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돌아오다“서태지, 주류 질서의 울트라 닭갈비!”
닭갈비 – 계륵(鷄肋): 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로 그다지 가치는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움의 비유. – Yahoo! <국어사전> 에서
벌써 8년 전이던가?92년 가을, 희망없이 피폐하기만 하던 광주에 동양 최고의 버스 터미널이 완공됐다는 소식은 하루하루를 숨죽여 살아야 했던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들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러자 공부가 죽기보다 싫었고 대학이란 일찌감치 물 건너갔던 친구들은 이제 서울 가는 길이 활짝 열렸다며 씁쓸한 농담을 주고 받았고, 학교와 가까운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하여 무시로 드나들기 일쑤였다.
당시 고속터미널 완공 축하공연에는 최고의 아이돌 스타로 떠오른 서태지와 아이들이 전격 출연하였고, 학교의 양아치 친구들은 말할것도 없고, 소위 범생이들까지 술렁이며 급기야 ‘땡땡이’를 감행하였다. 연예인의 지방 출현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경은 둘째치고라도 그들은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들을 만한‘우리노래’가 나왔다는 자족적인 평가도 함께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때였으리라! 당대를 주름잡던“불패의 발라드 대오”가 서태지라는 문화코드에 습격 당하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서태지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는 하나의 문화코드이자 입문서였다. 랩과 댄스음악은 단순히 공부 못하던 날나리들의 현란한 춤과 노래 잔치로만 인식하거나 유행 따라 지나가는 저급한 계절상품으로 여기던 어른들과 사회의 편견이 180도로 바뀌었다. 고교 중퇴라는 가방끈 짧은 서태지의 프로필은 그 자체로 기성체제에 대한 일대 도전이
었다.
서태지에게 바쳐진“주/전/자(주류 질서의 전복자)”라는 헌사는 모대학 학생회 선거의 모토로 사용되었고, 캠퍼스 곳곳에서 서태지의 노래와 율동은 심심치 않게 흘러 나왔다. 10대와 20대, 지식인의 열렬한 지지, 그에 못지않은 기성세대의 혐오와 반발 속에서 서태지의 도전은 계속되었고, 한국 대중문화의 지형은 급속하게 바뀌어갔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소위 신세대 담론과 버무려져 서태지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들이 군대에 가고, 복학생이 되고, 취직을 하고, 혹은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 서태지는 스타시스템과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며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기나긴 은둔의 길에 나섰다. 은둔의 시간이 계속되는 동안 코스닥에 상장되었다는 주식회사 SM 사단표 제품들(H.O.T,S.E.S, 신화 등)과 유사표 상품들, 그리고 조성모 같은 완벽한 기획 상품이 한 세대를 표현하는 문화코드가 되었다.
얼마전 나의 친구 Y는 요즘의 한국 대중음악을 설명하는데“SM사단, 섹스어필, 조성모, 댄스”네 단어면 충분하다고 씁쓸한 얘기를 했었다. 립싱크도 엄연한 예술 쟝르라고 옹호하는 SM사단 우두머리의 테제가 점차 각종 방송과 심지어 라이브 콘서트에서도 현실로 나타나는 가운데 음악 아닌 음악을 들어야만 하는 서태지 세대들도 요즘엔 들을 게 없어라는 푸념 대신 결국 Y가 얘기한 네 단어의 문화코드 아래 침잠하게 되었다.
2000년 9월, 서태지가 컴백했다. 공항에서의 환영 소동이나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 당일에서야 공개된 음반, 뮤직비디오, 콘서트까지 철저하게 계산한 그다운 면모였지만, 웬일인지 음악인으로서 인정받고 승부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당분간 유보해야 할 듯하다. 이 점에서 평론가들과 네티즌들의 서태지 컴백과 그의 작품에 대한 갑론을박은 충분히 되새겨 볼만한 일이지만, 문득 나는 엉뚱한 생각하나를 떠올렸다. “서태지는 주류질서의 닭갈비(鷄肋)다!”서태지가 구사한 극단의 상업주의 전략과 특권, 과대한 자의식이 뿜어낸 우리시대의 정서란 과연 지지의 대상인가? 서태지는 결국 자본주의 상품 미학인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 우선주의가 만들어낸 거품은 아닌가?
이번에도 이 낯선 음악을 받아들여 한 번쯤은 들어야만 하는 통과의례를 치뤄야 하는가? 왜 훨씬 앞서서 비슷한 쟝르를 개척했던 인디밴드들의 음악엔 무심했었는가? 서태지 새 음반이라며 건네준 이어폰을 한참 끼고 있던 Y의 황망한 표정이 오버랩 된다.지식인의 곤혹스러움! 지식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서태지 담론과 환상이 서태지를
서태지로 듣지 못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90년대 중반 몇몇 음악평론가와 서울지역의 좌파 총학생회가 유포한‘ROCK=노동계급의 음악=저항’이라는 해답 없는 공식을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당시 정서적 이해와 논리적 이해가 어긋나 당혹스러워 하던 나의 친구들과 선배들의 얼굴도 함께.
여하튼 명절연휴 안방극장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초짜 지식인의 하릴없는 고민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몇 년간 어느 가수의 음악을 이토록 진지하게 대해야 했던가? “음악은 음악으로, 돈은 돈대로.”
“귀는 귀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시니컬한 두 문장 사이로 내리는 테제 하나!“지식인이여, 이제 서태지는 귀로 듣자!” 어쨌든, 서태지 그대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울트라 닭갈비야! <박기원/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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