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본 세상- 가해자의 감수성성폭력과 양민 학살

나는 피해자의 감수성을 지닌 운동이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해 왔다. 한번 피해를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해에 대해서 쉽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으며 다른 가해의 상황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기에, 어떤 종류의 억압에도 민감할 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든, 다른 이를 억압하는

것이든.

피해자의 감수성에 대한 이러한 나의 믿음은 한겨레 신문사에 대한 고엽제 전우회원들의 폭력을 지켜보면서 흔들리게 되었다. 베트남전에서의 한국군 양민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한겨레 신문사의 캠페인에 대해 고엽제 전우회원들은 ‘양민학살은 없었다’고 얘기하며, 자신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신문사를 폭력적으로 점거했다.

신문사를 점거한 것이 베트남전 참전 군인회였다면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인 고엽제 전우회원들이 ‘양민은 없었다’고 얘기하였을 때, 그 역설적인 상황에서 나는 피해자의 감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경험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당한 피해에 대해 오히려 둔감해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혹은 자신이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를 다른 상황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운동 사회 내에서 성폭력이 발생하였을 때, 보여지는 모습이 바로 이런 경우인 듯 하다.

어느 누구도 명시적으로 ‘운동권은 피해자’라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정권의 폭력적인 탄압’,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 등의 용어를 통해 드러나듯이, 운동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해 오던 사회이다. 또한 정권의 탄압에 맞서 운동을 보호하고 운동의 정당성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암묵적으로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해 왔을 성폭력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기 힘들어 하거나,’운동가로서의 자신’과 ‘성폭력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분리시켜 얘기하려 한다. 동일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리라고 여겼던 ‘운동권’이라는 집단 속에서도 가해자/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또한 그들 사이에 분명한 권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성폭력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내 여성운동들을 중심으로 반성폭력 학생회칙 제정 운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대학 당국의 반성폭력 학칙 제정 공포가 2000년 상반기 동안 줄을 이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이제 운동 사회 내에서도 자체적으로 반성폭력 운동을 결의하고 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자신을 언제까지나 피해자(약자)로만 규정한다면, 그리고 반성폭력 운동을 운동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으로만 사고한다면, 반성폭력 운동의 의의는 실종되고 말 것이다. 자신의 잠재적인가해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반성폭력 운동은 시작된다.

<무영/ muyoung98@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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