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하다 죽을 것인가? 저항하다 죽을 것인가?

나지드 나사르 & 나세르 이브라힘 Ⅰ번역 :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 alterite@hanmail.net)

며칠 전,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그들의 투쟁을 절정에 다다르게 했던 전환점을 맞이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탱크와 로켓 그리고 헬리콥터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폭격을 목격했다. 라말라 지역을 향해 40여기의 로켓이 발사되었으며, 가자지구를 비롯한 다른 도시들 또한 이스라엘이 발사한 90여기의 로켓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부상당했고 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의지를 꺾기 위해 자행된 것이다. 이스라엘 총리 에후드 바라크는 “이 공격은 단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또 다른 목적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재빠르게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여, 현재 분출하고 있는 아랍민족주의 운동을 잠재우고 아랍권 나라들에서 보이는 최근의 여러 징후들(예컨대, 아랍국들에 대한 압력을 증대시키고 있는 대중시위들, 오만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의 폐쇄, 이라크주재 모로코 대사의 소환과 같은)을 진정시키려는 데에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무력공격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

을 봉쇄하려는 시도임에 분명하다. 미국은 이 같은 이스라엘의 행동을 감싸안고 있으며, 동시에 중동지역에 대한 자신의 패권을 실현시키려 하고 있다. 서방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피스크는 10월 13일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 것은 거짓말, 불공평, 증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것은 중동 지역에서의 부정의를 반세기

이상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의 무능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고…. 옳

은 이야기이다. 9월 28일 이후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발생한 많은 사상자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 벌어졌던 여러 대립과 반목들 앞에서, 과연 중동지역의 평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가능하기라도 한 일일까?

오슬로

오슬로협약(1993)은 1987년 이래 벌어졌던 팔레스타인 민중의 인티파다를 잠재우기 위해 진행되었다. 이 협약은 자치라는 허울좋은 말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중의 적법한 권리를 무시할 수 있는 수단 또한 제공했다. A, B, C 세 지역의 형성, 그리고 고립된 팔레스타인 마을 및 촌락으로 이어지는 우회도로의 건설을 통해 팔레스타인은 反자치구역들로 갈갈이 찢겨진 반면, 이스라엘인들의 이주촌은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되어나갔다.

오슬로 협약은 팔레스타인 지역 내외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단결을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것이 조인된 이후, 팔레스타인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은 계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이스라엘 정부는 오슬로 협약을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인 기회로 인식했었다.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이 쇠퇴하고 아랍세계가 분열되던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 기회를 중동분쟁에 대한 자신들의 ‘해결책’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던 것이다. 이 ‘이스라엘-미국식의 해결책’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 즉, ① 항구적으로 확정적인 이스라엘의 정치적 승리로 아랍이 패배할 수밖에 없도록 아랍군대를 변형시키는 것. ② 67년 국경선으로의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거부하는 것. ③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하는 것. ④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하는 것. ⑤ 요르단 서안 및 가자지구에 이주해온 유대 정착민들에게 이스라엘 주권을 적용시키는 것. ⑥ 팔레스타인 주권국가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 ⑦ 1948년 팔레스타인이 입었던 생명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들에 다름 아니었다. 가자지구, 나자렛, 갈릴리 등에서 새롭게 분출하고 있는 민중봉기는 이스라엘의 압제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민중봉기는 이스라엘이 무력을 바탕으로 강제하고 있는 오슬로 협약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격렬한 분노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요컨대, 이 인티파다는 이스라엘의 계획적인 의도,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를 부정하고 그들의 정치적 소망과 목표를 탈각시키려고 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대응이다. 오슬로 협약은, 그것이 시작된 이래,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의지를 꺾기 위한 그리고 그들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무절제한 폭력

로켓, 헬리콥터, 탱크 등을 앞세운 이스라엘 군대의 막 나가는 폭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측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공연한 대결과 죽음조차 마다하지 않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팔레스타인 민중이 누려야할 적법한 권리를 말살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취하고 있는 배타적인 전략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무력, 테러, 그리고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원에 위탁해 평화를 보증하려 하고 있다. 그러므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반대해 저항하고 행동하게 되면, 여기에 대해 이스라엘은 노골적인 폭력과 무력을 퍼부어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 식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평화란 점령과 압제의 연속에 다름 아닐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전제했을 때,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이른바 평화과정’이 진행중임에도 계속적으로 야기되고 있는 정치적 불안정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역사적 뿌리, 기억, 문명, 민족적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유대민족의 정착을 정치적으로 강행해왔다. 이는 과거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당신들이 탱크를 앞세우는 한 인간들이 품고 있는 정서에 결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던 맥락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화과정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 오슬로 협약이 맺어진 이후 6년 동안, 그들은 “협약에 의거해야 한다”는 구실아래 더욱 질식당하고 무력화될 뿐이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50년 이상을 싸워왔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들은 평화협상에 매달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끝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에 비해 너무나 많이 양보를 강요당해왔다. 하지만, 진실은 결국 드러났다. 평화과정은 팔레스타인 민중을 팔아먹는 과정에 불과했다. 서안과 가자지구는 갈갈이 찢겨지고 반자치 구역으로 변형되었다. 유대민족의 이주는 늘어날 뿐이었다. 수백만에 이르는 난민들. 생존의 기반을 박탈당한 이들은 이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꿈조차 꿀 수 없게 되었다. 일시적일 줄 알았던 난민캠프가 계속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이 처량한 사실에 더욱 비참해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결의 전장으로 나가는 것, 그리하여 강제점령에 저항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예루살렘을 돌려 받지 못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그들 자신의 땅을 박탈당한 그리하여 이젠 고향으로조차 돌아갈 수 없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강제점령 및 정착을 종식시키지 못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은 선택은 두가지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굴복하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저항하다 죽을 것인가? 무장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대에 정면으로 맞서며 목숨까지도 내놓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샤론은 시오니스트들에게 그가 시오니즘의 유일한 리더라는 점을 확신시키기 위해 도발적인 전략을 계속 감행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바라크는 더욱 강력한 극단주의적 정책으로 응수할 것이다. 샤론과 바라크의 이 같은 행동들은 둘 다 과격 시오니스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행동양상 또한 비슷하다. 그들은 미국 내 유태인들에게 누가 더 유태인의 충실한 하인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할 것이다. 이 같은 맥락 속에선, 평화과정이라는 것은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투쟁은 계속된다.

이스라엘의 무력공격으로 100여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까?

인티파다는 아마 중단될 것이다. 그리고 협상과정은 악무한적인 순환만을 되풀이할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새로운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의 폭력과 팔레스타인의 저항이라는 사이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벌이고 있는 전쟁이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굴

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인 지원을 중단해야 하며, 팔레스타인 민중 개개인의 이해를 보증하지 못한다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해 또한 흔들릴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또한 그 동안의 전략에 대해 제고해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의 협상과정에서 끊임없이 양보했던 것의 결과가 결국엔 이스라엘의 욕망만을 증폭시켜주었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절망만을 확산시켰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이 중동분쟁과 관련한 핵심적인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

만을 고수하고, 테러와 학살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적법한 권

리를 계속적으로 부정하는 한 , 팔레스타인 민중들 또한 이스라엘의

파시스트적인 행동과 군대에 맞서 계속적으로 저항해 나갈 것이다. 이스라엘이 무력폭력은 결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정신과 염원을 꺾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강제점령이야 말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혈참사와 고통의 유일한 원인이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이스라엘의 압제가 끝날 때까지 이스라엘에 맞

서 저항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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