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 ‘북한사회와 김정일 정권’

개발독재 체제의 최고 권위자로 군림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탈냉전 무드의 진행과 함께 한반도 북쪽의 국가인 북한 사회는 여러 이유에서 한국의 현재 담론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냉전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반공주의적·전체주의적 시각의 한계와 도그마를 극복하고 북한 사회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가 매우 필요한 시점에 섰다. ‘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다양한 주제로 8차에 걸쳐서 북한 사회에 접근하고자 기획되었다. 그 첫 걸음으로서 ‘북한 사회와 김정일 정권’을 주제로 삼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편집자주>

근대국가로서의 북한 사회는 소련 사회주의를 모델로 성립하였으며, 당-국가 체제를 근간으로 하여 타사회주의보다 집권도가 높은 고도의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수립되었다. 북한의 사회주의체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조건으로서의 전(前)근대성을 급속히 탈피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드러난 근대의 모순까지도 일순에 해결하고자 했던 체제였다. 특히 냉전기에 남북한 간 대결 속에서 이루어진 북한의 근대화는 철저한 ‘비시장적’ 즉 ‘비자본주의적’ 방식을 고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사회주의는 언제나 정통적 노선에 집착하여 이로부터의 이탈을 극히 꺼리는 경향을 갖고 있다. 1960년대 말 이후 북한은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과 외적 위기를 권력을 더욱 집중시키는 방향에서 해결하려 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위기에 대한 대응방식에서도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강성대국’과 ‘고난의 행군정신’은 모두 무게중심을 기존체제의

강화에 두고 있는 것이다.

“정치지도부와 대중이 괴리된 북한사회”

한편 북한사회는 적어도 사회적 담론 측면에서 전근대와 근대가 어우러진 미묘한 분위기와 전근대적인 담론이 근대를 견인하면서 나타나는 지체현상이 두드러져 있다. 이는 북한사회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곤란케하는 측면을 제공하였다. 따라서 북한사회의 성격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는데, ‘수령제 사회’, ‘유격대국가’(이제는 정규군국가), ‘유교사회주의’, ‘유일지도체제’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북한사회의 성

격을 규정하는 문제는 간단치가 않으며, 이러한 논의들은 북한사회 현상에 대한 부분적인 진실을 담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사회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이 사회를 포섭하지 못한 체제였다. 따라서 북한 사회는 북한의 리더들의 담론이나 레토릭을 통해서 분석될 수 없다. 정치 및 정책의 의지가 실제로 관철되지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회주의는 정치지도부와 대중이 괴리된, 정치지도부의 담론과 레토릭과는 독립적인 대중사회가 존재하는 매우 이중적인 사회인 것이다. 리더는 사회주의적 담론과 민족주의적 담론을 통해서 정당성만 얻으면 된다. 상식적으로 이는 국가권력의 유지가 목적인 근대 국가의 존재방식이다. 대중들은 이러한 공식적인 담론과 언술에 공식적인 생활관계만을 규정 당하고 있다. 일부의 공식적 생활관계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구속을 받을 기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결근, 지각 등 노동규율이 부재한 작업장 생활을포함한 사적 영역들이 그러한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박정희와 닮았다!”

그렇다면 김정일 정권의 성격을 어떻게 기술할 수 있을까. 김일성 시대 까지의 북한체제가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체제였다면 김일성 사후의 김정일 정권은 이것의 실패에 따라 ‘근대로 회귀’하기 위한 체제이다. 이러한 ‘근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 근대적 국가관계의 일원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이후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의 시도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근대적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북한은 경직화된 주체사상 속에서 경제위기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따라 ‘개발독재적’ 권위주의 체제의 출현은 불가피해졌다. 해방 이후 북한사회는 계획경제였을망정 사회주의 체제는 아니었다. 자연스럽게도 제3세계의 자본주의 발전경로가 이제 북한 사회를 대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계획경제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만 여전히 강화시키면서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시장적 부문과 계획적 부문이 공존하는 이중경제체제가 북한의 전략적 선택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보다 강한 국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된다. 국방부문의 장악의 배경에 경제적인 고려가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군부장악 자체가 갖는 성격, 즉 권위주의 지배체제의 신경줄을 확보하고 지배의 운동에너지를 최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의 가부장적 체제를 온존시켰던 배급제가 97년을 기점으로 거의 붕괴되었다. 계획경제의 병목을 보완해서 이루어져왔던 암시장의 시장거래들이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단계에 들어서고, 김정일 정권의 대외개방이 시장적 관계를 필연적인 수순으로 만듦에 따라 기존의 지배-피지배관계를 정당화해왔던 사회주의적 평등주의는 폐지될 것이다. 따라서시장기제가 갖는 속성인 사회의 불평등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정권과 대중의 관계는 상당부분 변화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은 이러한 국면에서 자신의 권위주의적 개발독재의 성격을 표출하지 않을 수 없다.

89년 중국의 천안문사태에서 북한의 미래의 가능태들을 엿볼 수 있지않을까. 그리하여 현재 한국에서 일고 있는 김정일 신드롬과 김정일 쇼크에 대해서 다시 한번 래디컬하게 문제제기하는 것은 남북한의 민주주의의 성취를 위해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우리는 북한사회의 생존과 북한사회의 민주주의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통일문제도 이러한 구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차문석/성균관대 강사, 정치학>

다음 연재는 ‘주체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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