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과 한국의 김대중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11/3 제임스 코나치
지난 달 75세의 김대중 남한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수사(修辭)의 이면에는 극히 초보적인 진실이 존재한다. 노벨 평화상은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과 기업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세계의 분쟁 지역들에서의 전략적 전환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 인물들에게 계속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1990년대를 살펴보자.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시킨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와 데클
레르크, 1994년 중동협정을 이룩한 야세르 아라파트와 이차크 라빈, 시몬 페레스,
북아일랜드 협정의 주요 중재자였던 데이비드 트림블과 존 흄 등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각각의 경우 모두 이러한 전환은 초국적 투자와 교역의 흐름을 촉진시킨
것으로 찬양받았다.
김 대통령의 수상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김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김정일
이 만난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고립된 스탈린주의 국가인 북한을 남한과 초국적 기
업들의 착취,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에 개방하게 될 5개항 합의에 서명하였다. 그
후 몇 달간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과 시드니 올림픽 남북한 공동입장은 한반도의
냉전적 분단과 그 유산인 군사적 긴장이 종식되기 시작했음을 그리고 진정한 친선
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청신호로 해석되었다.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다룬 세계의 논평들은 노르웨이 노벨상 위원회의 말
을 빌어 그를 “아시아에는 보편 인권이 적절하지 않다며 이를 제한하려는 시도에
맞서온 지도적 인권 수호자”로 묘사하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10월 14일자 사설
에서 이러한 논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아시아에는 민주주의가 적합하지 않다고 아
직도 주장하고 있는 중국의 노인 정치가들이 [김 대통령의] 인생 스토리에 당황하
고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결론맺었다.
과거 남한의 권위주의 정권들에 대한 저항과 북한과의 데탕트 옹호로 많은 박해
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김 대통령의 주된 관심은 민주주의나 인권이 아니라 한
국 자본주의의 장기적 생존력과 안정성이었다.
지난 열두 달의 과정은 그의 일생의 정치적 비전이 현실화될 수 있는 전망을 높
여주었다. 그는 북한과의 협정으로 한반도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실크
로드”의 중심부가 되었다고 환호하였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이 유럽과 미국 식민주의에 의해 자국 시장을 개방한 19세
기 중반 이래 동북아에서 지정학적 영향력과 이윤을 추구하는 세력들에게 커다란
중요성을 지녀왔다. 중국의 북부 성들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및 주요 아시아 항구인 블라디보스톡과 근접하며 부산 같은 항구들이 일
본열도를 마주보고 있는 한반도는 통상과 세력권의 타고난 관문이다.
동북아시아가 세계 핵심 경제지역 가운데 하나이고 남한 또한 세계 11위의 수출
국인 오늘날의 고도로 세계화된 경제에서 한반도 북부로부터 남부로 상품을 이동
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점차 불편하고 값비싼 부조리가 되었다. 북한 전역에 간단
한 화물 철로를 개통하고 이를 러시아와 중국의 철도망과 연결시킬 경우 유럽연합
과 남한, 일본 사이의 교역 시간을 몇 주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북한과 남한 사이의 데탕트를 특히 열광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적 연계를 다시 수립하는 과정에서 서방 세계를 주도한 것은 이탈리아였다.
최근 몇 주간 영국과 프랑스, 독일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처럼 이탈리아의 전례
를 따를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그리고 동남아시아국가
연합(ASEAN) 회원국들도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일본 또한 북한
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향한 회담을 시작하였다. 외교 사절단의 뒤에는 기업 대표
단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김 대통령은 근 40년간 북한과의 경제관계 수립에 관해 남한 지배계급의 지지를
얻으려 노력해왔다. 그는 해운산업의 기업가로 1960년에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하였다. 61년 박정희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 그는 합법적 반대파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민주주의 확대라는 김대중의 호소는 박정희가 북한을 병적으로 증오하
고 관계 개선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억압한 사실로 인해 어느 정도 생명력을 얻었
다.
1970년 김대중은 박정희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다투며 “평화공존”과 북한과의
유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대중은 암살 기도를 모면하면서 46%를 득표했다.
1972년 군부는 김대중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가는 것에 대해 국회 해산과 [유신]독
재로 대답했으며 이는 이후 15년간 지속되었다. 김대중은 이 시기의 대부분을 감
옥이나 망명지, 가택연금 상태에서 보냈다.
1987년 남한 노동계급은 생활수준 향상과 군사정부 종식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정치파업과 항의시위로 떨쳐 일어섰다.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잠재력을
가진 대중운동에 직면하여 김대중은 스스로가 노동계급과 진정한 민주주의에 근본
적으로 대립되는 계급이해를 대변함을 보여주었다.
기업 엘리트의 이해에 반하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요구에 적대적이었던 김대중은
오랜 야당 지도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로 돌아가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이미 불신받고 고립되어 있던 군부 통치자들과 결탁하여 대중의
불만을 대통령 선거로 전환시키고 정치상황을 안정시키려 했다. 선거는 부정으로
얼룩졌고 결국 정권측 후보였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1997년 12월 당선과 더불어 수립된 김대중 정부는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
는 대가로 IMF가 요구한 경제 구조조정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무자비
함으로 특징지워졌다. 김대중 정부의 최초 입법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들의 고용안
정 보장을 삭제한 것이었다. 대통령 재임 첫 6주간 100만 이상의 정규직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업률은 두 배 이상 높아졌다. 1998년에는 제조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
이 9.8% 삭감되었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는 군부통치의 최후의 발악 이래 전례가 없던 수준의 폭
력으로 탄압받았다. 수백 명의 노동조합 간부와 지도자들이 불법 체포의 희생양이
되었다.
김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남한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정책과 마찬가지로 민주주
의 원칙과 대중의 사회적 이해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고 있다. 그의 정책은 무엇보
다도 남한 기업들에게 값싸고 규율잡힌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북한의 경찰국가
적 억압과 빈곤에 편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자신의
의제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북한의 저렴하지만 훌륭한 노동력과 남한
의 자본 및 경영 노하우”를 결합시키고자 한다고 언급하였다.
6월에 합의한 협정은 스탈린주의 국가를 그대로 보전하며 한반도의 정치적 분단
을 무한정 유지시키는 내용이다. 유일한 “통일” 구도는 두 개의 독자적 정부는 유
지한 채 북한인들이 남한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종의 연합제이다.
이러한 정책은 -독일 자본주의에 상당한 재정적,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 스탈린
주의 동독이 서독에 의해 흡수통일된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 후에 형성되었다.
남한은 통일 비용을 부담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1990년경 북한의 생활수준은 남한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으며 사회기반시설 또
한 낙후되어 있었다. 독일식 흡수통일을 할 경우 1조에서 3조 달러에 이르는 비용
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착취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남북 합의가 가져온 가장 분명한 결과는 북한 정부와 남한 재벌기업 현대가 특
별경제구역을 개설하기 위해 합작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특별경제구역은 북한
국경에 인접한 개성시의 철도망을 따라 자리잡을 예정이다. 이 구역은 1200개의
기업과 16만 명의 고용 창출, 그리고 연간 200억 달러의 수출품을 포괄하게 될 것
이다. 개성이 성공할 경우 다른 곳에도 특별경제구역이 건설될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70∼100달러의 월 임금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아산
의 김유규 사장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부가 특별경
제구역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기업활동을 방해할 노동쟁의가 없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록펠러그룹이 대주주인 미국의 부동산기업 쿠쉬맨&웨이크필드는 55억 달러의 투
자 계약을 성사시켰다. 일본 투자자들 또한 벌써 십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하
고 있다. 100개 이상의 남한 섬유기업들이 개성 진출을 신청했으며 삼성은 전자공
장을 세울 계획이다.
북한이 개방되면서 남한에서는 정리해고 증가가 불가피하다. 한국 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남한 기업의 31%가 북한에서 사업 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은 현재 설립중인 북한 기업들과의 합작사업을 통해 추진되고 있
다.
남한과 가능하면 일본까지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러시아의 시베리아 유전에서
북한을 통과하는 송유관 건설 또한 검토 중이다. 초국적 석유기업들은 북한의 원
유를 탐사하기 위한 계약에 서명하였다.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남한 자본가 계급은 북한의 스탈린주의 관료 엘리트들에게
동반자관계를 제안하였다. 북한 엘리트들은 투자 개방에 대한 대가로 합작사업의
소유권을 나눠가지면서, 중국에서 그러했듯이, 자산소유 계급으로 스스로를 변모
시킬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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