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노동자 경제적 기여와 다문화가족 우대 정책 관련 발언을 둘러싸고 이주·인권·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통령이 이주노동자의 경제적 기여를 폄하하고 다문화가족 지원을 역차별 문제로 접근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 114개 단체·네트워크와 시민 347명은 3일 청와대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이주민 관련 차별발언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오후에는 청와대가 전성환 경청통합수석 주재로 이주노동자·인권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이주민 차별 문제와 정책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논란은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이 농어촌 인력난을 언급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러다가 해도 국가 경제에 크게 도움이 안 된다. 전부 다 송금하니까”라고 발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 대통령은 내국인 고용 확대와 내수 진작을 강조한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28일에는 SNS를 통해 다문화가족 우대 제도 폐지 검토를 언급했고, 이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농업과 제조업, 건설업 등 한국 산업의 여러 현장을 지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주노동자가 생산 활동에 참여할 뿐 아니라 소비자이자 납세자로서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며, “임금의 본국 송금을 이유로 경제적 기여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사업장 변경 제한, 산업재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랑토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다문화가족을 특혜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대통령의 인식을 비판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자녀를 키웠다는 그는 다문화가족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혜택을 받았던 기억이 없다며, 오히려 당사자의 필요나 의사와 무관하게 제공되는 시혜적 지원과 편견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의 이러한 경솔한 발언으로 인해 저와 저희 가족이 또 어떤 차별과 무시, 멸시를 견디며 살아가야 할지” 두렵고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2024년 아리셀 참사로 딸을 잃은 이순희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대표도 발언에 나섰다. 이순희 대표는 아리셀 공장에서 숨진 이주노동자만 18명이라며, 위험한 노동을 감당해 온 이주노동자의 기여를 부정하는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경제가 누구의 노동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는지 대통령은 현실을 모르는 겁니까?”라고 반문하며 이주노동자와 산재 참사 유가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정효주 이주민센터 친구 변호사는 공공산후조리원의 다문화가족 우선 이용 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짚었다. 정효주 변호사는 “모자보건법 시행령상 우선 이용 대상 9가지 가운데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뿐”이라며, “다문화가족에 대해서만 경제적 형편을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산후조리원 이용 대상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려면 특정 집단의 지원을 축소하기보다 시설과 공공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외국인 국민연금 추후납부 제도를 악용한다는 낙인을 강화하고, 이주노동자의 경제적 기여를 왜곡하며, 다문화가족에 대한 반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의 외국인 차별 조항 개선과 농어업 노동자를 근로시간·휴게·휴일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제63조 개정을 요구했다. 아울러 정부가 올해 상반기 발표하기로 했던 ‘외국인력 통합지원 로드맵’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이주민 당사자가 참여하는 정책 논의를 촉구했다.

한편, 기자회견 이후 열린 청와대 간담회에는 이주노동자 당사자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이주여성인권센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번 간담회는 청와대가 단체들에 먼저 참석을 요청해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공개한 간담회 결과에 따르면, 참석자들은 이주민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서 확산에 우려를 표하고 정부의 명확한 문제 인식과 개선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이들은 다문화가족의 복지 사각지대, 임금 체불, 농업 계절노동자 문제, 이주여성 인권 등 현장의 문제를 전달하고 노동·체류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전성환 경청통합수석은 “제도적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경청하고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정부와 당사자, 시민사회가 함께 공정성과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청와대는 이날 간담회 결과를 발표하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제도 개선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주·인권단체들이 요구한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국무회의에서도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작은 불합리성이 공격 표적이 되면 정책 전체의 신뢰도나 지속 가능성이 훼손된다”며 다문화가정에 대한 문화적 차이 지원은 계속하되, 정책의 불합리한 부분을 점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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