 교사이다. 그녀는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부터 언제나처럼 학생들의 가방에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중심축을 잡느라 애를 쓰는 한갓 직업인이다. 그녀는 직장에서 하루 300여명을 대면한다. 어느 비즈니스맨이 하루 300여명을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슈퍼우먼도 아닌 그녀에게 이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녀는 학생에게 교육을 한다기보다 수요자에게 물건을 파는 역할이 그녀를 평가하는 주된 기준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업에 대한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다가도 언론에서 교육문제를 가지고 떠들썩해하면 이내 냉소적으로 돌변하는 이중적인 소시민이다. 그녀는 학교에서의 수업을 둘러싼 역학관계가 가끔은 불편하면서도 이내 세상은 다 이러려니 체화되는 그저그런 일상인일 뿐이다. 그녀는 반노예화된 수요자들에게 반강제화된 교육상품을 기계적인 리듬에 맞추어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분열된 진자이다. 그녀는 이런 현실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어 있으며 어떤 식으로 고쳐져야 하고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 여러 번 생각해보다가 어느새 화면보호기가 작동된 컴퓨터처럼 뫼비우스 고리속을 헤매인지도 이미 여러 번이다.

2. 분열과 떨림 사이.

20세기 후반에 20대를 겪은 그녀는, 자신의 평생을 걸고 현실화해 낼 만한 이념적 좌표와 거시적 밑천이 없을 수도 있다고 이미 회의해 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녀는 자신이 수행하는 어떠한 의지와 노력도, 사회속에서는 타자화된 힘으로 권력의 주변부에 맴돌다 사라지는 한갓진 엑스트라 자기장일 뿐이라고 가끔 자조하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책상에 앉아 아직도 꿈을 꾸길 멈추지 않는다. 꿈을 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꿈은 소망이자 염원이고 미래의 다른 표현이다. 소망은 ‘여기 이곳에 있지 않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즉, 누구말마따나 ‘결핍’이 사랑의 원동력인 셈이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서’ 손에 쥔 것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미래를 빌려오기로 한다. 그녀에 대한 채권자는 미래이며 임대물은 꿈이다. 그녀는 불편한 현실에서 분열을 느끼고, 다시 그 분열로부터 떨림을 확장할 때, 지금 여기에서 미래로부터 꿈을 꾸어온다. 빌리지 않고서는 버틸 내적 자산이 없기 때문인가? 이제 그녀는 절름발이의 발자국처럼 어지러운 일상에서 미래로부터 꾸어온 소망의 근거들을 따라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3. 에셔의 세계. 그들도 우리처럼…

제비가 전해주는 박씨는 한 달에 두 번, 또는 때에 따라 세 번 그녀의 집에 날아 들어

온다. 문득 지루한 일상에 눈꺼풀이 절여질만하면, 그 새소식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그녀의 눈앞에서 두둥실 떠다닌다. 그녀는 습관대로 봉투를 햇빛에 한 번 투과시켜 본 후 조용히 봉투 속을 엿보곤 한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 그 봉투 속에는 화려하지 않은 편집의 인쇄물이지만, 지구의 자전축 따라 회전하는 숨가쁜 분노가 있다.

벽두부터 쏘아 올린 밀레니엄 야광탄이 민중봉기 형태로 에콰도르에서부터 시작되고, 세계 각국의 노동자, 빈민, 학생, 여성, 교사, 교수 등의 각종 저항운동이 절규와 함께 진동한다.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포괄적 지역에 걸쳐 전투를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그 사정도 국가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넓은 지역에 걸쳐 산재하며 각개로 진행되는 저항력에 비해, 그 분쟁의 주동력은 역사만큼이나 대범하다. 모든 것을 품안에서 녹여버리는 거대 용광로처럼 자본주의 화력의 조련자는 역시 그들, 자본과 권력이므로 그들의 앞선 조직력과 파워는 언제나 모든 것을 압도한다. 거대 기금이나 은행 등을 통해 돈줄을 합법적으로 장악하고 의도대로 운용하는 세계화된 자본과 권력.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분절화된 저항의 동시성. 문득 K씨는 산기슭 언저리에 있는 듯 없는 듯 머물다가 어느 봄날 꽃망울을 일시에 터뜨려 온산을 휘감는 진달래처럼 사회의 분노가 멈춘 듯이 숨죽다가 고여있던 힘으로 크게 되솟는 힘을 긴장하며 받아들인다. 동형반복을 무한으로 확장해가는 에셔의 그림처럼, 우리 사회 내부에 있는 다양한 폭발의 씨앗이 잠시 겨울처럼 웅크려도 그것은 바다건너 하늘건너 어느 곳에서나 무한동형 양상으로 반복·재생되고 있음을 K씨는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제 3세계 자본주의 발전의 모델이면서 제 3세계 민주주의 투쟁의 모델이기도 한 K씨의 조국은 새로운 자본과 새로운 민주주의 투쟁세력으로 좌표지형을 정비하고 있지만, 제 3세계 어느 곳에서나 그들도 우리처럼 분노의 조직화가 살아있으며 세계화된 저항을 현실로 그려나갈 큰 축의 조그만 흔적들 남기고 있음을 우리의 K씨는 하나씩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산재된 개별 국가에서 다양한 개별 부문의 즉자화된 투쟁의 양상이 중층으로 제각각 쌓아올려져 탄탄한 거미줄의 질긴 점착도를 형성할 수 있다면, 일상의 세포처럼 자기 복제에만 관심을 가진 한가한 소시민으로서의 분열된 K씨 의식속에 새로이 조립되어가는 어떤 희망의 밑천이 고여질 수 있다고 음미해본다.

4. 인권을 향한 꿈꾸기

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가 이리도 많은가? 노동자들은, 농민들은, 가난한 자들은, 학생들은, 장애인들은, 소시민들은, 노숙자들은, 여성들은, 교사들은 왜 그렇게 현실의 양상에 불만이 많은가? 그들은 왜 타고난 존엄함으로부터 배제되어 왔거나 잠재된 배제자일 수 밖에 없는가? 새로운 연대의 꿈은 ‘인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그들의 분절된 싸움의 공통염원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하나의 이념안에서 통풍된다. K씨의 의식과 현실의 막힘이 PICIS와 같은 비제도화된 자발적 의지체들의 노력에 의해 소통되고, 제도권 언론과 권력의 틈새를 파고들어 꿈의 근거를 마련한다. 인터내셔널 뉴스는 그 조그마한 파장의 진원지이다. 가끔은 숨소리에 비해 지면이 협소하고 발생한 사건의 무게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지는 소식도 있긴 하나, <인터내셔널 뉴스> 100호의 진동은 K씨와 같은 소시민들에게 관념적 희망의 근거와 현실적 대안찾기의 여러 역사적 가능성을 확신하도록 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존재의 확인으로부터 얻는 기쁨을 위해 오늘도 K씨는 고단함을 디뎌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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