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에서 진행되는 모든 거대 추세 가운데 아프리카의 인구 증가와 도시화가 결합하는 현상은 가장 극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다.
데이비드 필링(David Pilling)과 제이컵 주다(Jacob Judah)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주목할 만한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말이다.
1950년 아프리카에는 2억 2,800만 명이 살았고, 그 가운데 약 3,300만 명이 도시에 거주했다. 오늘날 아프리카 인구는 16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19%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6억 7,000만 명이 도시에 산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의 강력한 인구 증가분 가운데 80%를 도시 확장이 흡수할 것이다.
Africapolis의 필수적인 연구자들이 내놓은 전망에 따르면 2050년이면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단연 가장 많은 도시 인구를 보유하게 된다. 이런 전망이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21세기 중반까지 아프리카의 도시 인구가 중국과 인도를 각각 수억 명씩 넘어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는 놀라운 변화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인간의 도시생활 역사는 새로운 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아프리카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광범위한 도시 정착지와 도시문명의 중심이 되는 시대다. 2050년 이후 예상되는 인구 추세를 고려하면 아프리카는 22세기까지도 이런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리카 내부에서도 중심축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집트에서 서아프리카, 앙골라,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오대호 지역의 거대한 새로운 도시권으로 이동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도시권은 아시아와 유럽, 북미의 도시 거주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종류의 서비스를 심각하게 부족하게 제공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숀 폭스(Sean Fox)가 2010년대 초 강조한 핵심적인 점은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도시들은 1인당 소득이 비교적 낮더라도 19세기 유럽 도시처럼 질병과 대량사망의 중심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대 의학과 기초적인 공중보건 시설은 소득이 낮은 상황에서도 엄청난 인구 집적지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놀라운 역할을 한다.
이런 힘들이 결합한 곳이 아프리카가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새롭고, 극적이다. 필링과 주다는 이렇게 말한다.
유엔의 《2025년 세계의 도시들》 (The World Cities in 2025)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도시 성장이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중국 도시들은 매년 약 1,400만 명씩 인구가 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프리카 도시들은 매년 1,500만 명씩 증가했으며, 2050년에는 해마다 1,900만 명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매년 런던 두 개가 새로 생기는 셈이며, 매일 5만 명 넘는 새로운 도시 거주자가 아프리카에서 생겨나는 셈이다.
따라서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속도로 도시화하고 있다.
개발 문제가 시급한 만큼 많은 연구자와 언론 보도는 도시화가 아프리카의 성장을 가속하고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집중한다.
·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본질적으로 엘리트가 차지한 자원지대에 의존하는 ‘소비도시’인가(Gollin et al)?
· 세계무역과 너무 단절돼 있고 내부적으로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며 분절돼 있어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집적경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가(Lall et al)?
· 생산도시 대 소비도시라는 뚜렷한 이분법을 넘어 도시경제 유형을 더 개방적으로 분류할 필요가 있는가(Jedwab 외)? 아프리카의 도시들은 생산이나 소비 어느 쪽에도 지배되지 않는 ‘중립도시’가 될 것인가?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모두 성장이라는 공통된 척도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우리가 목격하는 규모의 아프리카 도시화가 가진 독창성과 급진성, 혁신성을 오히려 가린다. 이런 접근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기존의 틀과 기준, 시간표에 끼워 맞추며, 아프리카 세계사의 이 단계가 가진 새로움과 혁신에 집중하지 않는다.
나는 동아프리카의 부룬디(Burundi)를 다룬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짧지만 놀라운 기사를 읽으며 이를 강하게 실감했다. 이 글의 저자를 밝힐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코노미스트》 직원들이 쓰는 글이 늘 그렇듯 익명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부룬디는) 인구 압력이 아프리카 사회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다. 아프리카는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인구밀도가 낮았고 지금도 상당 지역이 그렇다. 그러나 대륙의 인구는 이제 한 세기 전보다 10배 많아졌으며, 니제르 삼각주(필링과 주다의 기사가 집중한 곳)와 에티오피아 고원 같은 지역은 점점 붐비고 있다. 케냐에서 콩고까지 이어지고 아프리카 오대호 사이에 자리한 부룬디 주변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비가 충분히 내리고 고도가 높아 적도의 열기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려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산다. 인구밀도가 높다고 반드시 도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부룬디 사람 대부분은 여전히 콜린(collines), 즉 완만한 구릉지대에 살면서 가파른 비탈에 바나나와 카사바, 콩을 심는다. 도로변과 정원, 집과 집 사이까지 남는 땅은 모두 옥수수를 심어놓은 듯하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하는 전통적인 측정법에 따르면 부룬디는 세계에서 가장 농촌적인 나라 가운데 하나다. 주로 부유한 국가들로 구성된 OECD가 이끄는 Africapolis 연구 프로젝트는 건물 간 거리가 200m를 넘지 않는 지역에 1만 명 이상이 살면 도시로 분류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부룬디인의 78%는 이미 도시지역에 살고 있으며, 2050년이면 나라 대부분이 하나의 연속된 집적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는 정말 놀라운 문장을 내놓는다. 도시와 농촌을 단순하게 나누는 분류를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부룬디의 상당 지역이 중간지대로 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완전히 농촌도 아니고, 아직 도시도 아닌 곳이다.”

극심한 인구 압력 속에서,
“사회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부룬디 문화에서 전통적인 권위의 원천은 토지와 소, 자녀였다. 앞으로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모두 더 적게 갖게 될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형제자매 사이, 이웃 사이,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 사이의 관계가 긴장되고 있다고 자주 말한다. 토지분쟁이 법원을 마비시킨다. 일상생활은 점점 더 화폐화하고 있다. 이제 번식을 위해 수컷 가축을 빌리는 데도 돈을 내야 한다. 많은 부룬디 청년이 탄자니아 농장과 동아프리카 도시에서 일하거나 걸프 지역의 가사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이주한다. … 오래전 부룬디에 왕이 있던 시절에는 왕이 탕가니카호를 보면 죽는다고 믿었다. 이제 사람들은 구릉지에서 호숫가 도시 부줌부라(Bujumbura)로 밀려 내려온다. 이들은 도시 외곽, 벽돌 가마와 목재 작업장이 늘어선 미완성의 무인지대에 정착한다. 원형톱의 굉음이 염소 울음소리를 집어삼킨다. 얼마 되지 않는 일자리도 대부분 운송과 상업, 또는 도시 자체를 건설하는 일에 몰려 있다. … 인구 압력은 좀처럼 평화를 누리지 못한 오대호 지역의 시끄러운 정치 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낮은 소음과 같다. 부룬디 사람들은 민족 학살과 내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쿠데타 미수로 이어진 2015년의 소요사태를 기억한다. 군 검문소는 여전히 국가방송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노렸던 곳이다. 그 옆 푸른 잔디밭에서는 누군가 옥수수를 키운다.”
이런 새로움과 부조화에 대한 감각이야말로 지금 벌어지는 변화가 얼마나 급진적인지 이해하게 해준다.
인구가 빽빽하게 모인 집적지가 혁신과 변화의 인큐베이터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이코노미스트》가 적절하게 강조한 ‘사회의 재창조’에 주목하기보다 미리 정해진 근대성의 모습과 얼마나 일치하거나 그 방향으로 수렴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속도의 아프리카 도시화가 아시아나 ‘서구’가 정의한 어떤 모델을 ‘따라잡는’ 문제로 귀결된다면, 오히려 그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큰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의 놀라움 가운데 하나는 동아시아 도시화의 상당 부분이 일반적인 근대성의 이미지에 놀랄 만큼 밀접하게 부합했다는 점이다. 중국 도시에서 표준화되고 잘 관리된 공중화장실을 볼 때마다, 보통화와 영어로 깔끔하게 표지판을 붙인 모습을 볼 때마다, 그런 시설의 존재가 함축하는 정부 권력과 권위의 행사에 나는 감탄한다.
켄 오팔로(Ken Opalo)가 강조했듯 나이지리아 도시화의 특징인 놀라운 분산성과 탈중앙화는 상당히 다른 다양한 대안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필링과 주다의 글 곳곳에는 이런 새로움을 인정하는 표현이 박혀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도시의 성장은 익숙한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
지역마다 큰 차이가 있지만, 아프리카는 1인당 명목평균소득이 약 2천 달러인 상태에서 도시화하고 있다.
많은 도시 거주자는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한다.
“빠르고, 늦었고, 가난하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집적이 경제발전보다 먼저 일어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라고스처럼 규모가 크고 에너지가 넘치는 도시조차 마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목동들이 고가도로 아래에서 소를 방목한다.
“농촌화(rurification)”(오팔로)
‘페이스 미, 아이 페이스 유(face-me-I-face-you)’
“방 안에 있어도 물고기가 찾아와 인사할 것이다.”
그는 닭을 키우면서 동시에 은행 대리점 역할도 한다.
“비공식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금을 내지 않지만, 도로와 물을 사용한다.”
사실상 모든 사람이 중국산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
중국의 존재가 너무 흔해 서구인은 “니하오”라는 인사를 받는다.
“우리에게 체계는 없을지 모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역동적인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여기 있다.”
“찻숟가락으로 수영장의 물을 퍼내려는 것과 같다.”
“풍요도 투쟁만큼이나 현실적이다.”
그리고 오팔로의 인용문이 정치적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민족정치보다 “TV 토크쇼에서 부채 부담과 신용 비용을 토론한다.” “케냐에서는 이제 경제가 10년 전보다 정치 담론에서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것은 도시화의 이야기다.”
내게 아프리카 도시화를 생각하는 일은 몇 주 전 AI와 맨해튼 프로젝트를 두고 제기했던 역사적 정상화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만 이번에는 더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이다. 당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처한 순간이 극단적인 만큼 방향을 찾기 위해 역사를 바라보고 싶은 욕구는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 도시화의 궤적을 아시아의 궤적에 겹쳐보는 것도 바로 그런 사고방식에 해당할 것이다. 이런 정신적 대응은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심각하게 오도할 수도 있다. “우리가 과소평가하는 것은 지금이 재연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익숙한 프랜차이즈의 최신편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각본 속에 들어와 있을 수도 있고, 최소한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혼합물 속에 있을 수도 있다.”
킴 스탠리 로빈슨(Kim Stanley Robinson)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유추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피난처다.”
이런 변화의 급진성을 세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서구 주류 언론 가운데 나는 《파이낸셜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를 모두 추천한다. 내 느낌으로는 《FT》가 서아프리카에 좀 더 집중하고,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동아프리카 보도에 강하다. 《이코노미스트》에서는 다음 글들이 모두 흥미로웠다.
[출처] Chartbook 479 Africa’s unprecedented urbanization – against historic normalization (#2)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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