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공간의 검열을 꿈꾸는 바보들에게!

이원재 (대안문화ㆍ미디어모임 R.exe, redgang@orgio.net)

‘바보들의 행진’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무엇이든 자신의 가치관과 그것을 힘으로 관철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정부가, 정보통신공간의 검열 및 통제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실 유해 정보로 가득 찬 각종 매스미디어가 인터넷의 유해성을 일제히 언급하기 시작한 올 초부터 이미 불쾌한 냄새는 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언제나 보통 사람들의 우려를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는 한국 정부는, 지난 7월 20일 순진하게 생긴 정통부의 몇몇 깡통들을 표면에 내세워 ‘정보통신망이용촉진등에관한법률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 법안은 다소 난해한 법률 형식을 제외하고 나서 보면 매우 간단 명료하다. 첫째, ‘건전한’(?) 정보통신질서를 확립하자. 둘째, 도메인주소자원관리권한을 국가에 귀속한다. 셋째, 정보통신망의 안정성을 모색하자. 마지막으로 개인정보보호를 모색하자.

쉬운 것부터 말하자면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개정안은 쌍수를 들어 환영해 줄만 하다. 자본주의 체제내의 경제 제일주의에 눈 먼 국가권력이 이러한 부분을 제시했다는 것 자체가 가상할 정도이다. 물론 이 부분이 구색을 맞추기 위해 깍두기로 제시되었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상업성에 초토화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법안 마련이 (이번 정보통신질서확립법을 폐기처분한 후) 앞으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으로 정보통신망의 안정성을 위한 부분은 이미 1995년에 제정된 정보화촉진기본법에 흡수하면 되므로 두 말하면 입만 아픈 사족에 불과하다. 그리고 두 번째의 도메인주소자원관리권한을 국가에 귀속한다는 내용은 정보통신부장관이 죽을 때까지 비웃음을 받아도 마땅한 내용이다. 이는 이번 통신질서확립법안에서 발생한 최대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데, 도메인주소자원관리권한은 이미 ‘아이칸’(ICANN)이라는 비정부 성격의 국제기구가 관할하고 있는 영역이다. 따라서 전세계의 어떠한 국가도 도메인주소자원관리의 권한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귀속하고 있는 경우는 없으며, 이미 그럴 수도 없다. 도메인주소자원관리권한을 가지고 있던 미국정부가 전세계의 지탄 속에서 비정부기구를 발촉 시키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터넷 거버넌스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똥폼을 잡고 있는 데, 쥐뿔도 없는 한국 정부가 도메인주소자원관리권한을 가지겠다니 이 얼마나 촌스러운 코미디인가…

따라서 이번 법안의 핵심적인 문제는 첫 번째의 건전한 정보통신질서를 확립하자는 이야기에 있다. 이미 감 잡았겠지만 ‘건전한’이라는 표현 자체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땅의 역사 속에서

‘건전한’으로 시작해서 사회적으로 건전한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었던가? 보나마나 현실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천민자본주의 국가에서 건전함을 새삼 강조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꼼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꼼수는 다음 아닌 정보통신공간에서의 철저한 검열과 통제이다. 더욱이 (문화적 소양과 사회적 교양이라고는 눈뜨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정부관료들의 자의적 판단을 기준으로 모든 정보를 국가권력이 판단하겠다는 너무나 뻔뻔스럽고 발칙하기 이를 데 없는 의도인 것이다. 자! 이쯤 되면 한국에서 1년 이상 살아 본 사람은 이 법안의 현실적인 기능을 아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정보통신공간의 국가보안법! 한국 법률의 전통 무예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전법”으로 정보통신공간을 국가권력과 보수문화 기준의 “열 맞춰”로 만들어 보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야심에 찬 프로젝트인 것이다. 더욱이 정보통신질서확립법은 그간 청소년은 보호하지 않고 성인의 표현의 자유, 정치사상의 자유만을 심각하게 침해해 온 ‘청소년 보호법’을 법률 개정안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왜냐하면 이는 통일무드 속에서 국가보안법의 약발이 떨어지고 보수정치 이데올로기를 통한 통제가 어려워지자 청소년보호법의 약발로 보수 윤리, 도덕, 문화 이데올로기의 통제를 실현하려는 잔머리이기 때문이다. 즉, 올해 들어 발생한 <거짓말>, <천국의 신화> 등의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권력과 보수종교단체의 문화적 파시즘을 통한 검열과 통제를 온라인 공간에서도 자행하겠다는 포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통신질서확립법은 개인정보보호 부분만 전문가들의 신중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법안으로 개정하면 된다.(이 과정에서 사이버성폭력이나 사이버스토킹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이 고민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국제적인 망신당하기 전에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된다. 아무런 미련 없이… 좀더 관료주의적인 표현으로 정리해주자면 다음과 같다. 이미 정보통신 선진국(!)인 미국에서 추진하려다 위헌 소송을 받은 바 있는 ‘정보통신품위법’ (일명 CDA)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통신공간의 검열과 통제는 다수의 인권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며, 더욱이 한국의 정통부가 제시한 정보통신질서확립법은 외국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시대학오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전무한 법안이다. 더욱이 정통부가 관철시키려하고 있는 자율등급제는 실제로 정통부의 자의적인 판단에 근거한 강제등겁제를 의미하기에, 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전ㆍ사후 검열을 조장할 소지가 높은 ‘싸구려’ 법안임에 분명하다. 이에 본 네티즌은 이 법안의 철저한 분리수거를 명하노라. (단, 재활용 절대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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