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셈(ASEM), 그리고 반(反)세계화 민중투쟁 ■

이 성 경

오는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아시아 유럽의 25개국 국가원수들과 장관급

각료, 수행원 등 1200여 명이 서울로 들어온다.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컨벤

션센터에서는 이 기간 동안 세 번의 정상회담과 수많은 양자간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름하여 아셈(ASEM) 즉 아시아·유럽 정상회담(Asia Europe Meeting)이

다. 싱가포르가 제안하고 유럽연합(EU)의 주도로 구성된 아셈은 한국, 일

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10개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스웨덴 등 유럽 15개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EU) 집행위 의장이 참여하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아셈은 96년과 98년 방

콕과 런던에서 각각 1, 2차가 열렸으며, ‘새천년 번영과 안정의 동반자 관계’

라는 주제 하에 제3차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이번 아셈 기간 중 채택될 3개 주요문서는 ▲새롭고 포괄적인 아시아 유럽

간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하고 정상회의 논의사항을 정리하는 ‘의장성명’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의 긴장완화 평화공존 분위기를 지지하는

‘한반도 평화안정에 관한 서울 특별선언’ ▲정치·경제·사회 및 기타 분야

에서 아셈의 중장기적 발전방향과 신규회원국 가입 절차 규정 등 아셈의

기본 틀을 확정짓게 될 ‘포괄적 아시아유럽협력체제(AECF)’ 등이다.

□ 아셈, 그 정체는 무엇인가

아셈은 아시아-유럽간의 관계 강화를 내세우며 96년 3월 출범했다. 아셈의

구조는 1, 2차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점차 제도화되어 가고 있는데, 고위 장

관회의와 외무장관, 재무장관,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정상회담을 위한 의제

를 채택하도록 되어 있다.

아셈은 경제적인 이해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 경제, 안보, 사회, 문화 등

제반 분야에 대한 양 지역간 포괄적인 협력관계 강화를 목표로 내세우며

그럴싸한 포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간의 과정을 보면 양 지역간

의 ‘무역과 투자 증대’가 주요 의제로 다루어져 왔다.

사실 아셈은 유럽의 초국적 자본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견제방편으로 만들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국과 일본 자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통해서 아시아 시장

을 석권해 나가는 상황에서 유럽의 자본들도 아시아 시장에 공공연히 진출

하여 아시아 노동자·민중들을 착취·수탈할 기회를 확보해 보려고 한 것

이 아셈을 만든 배경이다.

일각에서는 유럽식 자본주의는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다르지 않느냐, 미국

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견제하기 위해서 아셈을 활용할 수 있

지 않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유럽식 자본주의가 영미식과 다른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 자본도 자본이기는 매한가지이

다. 더구나 설령 유럽식 자본주의가 영미식 자본주의와 차이가 있다고 해

도 그것은 자국 안에서일 뿐이다. 제3세계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는 제국주

의적인 초국적 자본이라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유럽자본은 아프

리카와 아시아, 중남미 등 제3세계를 강점하여 식민지화하고 무자비하게

착취·수탈했을 뿐 아니라, 서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까지 벌인 주범이었다. 지금도 작년 시애틀에서 열린 소위 ‘밀레니엄

라운드’에서도 유럽연합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가속화시키는 뉴라운드의

출범을 앞장서서 주창했다.

요컨대 유럽 초국적 자본은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자본과 일면 경

쟁, 일면 협력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

어 나가는 한 축이다. 그리고 아셈은 그러한 유럽 초국적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 집행기구의 하나일 뿐이다. 이번 회의의 주요 의제 역시 양 지역간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강화하는 방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 세계화의 첨병노릇에 급급한 김대중 정권

김대중 정부는 아셈을 준비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총 면적 21만7841평에 1

조 2천억 원의 돈을 들여 회의장 주변 건물을 지었으며, 또 서울시는 8억

원의 녹지사업비를 포함해 612억 원의 추가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정부는 아셈 공식만찬에서 건배에 쓸 술까지 지정해 놓고 있으며, 2만원

짜리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거리를 통제하고, 컴퓨터 경호시스템의 등장과

차량 2부제 실시, 학생과 공무원의 출근 시간까지 늦추는 등 갖은 호들갑

을 떨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왜 이렇게 야단법석과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김대중 대통

령은 지난 5월 아셈단지 개관식에 참석해 “21세기에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물류-유통의 중개지, 국제전시회나 국제회의 등 국제업무가 융성한

‘개방형 신통상국가’여야 한다”고 연설했다. 또 그는 개방형 신통상국가의

기본요소로 ▲자유로운 비즈니스 기반 조성 ▲한반도의 동북아 물류와 유

통 중심지화 ▲전시-컨벤션 등 고부가가치-친환경적인 산업 육성 ▲적극

적인 해외진출 등을 제시했다. 또 이와 관련하여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과거 보호무역주의 시각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외국에 적극적인

개방 방침을 밝히고 외국인 투자여건을 더욱 호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아셈을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좋은 나

라로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의 발로이며, 우리나라를 통째로 자본주의

시장의 상품으로 내놓고 더 잘 팔리도록 하기 위한 외교 잔치를 벌이겠다

는 셈이다. 김대중 정부는 지금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첨병노릇을 자임하

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대한 세계적 저항의 물결 속에서 아셈을 맞이하자!

작년 11월 시애틀에서의 WTO 반대시위 이후 반 세계화 국제연대투쟁이

하나의 물결을 이루기 시작했다. 올해 4월 워싱턴에서의 IMF·세계은행

총회, 9월 멜버른의 세계경제포럼(WEF) 저지시위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항거하는 세계 민중들의 투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9월 26일

체코의 프라하에서는 12,000여 명의 시위자들이 ‘반세계화,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IMF와 세계은행(IBRD)의 총회를 저지하며 격렬한 항의시

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1, 2차 아셈에 대응하는 민중들의 움직임도 없지는 않았다. 350여 명이 참

석한 1차 아셈 민중포럼에서는 아셈을 미국, 일본에 빼앗긴 EU의 ‘신 아시

아 공동전략’의 출발로 정의하고, 평화와 안보, 여성, 아동과 매춘관광, 민

주주의와 인권에 대하여 논의를 하였다. 그리고 2차 아셈 민중포럼은 ‘아셈

과 경제위기’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한 후, 1천여 명이 런던시내에서 인권대

행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인권, 환경, 노동, 사회복지 등 10개 영역에 걸친

의제를 담아 민중의 전망(People’s Vision)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이를

아셈 정상회담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주된 내용을 살펴보면, 아셈 과정의

협의성, 참여성, 투명성, 책임성과 의제를 확대할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셈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참여와 개혁’의

기조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3차 아셈에서는 개최지가 서울이니 만큼 국제조직위원회와는 별도로

한국의 60여 개 시민운동단체들이 모여 ‘아셈2000 민간포럼’을 구성해, ‘세

계화에 도전하는 민중의 행동과 연대’라는 주제로 17일부터 21일까지 민중

대회를 갖는다. 노동, 농민, 인권, 평화, 환경 등 13개 분과는 개막식과 워

크샵, 문화행사와 가두시위 등 다양한 행사를 갖는다. 그렇지만 이 ‘아셈

2000 민간포럼’도 1, 2차 민중포럼과 국제조직위원회가 취해온 ‘참여와 개

혁’이라는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 민주노총은 이번 아셈 시기에 맞추어 신자유주의 개방화·구조

조정 중단을 내걸고 2만여 명의 간부와 조합원이 참가하는 2박 3일간의 대

규모 상경 투쟁 등 집중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에 발맞추어 ‘신자

유주의 반대 민중대회위원회’와 ‘WTO반대 국민행동’, ‘아셈2000 민간포럼’

이 공동으로 ‘아셈2000 신자유주의 반대 서울행동의 날’이라는 이름의 집회

와 시위 등 대중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이런 각종 행사 및 집회·시위에는 외국에서도 상당수 민중운동단체 및 시

민단체(NGO) 활동가들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셈이 WTO나 IMF만큼

세계 민중들의 타켓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애틀이나 프라하와

같이 세계적으로 집중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자유주의-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중적인 국제연대 행동이 벌어진다는 것만

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 노동자들로서는 무엇보다 아셈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

가 있다. 아셈이 미국 초국적 자본에 대한 견제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느니,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강제성이나 규정성을 갖고 있지 않다느니 하는 등의

이유 때문에 ‘참여와 개혁’이 우리의 기조가 될 수는 없다. 이번 아셈 시기

의 투쟁을 통해 아셈을 포함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초국

적 자본과 그 국제 집행기구들에 대한 한국 노동자의 단호한 반대와 저항

의 결의를 전 세계 민중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번 아셈 행사들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아시아

노동자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

노총이 간사단체를 맡고 있는 아셈2000 민간포럼 노동분과는 ‘세계화와 비

공식부문-여성노동자의 경험과 대응’, ‘다국적기업과 사회 경제 권리(다국

적기업 하에서의 노동자 투쟁과 산업안전 문제)’와 ‘세계화에 대응하는 아

시아 노동운동의 현황과 국제연대의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3개의 워크

샵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자의 국제연대 조직인 홍콩의 AMRC(아시아 모

니터 연구센터)와 APWSL(아시아·태평양지역노동자연대), ICFTU(국제자

유노련), CAW(아시아여성조직) 등에서 아시아지역 노조간부와 활동가들이

참여해 세계화에 대응해 아시아 노동운동의 경험과 정보를 나누고, 노동자

의 국제연대를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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