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로 포장된 디지털 문화를 경계하라!
이원재 (대안문화ㆍ미디어모임 R.exe, redgang@orgio.net)
군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긴 머리, 50년 전 한국전쟁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카빈’ 소총과 최신형 핸드폰, 그리고 줄을 서기는커녕 꾸부정한 자세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바로 얼마 전에 다녀 온 예비군 훈련장의 모습이다. 혹자는 국가 기밀을 누설한다고 노여워할지 모르지만 예비군 훈련장에 모여든 전직 병장(?)들의 모습은 정말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한 편의 시트콤이다. “모자를 써 주세요!”, “줄을 맞춰 주세요”, “거기 선배님! 총을 버리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사소한 행동 하나라도 일탈을 시도해보려는 삐딱한 예비군(일명 야비군)과 국방의 의무를 위해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현역병 및 예비군 지휘자간의 실랑이가 제법 볼 만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적인 자유와 일상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예비군들에게 있어, 비록 한나절에 불과할지라도 군대라는 단체 생활과 집단성에 다시 적응해 달라는 강요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군대라
는 이름의 집단성과 개인이라는 정체성의 자유 의지는 묘한 추억과 중첩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군사주의라는 것은 단순히 군대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군대 문화가 군사 제도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문화 현상을 지칭한다면, 군사주의란 전쟁과 군대를 둘러싸고 내재된 사회적 가치 체계와
일상적 행동 등의 광범위한 정치적, 문화적 이념을 지칭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사주의는 전쟁, 군인 등과의 직접적인 연관성 못지 않게 일상적인 파시즘과 집단성, 그리고 획일화 등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문화와 군사주의는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표면적으로는 “디지털 문화가 다양한 복수성과 무한한 조합성을 기반으로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군사 문화를 해체하고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지나치게 현상적이고 낙관적인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디지털 문화의 태생적 군사주의
디지털 문화는 본질적으로 군사주의와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탄생 신화 자체가 군사 기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인터넷의 탄생은 미 국방성의 새로운
방어 전략인 ‘알파’(ARPA: 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미 국방성은 구(舊)소련과의 핵무기 경쟁 속에서 미국의 주요 군사 시설이 언제 폭격 당할지 모른다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특히 주요 통신시설의 보호를 위해 분산된 탈 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인터넷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군사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알파넷’(ARPA net)은 1969년 9월 이렇게 개발됐다. 물론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군사주의의 만남이 인터넷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모토로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핸드폰은 군대의 무전기 기술이 상업화 된 것이고, 시드니 올림픽의 스포츠 중계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도 군사 방위를 위한 인공위성 기술의 발달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이쯤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시작된 테크놀로지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라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역사라는 것이 대부분 전쟁을 목적으로 하는 군대에서 출발했고, 이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화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 수용의 과정을 통해 군사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내면화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의 디지털 문화는 이러한 위험성을 너무도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다.
디지털 문화 속에 감추어진 군사주의의 위험성
과거 미국의 군사력이 전세계적으로 과시된 걸프전은, 디지털 문화를 통한 군사주의의 미학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확인해 준다. 당시 우리가 목격한 것은 CNN의 전파를 통해 TV로 전달된 미군의 폭격과 승리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첨단 테크놀로지와 군사력에 의한 한 편의 전쟁 게임에 불과했다. 우리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포장된 TV 모니터와 인공위성, 캠코더 등을 통해 전쟁의 참혹성이 배제된 한 편의 전략 시뮬레이션만을 목격했으며, 마치 첨단 무기가 정확한 폭격과 신속성을 통해 전쟁의 고통을 사라지게 한다는 착각마저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폭격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그것이 하나의 게임에 불과했을까? 전쟁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직시한다면 그것이 어디까지나 전쟁에 대한 디지털 미학의 지적 사기라는 사실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이제는 군대에서 활용하던 시뮬레이션 훈련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주류 문화를 낳았고, 이러한 게임 문화 속에는 디지털 미학과 군사주의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들은 청소년들에게 ‘적’을 규정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 논리를 교육하고 있으며, 인터넷과 핸드폰의 통신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넘어 군사주의의 핵심인 일상의 통제와 감시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발달된 하이테크 산업의 인프라는 우리에게 ‘세계화’, ‘지구촌’이라는 수사 어구를 배경으로 서구 중심주의를 전제한 문화적 획일화와 발전주의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강요하고 있다. 따라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은 현실적으로 군사주의라는 집단성, 획일성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군사력의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군사주의의 활용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하이테크 산업, 디지털이라는 이름으로 군사주의의 일상화, 사회화를 동반하게 된다. 디지털 문화의 일상적인 영향력이 높아지는 만큼 이에 무임승차한 군사주의의 일상화도 확산되는 것이다. 즉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일상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들이 주체의 다양성을 억압하고, 문화적 권리를 과도하게 집단화·획일화하며, 소수의 문화·정치권력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군사주의는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특성에 기인하여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광범위하고 위력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제도 교육의 과도한 획일성, 학번과 위계서열을 중요시하는 대학 및 직장 문화, 그리고 일상
의 남성주의와 가부장제 등. 즉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전제로 군대의 집단성이 개인의 정체성이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듯,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이러한 집단주의와 획일화가 너무나 당연하게 확산돼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군사주의의 이러한 폭력성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도 강하게 내재되어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다양성은 이러한 군사주의 속에서 너무나 쉽게 이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
사주의에 기반한 폭력적이고 획일화된 디지털 문화가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래서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될 수 있는 디지털 문화를 원한다면 우리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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