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
<9> 유토피아 사회주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몽상인가?
유토피아(공상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사회(유토피아)의 운영원리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했던 17,8세기 사회운동의 한 조류다. 주요 인물로 쌩시몽, 푸리에, 오웬, 까베 등을 들 수 있으며, 대개는 사유재산과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공동체나 협동조합의 원리를 옹호했다.
이에 대해 맑스는 그들의 목표인 유토피아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실현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본가들의 자비에 호소한다든지, 공동체의 모범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유토피아가 가능할 것이라는 매우 순진한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맑스는 주체적 측면에서는 애매한 중간계급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라는 분명한 주체를 상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방법적 측면에서는 부르주아계급에 대한 어설픈 호소와 타협이 아니라 비타협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실현불가능한 순진한 방법에 의존하기 때문에 ‘유토피아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면, 과학적 사회주의는 실현가능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것이다.
이런 맑스의 생각 때문인지, 이 사회의 진보를 꿈꾸는 사람들은 ‘유토피아 사회주의’라는 말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그렇다면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맑스의 주장처럼 그저 실현불가능한 꿈을 꾸었던 몽상에 불과한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맑스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에게서 미래사회의 운영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도 미래사회의 운영원리를 제시하고 실천하는 운동, 당시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는 운동의 흐름이 있는데, 생명운동, 소수자운동, 대안교육운동, 대안가족운동, 지역화폐운동, 생산자공동체운동, 자유소프트웨어운동, 카피레프트운동, 대안문화운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운동은 분명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를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목가적 공동체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의 자본주의 발전 조건에 걸맞는 대안운동이라는 점에서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구별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대안운동의 흐름을 유토피아적이라고 해서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대안적 사회운영원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유토피아를 상정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파괴와 극복의 대상은 언제나 명확했지만, ‘무엇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유토피아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칫 ‘유토피아적’이라고 보기 쉬운 이러한 운동이 제시하는 새로운 사회와 삶의 원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이들 운동과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 유토피아를 실현가능한 미래로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홍성수/제2대학 중앙본부 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