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난이 (김숙정, 동덕여대 전자계산 97)
“잠잘 때 빼고는 운동밖에 생각 안해요”
산파, 포도, 람, 푸, 냉이…
자신을 이렇게 밝히는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여성활동가다. 성, 이름 석자를 말하지 않고 예컨대 “난 파예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이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여러 동지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고 동지들의 연상작용을 통해 얻어진 이름이 바로 산파, 포도,람, 푸, 냉이다. 하지만 여간 고역인 게 아니다. ‘낮은 시선의 파는 군가산제에 대해….’ 이렇게 쓰면 읽는 사람들이 ‘뭘 파나? 오자인가?’ 하면서 혼동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래서 여성활동가를 인터뷰할 때는 늘이름을 알려달라고 졸라댔다. 그러나 정작 이름보다는 별칭으로 통하는 곳이 이곳 세계(?)다.
책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뀌고
난이가 이곳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세상일이라는 게 복잡한 것 같지만 아주 우연한 계기로 모든 것이 일시에 해소되고 단순 명쾌해 지는 것처럼. 대학에 갓 입학한 후, 대학원 로비를 지나는데 누군가 혼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모금함을 놓고 앉아 있었다. 왠지 나라도 저 모금함에 조금이라도 넣어줘야 할것 같았서 모금함에 돈을 넣었는데, 앉아있던 사람이 행동위원회 입회원서를 한 장 내밀었다. ‘꼭 오라’는 말과 함께.
“꼭 상관관계가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2의 성>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나름대로 충격이었어요. 지금은 그 당시의 생각하고 많이 달라졌어요. 그래도 그 책을 읽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가 없어요. ‘여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케 한 최초의 책이었어요.”1주일의 고민 끝에 행동위원회에 찾아갔고, 난이는 여성행동위원회의 일원이 되었다.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졸업을 앞둔 난이의 머리 속에는 온통 운동에 대한 고민뿐이다. “잠잘 때 빼고는 운동에 대한 생각밖에 안해요. 결혼, 연애, 집안… 이런 걱정이 안들어요. 생각이 나더라도 금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 차요.” 이제 운동은 난이의 삶이 돼버린 것일까.
“전 성공하고 싶었어요. 근데 어린 마음에도 ‘여자는 불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자로서 성공하는데 불리한 조건이 대체 무엇인가, 그걸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했었어요.” 어쩌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웠을 <제2의 성>을 손에 잡게된 것도 이러한 생각에서 연유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는 나만의 성공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이용하려고 했던 그 조건이 내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 되어있는한.
“제 미래요? 주거 공동체를 꾸려서 지금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하고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누군가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진정 자신이 행복한 것을할 수 있지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들이 하는것 만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학년때 1달 동안 잠적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비겁한 거 같더라구요. 가서 바꾸거나, 내가 깨지더라도 회피하지는 말아야지, 하면서 스스로 돌아갔어요.” 물론, 깨지는 쪽은 ‘난이’였다. 그러나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있어 보였어요. 조건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요.” 그러나 그 속에서 더욱 가능성을 찾아낸 것은 난이 자신이었다. “내가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니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더라구요. 지금도 힘들 때는 내가 정말 행복한 곳이 어디인가 하고 생각해 봐요.”
인터뷰를 끝내면서 왜 ‘난이’가 되었는지를 물었다. “아, 이런거 말하면 안되는데… 못난이 인형에 난이예요.” “왜 못난이 인형이 나왔는데?” “누가 인형을 말했거든요.” “왜 인형이 나왔는데?”“아, 진짜 이런 거 말하면 안되는데… 눈이 예쁘다고 해서요.” “아하…” “근데 얼굴에 주근깨가 있으니까 못난이 인형이 연상된 거예요.”
<현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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