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지난 8월 12일, 남측 언론사 대표단과의 대화에서 박정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정희 평가는 후세들이 해야지 동참자들이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그 환경에서는 유신이고 뭐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위 민주화도 무정부적 민주화가 돼서는 곤란합니다.”그렇다면, 유신 독재 아래서 목숨을 걸고 민주화 투쟁을 전개한 이수병, 이재문, 신향식 등은 모두 환경을 모르고 날뛴 무정부주의자란 말인가? 나는 울컥 분노가 솟구친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말은 기성 사회주의의 실체에 대한 솔직한 고백일 수도 있다. 20세기 초, 인류에게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를 종식시킬 꿈의 체제로 등장한 사회주의가 20세기 말, 자본주의와 짝을 이루는 근대성 혹은 인간 지배의 양태에 불과했다는 평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서 내려졌다. 김정일의 박정희 평가는 20세기 사회주의 주체의 한 사람이 당대의 자본주의 독재자와 연대 의식을 나누고 있었다는 고백이요,‘사회주의’란 이름으로 표상된 20세기 인간해방의 꿈이 좌초했다는 고백이다. 기성 사회주의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난 지 오래인 지금,김정일로부터 외교적인 박정희 비판과 반자본주의 선동을 듣느니보다는 차라리 이런 솔직한 고백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마음 편한 일인 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를 돌이켜보면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를 종식시키려는 운동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평등과 교환이라는 세련된 책략으로 온 인민을 자본 축적을 위한 맹목적 경쟁 질서로 내모는 자본주의적 지배가 맑스에 의해 그 비밀이 폭로된 후, 사회주의는 그 경쟁질서에 지친 무수한 무산자들의 꿈이 되었다. 그러나 험난한 자연 속에서 자기를 보존하며 살아가는 연약한 동물인 인간이 지배를 넘어 공동으로 자기를 보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반(反)자본주의라는 추상적 규정만으로 달성될 수 없으며, 인간 공동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생산과 교류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과정에서만 조금씩 진전될 수 있다.
인민의 다양한 욕구를 무정부적 민주화로 폄하하고, 자본주의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관료적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그저 조금 다른 얼굴을 가진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본주의보다 세련되지 못한, 날 것의 폭력과 위계를 이용한 저급한 인간 지배였다. 하버마스가 동구 몰락을 분석할 때 썼던 표현처럼, 의사소통적 합리화를 위한 만회혁명을 필요로 하는 낮은 합리성을 가진
인간 지배였을 지도 모른다.
21세기에 인간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우리는 20세기 인간 지배의 두 가지 양상 모두로부터 단절해야 하는 힘겨운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김정일의 박정희 동정 발언, 국보법과 주한미군에 대한 용인 발언은 이러한 단절을 위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한다. 마지막 남은 ‘그래도 사회주의인데’라는 미련도 아낌없이 버리게 한다. 어쩌면 20세기의 잔재와 즐겁게 이별하면서, 더 발전된 생산과 교류의 조건을 기반으로, 더 합리화된 인민대중의 지력(智力)을 기반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 지배를 타파하기 위한 혁명적 실천과 새로운 삶의 형성에 정진할 때가 더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규>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