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뉴스에 던지는 10가지 질문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진부하지만, 우선 지극히 독보적인(!) PICIS 인터내셔널뉴스의 발간 100호를 축하한다.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운동의 현실적 필요성에 비추어 현저하게 취약한 영역인 국제연대운동의 강화를 위해 애써온 PICIS의 전반적인 활동은 소중한 것이며, 골치 아픈 번역작업과 편집작업을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해내고 있다는 점은 유행과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갱신에 눈이 먼채로 겉만 번지르한 지적 선정주의의 늪에 빠져들지 않는 꿋꿋함이 있어 오히려 신선하다.
게으른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몇가지를 애써 지적해보자. 내 PC의 PICIS 디렉토리를 뒤져보니 인터내셔널뉴스의 발간목적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었다.
“세계 진보진영의 동향과 활동을 국내에 알려냄으로써 한국의 민중운동이 세계 진보진영과 실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는 것” (PICIS 2호)
다시 정리해본다면, “국내에 알려내고”, “실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이 인터내셔널뉴스의 목표이고, 그 동안 각종 아티클 및 소식을 번역하거나 집필해서 이를 한글 파일 첨부방식의 이메일 소식지로 정기적으로 (유료) 배포한 것을 보면 그러한 목표 설정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쟁점에 대한 현재의 태도와 향후의 계획이다. 정확한 답변을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한 것도 많고,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올바른 답변 이전에 올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 부족하나마 다음과 같은 열가지 질문들을 거칠게 제기해본다. 정말 거칠어서 죄송하기는 하지만, 혹시 도움되는 말도 있을지 모르니 그저 써내려가본다.
1, 어디까지가 진보진영인가?
이는 PICIS가 나름대로 지니는 정치적 입장에 근거한 범위 설정의 문제, 그리고 계급계층에 기반한 운동 및 매체운동, 문화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운동 영역의 포괄 문제와 연관된다.
정치적 입장에 근거한 범위설정의 문제는 (2)에서 논의하도록 하고, 여기서는 후자의 문제에 집중해보자. 우선 PICIS는 각 영역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를 다루고자 하는지 그것을 운동에 대한 과학적 판단에 입각해서 스스로 정의내려야 할 것이다. (이미 내려져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특히 자신이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확보하고 있는 영역과 그렇지 못한 영역에 대한 냉정한 판단에 기초해서 후자의 경우 다른 전문집단 혹은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고 자신의 편집방식에 입각해 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네트워크의 출발점중 하나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목적의식적 확인이다.
2, 정치적 입장은 무엇이고 어떻게 표현되는가?
알려내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것에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특정한 입장에 기초해서 모든 정보를 가공해서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입장과 함께 일차 정보를 함께 제공할 것인지, 아니면 일차 정보만을 제공할 것인지 그 방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우선, 정치적 입장은 특정 아티클 및 정보의 선택, 해당 소재의 선정, 특정 아티클 및 정보에 대한 PICIS 나름의 커멘트로서 표현될 것이다. 현재의 소식지는 그 형식상 소재 자체가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아티클 및 정보에 대한 PICIS의 자기 입장이 명확하지 않거나 오류의 가능성이 많다.
소식지의 형식 자체가 각종 소식을 포괄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가 충분하지 않거나 미처 자료가 준비되지 못한 이슈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여지는 별로 없다. 이것은 혹시 일차자료를 소개한다는 문제의식의 과잉이 아닌가? 이 소식지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공개하면서 동시에 독자들에게 포괄적인 시각과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 소식지로 발전해가야 하지 않나? 더 많은 이슈의 포괄 및 PICIS의 자기 입장 및 자기 한계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어떻게 가능할까?
오류의 가능성은, 광범위한 영역을 섭렵하려는 문제의식에 따른 불가피한 문제이긴 하다. 대상의 범위는 너무 포괄적이고 각각의 대상은 너무도 전문적이다. 전문성 (혹은 성숙되지 못한 정치적 관점) 문제는 도처에서 드러난다.
99호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의 WTO가입 문제에 대한 ‘편집실에서’는 “보수 지배세력의 논리를 답습하고 이에 편승하고 있는 미국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은 제3세계의 몫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진보진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도 않고, 만일 그것이 AFL-CIO와 거대기업화된 NGO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필자의 관점으로는 전혀 미국의 진보진영이 아니다. AFL-CIO 지도부는 미국 노동자 계급운동 발전의 결정적 장애물이고 광의의 NGO는 이미 급격하게 정치적으로 분화되고 있다. 아울러 그들에 대한 비판이 왜 제3세계만의 몫인지 – 제3세계라는 개념도 모호해진지 오래인데 –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또 한가지, 월든 벨로우의 글에 대한 직접적인 커멘트는 여기에 없다. 표현에 대한 정치적 정확성 혹은 운동의 현실에 대한 보다 포괄적이면서도 계급적인 이해가 필요한 대목으로 보인다.
같은 호에서는 또 특이하게 냅스터에 대한 글이 실려있다. 냅스터에 대한 글은 왜 실렸을까 ? 99호에 실린 글은 3개뿐인데, 냅스터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글은 왜 실렸을까 ? 냅스터가 지니는 사적 전유와 사회적 소유의 네트워크상의 결합이 지니는 정치적 의의 때문일까, 아니면 지적 소유권을 둘러싼 메탈리카의 대리전이 화제가 되었기 때문일까 ? 어쨌든 냅스터는 뜨거운 이슈인데, 이에 대한 정보 (혹은 평가) 가 사회주의 웹 사이트에 실린 글 하나로 아무런 커멘트없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정답에 가깝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자료를 검토하지 못하는 실정에서 – 뉴 미디어 분야는 PICIS의 전문분야인지…. –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일까?
보다 진전된 정치적 토론을 위해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남아있다.
3, 탐구할 것인가, 살펴갈 것인가?
전문성의 문제는 논쟁적 이슈의 희석화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소재가 광범위하고 그에 대한 커멘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특정한 아티클이 표방하는 입장을 둘러싼 논쟁의 가능성은 독자의 몫으로 지나칠 정도로 남겨져버린다. 절대다수의 독자들이 국제적 이슈에 대한 정보력 및 시각이 일반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기 보다는 독자의 시각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탐구하지 않는다면, 논쟁의 여지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실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4, 정말, 아티클 번역 위주의 편집은 타당한가?
이 소식지는 소속 조직원의 해외 탐방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외국의 아티클을 전면에 내세운다. 앞에서 논의했듯, 그에 대한 커멘트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아티클은 그 자체의 의미는 있으나 독자 입장에서 그 소화와 다채로운 고민의 전개는 쉽지 않다.
5.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두는가, 아니면 어디까지 포괄하고자 하는가?
많은 노력이 필요한 번역 작업을 중심으로 하는 편집은 분명 이 소식지가 보다 대중적인 차원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번역된 결과물은 각국 운동 및 국제연대 운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변 정보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올바른 이해가 쉽지 않다. 읽기는 하지만 이해가 잘안되는 독자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그리고, 영문 국문을 불문하고 국제적 소식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보다 전문적인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번역되지 않은 주요한 기사, 그리고 국내에서 나온 각종 자료들을 클리핑해서 제공함으로서 불쌍하게 자력갱생하는 활동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할 수는 없을까?
6. 국제연대 운동에 대한 소식지인가, 외국 운동에 대한 소식지인가, 아니면 둘의 유기적 종합인가?
운동의 국제적 발전은 그 본성상, 그리고 자본주의의 일반적 성격 및 현재의 발전단계상 불가피하게 일국적 경계를 초월해서 이루어져야 할 진보운동의 지향이다. 그것이 마치 독립적인 특수한 분야인 것처럼 존재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운동이 아니게 될텐데, 그러한 운동의 국제적 발전이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하면서 정보공유를 위한 특화된 영역으로서 존재하는 이 소식지는 분명 국제연대의 상황 및 외국의 일국적 수준의 운동의 상황을 통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당수의 일국적 수준의 운동은 국제연대의 강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식지의 정보 선택 기준은 이 문제의식과 어떻게 만나고 있고 어떻게 만나야 할까? 그리고, 국내의 국제연대 운동 상황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왜 취약할까?
7, 현재의 편집방식은 기술적인 면에서 타당한가 ?
한글 파일 첨부 방식의 소식지는 크기도 크고, 출력도 골치아프다. 옵션을 줄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텍스트 방식의 메일, 하이퍼링크를 설정해놓은 HTML방식의 메일, 업데이트에 대한 안내만을 하고 웹 사이트로 안내해주는 메일, 그리고 기존의 한글 첨부 파일 등을 독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안될까? 독자들의 인터넷 환경의 불균등발전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 더 요구한다면, 특정한 아티클에 대해 유사한 주제를 담은 그동안 소식지에 실린 기타 관련 기사 일부의 색인을 덧붙여주며 해설해줄 수는 없을까? 자료의 공개에는 항상 자료간의 공방과 협조를 조직하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한 것 아닌가?
8, 이건 주간지인가?
나에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 소식지의 정기성 여부이다. 지속성은 좋은데, 정기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은 PICIS도 알텐데. 이것은 기간이 반드시 고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특정한 호가 빨리 혹은 늦게 나오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 이유는 공개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정기성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가능하면 엄수해야 할 것이고……
9. 실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고 있는가?
포괄적으로 보자면 이 소식지의 전반적인 역할이 여기서 벗어나 있지 않겠지만, 새로운 발상은 필요한 것 아닐까? 예를 들어서 국내의 구체적인 투쟁이 외국의 운동과 결합되는 것을 소개하고 촉구하는 것은 어떨까? 삼미 특수강 투쟁의 경우 다양한 연대 활동이 전개되고 있고 ILO를 비롯한 국제기구의 역할도 존재하는데 그러한 활동의 지속적인 추적 및 소개와 비판적 평가는 왜 없을까? 그리고, 국내 각 부분운동 – 여전히 전문성의 문제가 걸리지만 – 의 활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아니면 소개는? 그리고, 실천적 연대의 고리를 먼저 고민하고 발견하고 그것을 제안하는 역할은 왜 부족하게 표현되는 것일까?
10, 이것은 효과적인가 ?
들어간 노력에 비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는 것인지, 약간의 변형과 기획의 추가와 방향 설정으로 그러한 노력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는 없을지.
이 모든 질문은 이 소식지가 운동의 정치적 고민을 성숙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때문이다. 어쨋든, 짧은 생각이 고민많은 편집자들에게 누가 될까 두렵다. 많이 고민하지도 못하고 문장도 정돈하지 못하고 쓴 글이라 나 자신도 걱정스럽지만, 준비가 잘 안되어있어도 일단 자유로운 의견의 개진이 필요한 것 같아 이 글을 끄적거려 보았다. 다른 기회들을 통해서도 이 소식지의 발전을 위한 논의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말 이 소식지가 운동의 국제적 지평을 넓혀가고 지구를 뒤집어 바로 놓는 진보운동의 미래를 다져나가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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