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갈등해결(Gender and Conflict Resolution)

최현진 (평화인권연대 갈등중재모임 ‘봄길이되는사람’ 활동가, pcreate@netian.com)

내가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리고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성폭행 사건의 대다수의 피해자는 여성… 내게 아주 아주 오래 전이라고 여겨지는 일제시대의 상처가 평생을 게다가 후대에까지 남아있는 정신대 할머니들… 얼마 전 감격스러운(?) 이산가족 상봉에서 가족을 두고 온 남성들은 재가를 한 경우가 더 많았지만 남편을 떠나보낸 여성들은 과부였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가장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그럼에도 여성이 재가하는 것이 더 어려운 가부장 사회… 페미니스트 아트그룹 입김이 죽음을 상징하는 엄숙하고 가부장사회를 상징하는 종묘와 가까이 있는 종묘시민공원(!)에서 여성의 몸에 있는 자궁을 가지고 전시회를 한다하여 겪었던 성적 폭언들… 길거리의 여성 운전자는 (안전운전, 양보운전이라는 표지판들에도 불구하고) 운전 미숙자로 여겨져 교통사고나 교통체증의 원인으로 지목 받기 십상이다.

대다수의 갈등 혹은 분쟁상황에서 여성은 가장 큰 피해자이기 쉽다. 전쟁에 나가 총 맞아 죽는 사람은 남성이지만 그런 남성을 남편으로 자식으로 둔 것도 여성이고, 민간학살의 대상도 여성이고, 게다가 성적 대상으로서 강간 등의 대상이 된다. 전쟁은 남성들이 일으키고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도 남성들이다.

여성주의적 시각

갈등이나 분쟁상황에서 여성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어땠을까? 남성이 아닌 여성들과 아이들 등 약자가 대상인 민간학살에서. 힘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으로 종식시키는 분쟁종식에서, 전쟁범죄를 다루거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집안에서 어머니의 역할로 여겨지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올브라이트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서두…)

여성의 시각에서 갈등을 본다는 것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약자, 소수자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이다. 다수에 가려져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단순하다. 갈등 상황에서 평등하게 대접받는 것. 제발 사람으로서 인정해주길, 인격체로서의 여성의 존엄성을 인정받기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갈등의 해결과정에서의 주체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International Alert에서 일하는 Ancil Adrian-Paul은 젠더(gender)는 태어난 성과 다르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법·제도적으로 규범된 성으로 학습되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성역할과 다른 행동은 쉽사리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사회 속에서 학습되어지는 것이기에 변화가 가능하다고. 이런 젠더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고 갈등해결에 적용한다면 사회를 좀더 정의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젠더 개념 속에서, 사회적으로 규정되어지고 학습된 성역할 속에서 갈등을 분석한다면 갈등의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좀더 평등한 관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차별로 만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나아가 성적취향의 차이나, 신체의 개성의 차이를 가지고 차별로 만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차이가 드러나고 인정될 때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차이와 연대’의 의미가 아닐까?

“높은 가을 하늘과 강해지는 바람 사이를 하강하는 나뭇잎은 노랗게 물들어야 한다 혹은 빨갛게 물들어야 한다”를 따지기 이전에 각각의 삶을 아름답게 마치고 있다. (우리에게 이러저러한 사색의 순간들을 선물하면서!) 나에게는 노란색, 빨간색으로 부를 수 없는 하나 하나의 다른 색을 가지고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나뭇잎이 차이와 연대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다. 또 다른 상황에서의 차이들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계속 발견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