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표된 북·러 공동선언은 △지난 10년간 소원했던 북러관계의 복원과 △미국 주도의 패권적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공동입장 천명으로 요약된다. (관련자료-북-러 공동선언 11개항 요지)
공동선언은 옛소련과 러시아 최고지도자로선 처음으로 북한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두나라 친선관계 역사에서 획기적 사변’이라고 평가함으로써 북러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했다. 두 정상은 특히 정치군사적인 면에서 “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조성돼 상호협력이 필요할 때 지체없이 서로 접촉할 것”과 다방면에서 협력을 확인했으며, 김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초청방문에 의견을 함께 했다.
이는 한소수교 이후 지난 10년간 남쪽에 경도됐던 러시아의 대한반도정책의 균형추가 북한쪽으로 이동해 등거리외교의 수준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러시아 국가두마가 지난 2월 조인 이후 비준을 미뤄왔던 북러 신우호선린조약을 정상회담이 열린 19일에 맞춰 전격적으로 비준한 것도 북러관계의 오늘을 보여준 또다른 상징적 사건이다.
두 정상은 또 공동선언의 11개 항목 가운데 대부분의 항목을 할애해 다극적 세계질서 창설을 강조하면서 미국주도의 패권적 힘의 정치에 반대한다는 공동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는 상호 관심사인 북한 미사일 개발 문제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망(NMD)에 대해 강력한 대미 메시지로 읽혀지고 있다. 두 정상은 특히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무근거’하고 미사일 개발의 목적이 `순수평화적’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임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한 서로의 입장을 부추겨주는 효과를 거뒀다.
북한미사일 문제는 미국의 미사일방어망 구축 명분이라 점에서 푸틴 대통령은 21~22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릴 주요8개국정상회의(G8)에서 아시아 문제의 논의, 특히 국가미사일방어망에 대한 논의에서 러시아가 중심에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과 국가미사일망 반대를 위한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했던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외교적 성과는 중동평화회담의 성과를 가지고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다 좌절된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공동선언은 또 테러, 국제범죄 등에 대한 반대하는 북한의 견해를 공식화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로서 이미지를 씻으려는 북한의 노력에 힘을 실어줬다. 공동선언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서명 주체가 북한의 공식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자이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는 점이다. 이는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김 위원장이 북한정치의 전면에 나설 것임을 보여준 것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관련자료]
<북한 방송이 보도한 11개항의 `조·러 공동선언’ 요지>
1.전통적인 친선관계와 선린 호상 신뢰 다방면적인 협조를 강화, 평등하고 호혜적인 협조를 발전시키려는 서로의 염원을 시위
2.조선 또는 러시아에 대한 침략위험이 조성되거나 평화와 안전에 위협을 주는 정황이 조성되어 협의와 호상 협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지체 없이 서로 접촉할 용의를 표시.
3.북남 공동선언에 따라 조선의 통일문제를 조선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환영
4.보편적이고 항구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유엔헌장의 목적과 원칙 존중을 확인.
5.국가의 자주적 권리 확인, 인도주의 간섭 등의 미명하에 다른 국가들에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
6.1972년 요격미사일 제한조약수정계획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일부 국가들의 이른바 미사일 위협을 구실로 삼는 것이 완전히 무근거 하다는 것을 확증한다고 간주. 조선은 자기의 미사일 강령이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순수평화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확언.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불럭형의 폐쇄적인 전역미사일 방위체계를 배비(배치)하는 것이 지역적 안정과 안전을 심각하게 파괴할 수 있다고 간주.
7.온갖 형태의 국제 테러와 분립주의 종교 극단주의 그리고 다국적 범죄활동이 주권국가들의 안전과 세계 평화 전반에 위협을 조성한다고 확신.
8.주권국가들이 자체의 경제적 토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공고한 경제장성(성장)을 보장하기 위한 평등하고 호혜적인 국제적 협조 확대.
9.동부아시아가 평화와 선린, 안정과 평등한 국제적 협조의 지대로 되는데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
10.금속 동력 운수 임업 원유가스 공업 경공업 등 여러 분야에서의 대규모 협조계획의 작성사업을 적극화할 데 대하여 정부 사이에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 조선쪽과 러시아쪽 위원장들에게 위임.
11.안전과 국방, 과학과 교육, 문화와 보건, 사회보장, 법률, 환경보호, 관광, 체육 및 기타 분야들에서 협조를 실현.
푸틴 각하는 김정일 동지께서 편리한 시기에 러시아를 방문하도록 초청했으며 초청은 감사히 수락.
2000년 7월19일 평양
조선국방위원회 위원장 김정일
러시아연방대통령 푸틴
[관련기사]
<정부 "북 미사일 중단, 가능성 낮아"> (연합뉴스 7.20)
정부는 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러시아 언론 보도와 관련, “가능성이 낮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이날 “그동안 북한측으로부터 미사일 개발을 조건부라도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며 “러시아 언론보도는 좀 더 확인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교부의 또다른 관계자는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기자는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 취재진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미사일 보도는 사실과 동떨어진,확대 해석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앞서 인테르팍스 통신은 19일 북한을 방문중인 푸틴 대통령이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조건부로 중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었다.
<북한 조건부 미사일 중단 용의 의미> (한겨레 7.20)
북한을 방문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밝힌 북한의 미사일개발 중단 의사는 그것이 조건부라는 점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처음으로 미사일 개발 중단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개발 강행여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 또 북-미, 북-일 관계를 급진전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정세 전반에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미사일 개발 중단이 `조건부’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의 장애물로 남아있는 미사일 문제 해법의 돌파구가 열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반응은 나오지 않은 상태이며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를 점치기란 쉽지도 않다.
그러나 북-미는 19일부터 베를린에서 김계관-카트먼의 고위회담을 진행하고 있다. 북-미 두나라는 이미 이 채널을 통해 구체적인 의견 교환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21일 오키나와 주요8개국(G8) 정상회의 도중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북-러간에 조율된 조건부 미사일 개발 중단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북-러의 이번 발표를 미국이 곧바로 일축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 앞서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도 했다. 짐 스타인버그 백악관 안보담당 부보좌관은 17일 푸틴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남북한 화해와 미사일 문제등에 관한 국제사회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푸틴의 이번 발언이 미국과의 아무런 사전 교감 없이 나온 것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실제로 G-8외무장관회담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스트로브 탈보트 국무부 부장관은 14일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대외정책 변화도 감안해 NMD 배치계획의 계속 추진여부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NMD 문제의 강행이 아니라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중-러의 유대를 강화시켜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G8외무장관회담에서도 분명히 드러난 것이지만 가장 친미적인 캐나다마저도 우려를 표명하는 등 서방국가 내부에서 고립감을 심화시키고 있는 요인이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푸틴이 밝힌 북한의 미사일 개발 중단 용의는 조건부일뿐만 아니라 그 조건이 미사일 개발과 직결되는 로켓 추진체의 제공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다. 진의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진지한 협상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푸틴의 동아시아 순방의 열쇠가 미국의 NMD구상을 철회하는데 있는 만큼 단순히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내놓은 명분용 또는 선전용으로 단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북한이 조건부로 원하는 로켓 추진체는 그 자체가 언제든지 장거리 미사일로 전용가능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이에 대해 푸틴은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북한이 제공받게 될 로켓 추진체가 평화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만의 노력으로는 충분치 않다. 북한을 포함해 남한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이 이런 제의를 지지해야만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 말은 조건부 미사일 개발중단 발언이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제네바 합의 해법처럼 미사일의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한 다자간 대북지원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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