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는 노벨상이 없었다. 하지만 1968년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방크(Riksbank)가 경제학상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노벨 아카데미가 이를 받아들였다. 올해 상은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 두 명인 로버트 홀(Robert Hall)과 마이클 우드퍼드(Michael Woodford)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거시경제 안정화의 미시경제적 기초’에 관한 연구로 상을 받았다.

노벨 아카데미에 따르면 홀과 우드퍼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를 안정시키고 외부 충격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돕는 새로운 경제모형을 개발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아카데미는 성명에서 “수상자들은 경제의 고점과 저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이들의 모형이 “우리가 겪은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고 밝혔다. 경제학상 위원장 욘 하슬레르(John Hassler)는 이들의 연구가 “현재 전 세계 중앙은행과 정부가 사용하는 모형에 안정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모형 덕분에 에너지 위기나 가계 소비의 갑작스러운 변화 같은 경제 충격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 모형의 핵심에는 가계와 기업이 저축이나 상품 가격을 결정할 때 ‘미래를 내다본다’는 통찰이 있다. 아카데미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각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계획을 전달함으로써 이런 미래 전망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말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우드퍼드와 홀이 만든 모형이 중앙은행이 금리와 통화 공급에 관한 올바른 결정을 내리거나 정부가 세금 정책을 결정하는 데 정말로 ‘안정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는가? 둘째, 중앙은행은 우드퍼드와 홀 덕분에 정말로 “경제 충격에 더 잘 대응할 수 있게 됐는가?” 그리고 우리 대다수에게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우드퍼드와 홀이 제시한 통화·재정정책이 실제로 중앙은행과 정부가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는가?

우드퍼드와 홀은 이른바 신케인스학파에 속한다. 케인스주의식 거시경제 관리가 1970년대에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실패하면서 신케인스학파가 등장했다. 이들은 경제 전체의 총수요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석한 케인스의 기본 접근법에서 벗어났다. 대신 자본주의의 ‘경기순환’이나 ‘변동’을 이른바 ‘미시적 기초’, 즉 개별 기업과 가계의 행동과 기대를 통해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이제 경제학자들의 과제는 거시경제 지표나 총량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었다. 경제주체, 즉 소비자의 행동이나 선호에 관한 몇 가지 전제에서 출발해 하나의 ‘모형’을 만들고, 시장의 ‘일반균형’에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집어넣은 뒤 가능한 결과의 수와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동태확률일반균형(DSGE) 모형이 탄생했다. 이 모형이 ‘균형’인 이유는 이상적인 상황에서 공급과 수요가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동태적’인 이유는 개인이나 기업 같은 경제주체의 행동 변화를 모형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확률적’인 이유는 노동조합의 임금 인상 요구나 정부 지출 같은 체제에 대한 ‘충격’을 여러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무작위적인 사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실증적 증거는 잊고, 거시경제 데이터도 잊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쩌면 알려줄 수 있는 ‘미시적’ 토대, 즉 모형을 찾는 것이다. 신케인스학파는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신고전파 경제학자 로버트 루커스(Robert Lucas)의 뒤를 따랐다. 그는 “불황의 문제는 해결됐다”고 말한 인물이다. 루커스는 경제 통계만 들여다보면 이론적 토대가 없기 때문에 허구적 상관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확고한 미시경제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르스 실(Lars Syll)은 이렇게 지적했다. “거시경제학은 미시적 기초를 가져야 한다는 거의 종교적인 집착은, 그런 주장에 존재론적·인식론적 정당성을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도, 초인적인 지식과 예측 능력, 미래지향적 합리적 기대를 갖춘 하나의 포괄적인 대표 경제주체를 바탕으로 복잡한 경제를 묘사하려는 시도 전체의 약점에는 눈을 감게 만들었다.” DSGE 모형은 어떤 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모형은 대침체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그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뒤이어 나타난 약한 경기회복, 즉 장기불황도 설명하지 못했다.

우드퍼드의 연구는 새로운 건물과 설비, 기술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가계와 기업의 저축 의향과 ‘일반균형’ 상태에서 일치하는 ‘자연이자율’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 개념은 19세기 후반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Knut Wicksell)에게서 나왔다. 그는 경제에서 투자가 저축을 웃돌면 자연이자율이 상승하고, 그러면 저축이 늘어나 다시 투자와 일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로 자연이자율이 오르지 않으면 경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형태로 ‘과열’된다.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저축이 투자보다 많아지고, 자연이자율이 저축 의욕을 충분히 낮출 만큼 떨어지지 않으면 완전고용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이제 이 ‘자연이자율’이라는 개념이 왜 자본주의의 경제정책에는 유용해 보이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시장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너무 높으므로 ‘저축 과잉’, 즉 화폐 퇴장이 나타나고 투자가 부족해 정체가 발생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반대로 시장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너무 낮아 투자가 저축을 웃돌면서 인플레이션이 생긴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인플레이션과 정체를 모두 피할 수 있는 자연이자율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자연이자율’이 존재하는가? 케인스는 이 개념을 부정했다. 그는 하나의 고정된 자연이자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투자와 소비, 저축 수준에 따라 여러 금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불황에서는 시장금리가 자동으로 ‘자연이자율’ 수준으로 조정되면서 투자와 저축의 불일치를 자본주의 경제가 스스로 ‘교정’한다고 가정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불황에서 투자수익률이 화폐이자율보다 너무 낮으면 자본가는 ‘유동성 함정’ 속에서 투자하지 않고 돈을 쌓아두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역시 자연이자율이라는 개념을 부정했다. 마르크스에게 자본수익은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이자든, 주식을 보유하고 받는 배당이든, 부동산을 소유하고 받는 지대든 모두 노동계급의 노동에서 생산부문의 자본이 취득한 잉여가치에서 나온다. 이자는 그 잉여가치의 일부다. 따라서 이자율은 0과 자본주의 생산의 평균이윤율 사이에서 움직인다. 호황기에는 평균이윤율 쪽으로 올라가고 불황기에는 0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투자를 결정하는 핵심 동력은 이자율이 아니라 수익성이다. 수익성이 낮으면 자금을 가진 사람들은 생산적 자산에 투자하기보다 돈을 쌓아두거나 금융자산에 투기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자율이 어떤 ‘자연이자율’보다 높은지 낮은지가 아니다. 시장이자율이 생산적 자산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압박할 정도로 높은지가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빅셀도 이에 동의했다. 빅셀에 따르면 자연이자율은 “그 자체로 결코 높거나 낮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손에 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이윤과 비교해서만 높거나 낮다. 그리고 물론 이윤은 변한다. 경기가 좋고 거래가 활발할 때 이윤율은 높으며, 매우 중요한 점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것이다. 불황기에는 이윤율이 낮고 앞으로도 낮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우드퍼드 같은 신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은 자연이자율(R*) 개념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우드퍼드가 2003년에 펴낸 《이자와 가격(Interest and Prices)》의 핵심 주장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자연이자율’에 맞춰 조정하고 ‘인플레이션 기대’를 관리함으로써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R*는 직접 관찰할 수 없다. 둘째, 가계의 기대는 과거의 인플레이션과 일상적인 물가, 정치적 성향에 큰 영향을 받는 듯하며, 가계는 중앙은행의 정책 발표에는 놀랄 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연방준비제도 경제학자 러드(Rudd)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경제학자들과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가계와 기업의 미래 인플레이션 기대가 실제 인플레이션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관련 이론과 실증연구를 검토하면 이런 믿음의 토대가 극도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를 무비판적으로 고수할 경우 심각한 정책 오류를 쉽게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오류가 발생했다.

그렇다고 중앙은행들이 우드퍼드의 모형을 통화정책 결정에 사용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유럽중앙은행(ECB)의 이자벨 슈나벨(Schnabel)은 이제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자리를 옮겨 같은 모형을 확산하려 하지만 R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나 그 자신도 이렇게 인정했다. “문제는 이를 신뢰할 만하게 추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정책에 적용하기가 극도로 어렵다…. 우리가 정말 관심을 두는 것은 단기 R다. 우리의 금리가 긴축적인지 완화적인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닐 카시카리(Neel Kashkari)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이렇게 설명했다. “통화정책의 중립적 수준이라는 개념은 현재 정책이 어디에 있고 경제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지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는 이어 “경제가 엄청난 변화와 혼란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여러 경제모형은 팬데믹과 팬데믹 이후 시기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나는 정책 기조를 평가하기 위해 경제활동 지표도 살펴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신케인스학파 이론은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 현실에서는 경제활동이 인플레이션과 통화 유통을 움직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 연준 의장 제이 파월(Jay Powell)은 ‘자연이자율’ 이론을 자신의 ‘정책적 토대’라고 불렀지만, 곧이어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그 이론을 깎아내렸다. “우리는 중립금리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으며, 통화긴축이 경제활동과 특히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도 불확실하므로 평가가 더욱 어렵다.”

실제로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사용하려는 우드퍼드의 항법 안내서는 천문항법 도구라기보다 황도십이궁을 이용하는 점성술에 더 가깝다.

신케인스학파 모형이 미래 경제활동을 예측한 결과는 현실과 크게 어긋났다. 우드퍼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논문에서 “세계화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심화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의 움직임을 통제할 능력을 약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자연이자율과 ‘인플레이션 기대’ 이론을 바탕으로 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2010년대 인플레이션율을 목표치인 2%까지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고, 팬데믹 이후 현재의 인플레이션 급등 국면에서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2%까지 낮추는 데 실패했다.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선은 우드퍼드식 모형을 바탕으로 연준이 2020년에 내놓은 미래 인플레이션 전망이고, 파란색 점선은 실제 인플레이션이다.

2012년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QE)라는 통화 공급 정책이 신케인스학파 모형이 예상한 대로 경제성장과 완만한 인플레이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해 열린 중앙은행 연례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우드퍼드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기업과 가계에 금리가 오랫동안 매우 낮게 유지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 ‘신뢰’를 높이고 지출과 투자를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선제적 지침)’ 정책으로 이어졌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앞으로 몇 년 동안 금리 상승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지금부터 지출을 늘리라고 설득하려는 중앙은행의 시도였다. 하지만 기대를 자극하기 위한 이 정책 역시 처참하게 실패했다. 양적완화 정책은 실물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거의 또는 전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 연준 의장 케빈 워시(Kevin Warsh)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사용하는 데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우드퍼드의 신케인스학파 모형에는 투자의 핵심 동력이 빠져 있다. 그 핵심은 자연이자율이나 포워드 가이던스가 아니라 수익성이다. 신케인스학파 모형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자 선호에서 출발하고, 케인스주의의 총수요는 사실상 소비로 축소된다.

여기에서 또 다른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홀의 연구가 등장한다. 홀은 소비자 행동의 ‘미시적 기초’에 기반한 경제모형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경제의 소비 수준과 그에 따른 경제성장을 결정한다고 본다.

홀의 기여는 아무리 좋게 봐도 이상하다. 그는 소비 변화가 개인의 소득 변화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거나, 장기적으로는 ‘자연’ 실질이자율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홀은 통화정책보다 조세정책에 더 관심을 둔다. 그에 따르면 소비는 소비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부가가치세(VAT) 같은 세금이 역진세임에도 정부의 주요 세입원이 돼야 하며, 그 대신 소득세와 이윤에 대한 세금을 낮춰야 한다.

홀은 1980년대에 단일세율제(flat tax)를 제안했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의 동일한 세율로 세금을 내고, 이자와 배당, 자본이득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 방식이다. 발트 3국의 ‘자유시장’ 정부들은 단일세율제를 도입했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설계한 세금에 반대하는 ‘자유지상주의’ 정당들도 이를 자주 제안한다.

결국 우드퍼드와 홀은 개별 경제주체의 행동과 어떤 균형적 자연이자율이 존재한다는 다소 기묘한 믿음에 기반한 이론모형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의 예측모형을 이용해 ‘경제를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노벨상은 아니더라도, 어쩌면 릭스방크 경제학상을 받을 만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Prizes for moving the economy in the right direction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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