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선정은 경제학계가 채권자의 권력을 간과하는 이론에 계속 상을 수여하고 있다는 50년 묵은 비판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나는 1970년대에 이미 경제학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내가 주로 다루던 부채, 국제수지, 통화 제국주의, 역사 등의 문제가 대학의 경제학 교육과정에서는 전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이 자유무역을 통해 모든 나라가 이익을 얻고 노동과 자본의 비율도 국가 간에 더욱 균등해진다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펼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을 때, 나는 가톨릭계 잡지 〈커먼윌〉에 기고문을 발표해 노벨 경제학상 수여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벨상 선정위원들이 우파 성향이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당시 스웨덴은 이미 소수 상류층에 부가 집중되면서 유럽에서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경제로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커먼윌〉에 글을 발표한 이유는 해방신학 운동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은 두 명의 훌륭한 교황이 후원했지만, 이후 등장한 두 명의 반동적인 교황은 이 운동을 해체하려 했다. 당시 가톨릭계는 내 견해를 지지하고 출판해 준 유일한 집단이었다. 미국 제국주의가 원조를 착취의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사실을 밝힌 내 첫 저서 《원조의 신화》(The Myth of Aid)도 가톨릭계의 후원으로 출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2026년 노벨 경제학상마저 두 명의 주류 경제학자에게 돌아갔다. 나는 더 이상 주류 경제학 학술지를 읽지 않으며, 경제학 학술회의에도 50년 넘게 참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수상자 두 사람에 관해 내가 아는 내용은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에서 읽은 것이 전부다.
이번 수상자 가운데 가장 문제가 심각한 인물은 스탠퍼드대학교와 후버연구소 소속의 로버트 홀(Robert Hall)이다. 그는 1985년 《단일세율》(The Flat Tax)이라는 책을 공동 집필하면서 부유층이 노동자보다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부유층이란 주로 금융 부문의 자산운용자, 부재지주, 독점기업 소유자 등 지대와 같은 불로소득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는 당시 레이거노믹스의 핵심 주장 가운데 하나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서평에 따르면 홀과 공동 저자인 앨빈 라부시카(Alvin Rabushka)는 이러한 세금 제도가 경제적 ‘왜곡을 덜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홀은 전미경제연구소(NBER)에서 30년 동안 활동했다. 이 연구소는 경기침체가 발생하더라도 ‘자동 안정화 장치’ 역할을 하는 ‘시장 조정’ 덕분에 경제가 스스로 회복한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홀은 공동 수상자인 마이클 우드퍼드(Michael Woodford)와 마찬가지로 케인스 거시경제학의 소비함수, 즉 소득 가운데 소비에 지출하는 비율을 연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경제학계에서 금기시하는 부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기가 회복될 때마다 원리금 상환 부담은 꾸준히 증가했고, 이에 따른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소비가 감소했는데도 이 문제를 외면한 것이다.
우드퍼드는 케인스에 대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비판에 동조했다. 그는 소비와 소득의 비율, 즉 거시경제학에서 말하는 C/Y가 안정적인 함수가 아니라 ‘예상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이론에서는 사람들이 앞으로 갚아야 할 부채에 대한 예상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러한 비판의 목적은 경기침체기에 세금을 인하해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 있었다. 감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그 혜택이 장기적인 소비 수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소비를 늘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드퍼드가 이 논문을 발표한 1978년은 거의 50년 전이었다. 당시에는 부채가 소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나 혼자 이 문제에 관해 글을 썼지만, 주류 경제학계는 내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인들에게 2,000달러짜리 수표를 지급하자, 대다수 미국인은 그 돈으로 소비를 늘리는 대신 신용카드 빚과 기타 부채를 갚았다. 따라서 트럼프가 지급한 지원금을 소득에 포함한다면 통계상 소비·소득 비율(C/Y)은 오히려 하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우드퍼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안정화 정책’인 제로금리 정책(ZIRP)이 “경제를 더욱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정책은 부실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와 파생상품 투기로 위기에 빠진 은행 부문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정책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잘 알고 있다. 2008년 이후 늘어난 부의 거의 전부가 상위 10%에 집중됐으며, 특히 상위 1%, 그중에서도 최상위 0.1%가 가장 큰 혜택을 누렸다. 금융·보험·부동산(FIRE) 부문에 대한 지속적인 감세와 세금 면제 조치 덕분이었다. 이러한 혜택을 누린 사람들은 이제 경제의 나머지 부문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부의 실체는 다른 사람들에게 원리금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과 계속 늘어나는 지대 수취권이다. 결국 노벨위원회가 말하는 ‘안정화’란 탈산업화와 긴축정책이 지속되는 상황과도 양립할 수 있는 개념인 셈이다.
따라서 나는 가짜 노벨상인 경제학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은 대중이 경제의 실상을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리는 일련의 이론을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부채에 짓눌린 경제에는 전미경제연구소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자동 안정화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구 경제가 산업자본주의의 고전적 작동 원리를 버리고 약탈적이며 양극화를 심화하는 금융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로 대체하면서, 부채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정이 기하급수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출처] My Reaction To The Newest Nobel Economics Prize Travesty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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