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사업
신형록 (새만금을지키는전북사람들 대표, hyonglog@hanmail.net)
가을 색
바쁘게 살다보면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잊곤 하지요. 겨우 기억하는 건 여름과 겨울입니다. 봄이다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이다 싶으면 겨
울이지요. 특히 도시생활이 그렇습니다. 씨 뿌리고 거두는 시골생활은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우리는 계절을 잊고 사는데 익숙하다가 지난 뒤에 생각하지요. ‘벌써 은행잎이 다 떨어졌네’하면서요.
우리 생활이 자연과 멀어지면서 만들어진 모습입니다. 사람은 자연과 사람에게 위안과 기쁨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면 허전하고 외로움을 느끼지요. 현대문명에서 사람이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멀어졌기 때문
입니다.
가을엔 자연이 포근하고 편안합니다. 언뜻 내변산을 가다가 “왜 이리도 가을엔 포근하고 편안할까”를 생각했습니다. 잎이 다지고 빨간 감만 주렁주렁 매단 감나무가 애처롭게 보이는 게 아니고 편안하게 보이고, 도토리를 다 떨어뜨리고 잎마저 누렇게 변한 도토리 나무가 포근해 보이는 이유는 무얼까?
“벼를 다 베어낸 논에서 누렇게 변한 밑둥이 산 경치와 잘 어울리는 이유는 무얼까”를 생각했습니다.
가을에 자연은 아무래도 누렇습니다. 갈대도 그렇고 길가에 자란 풀들도 그렇습니다. 연한 녹색 새싹이 풀색 잎이 되고 어여쁜 꽃이 피고 알토실 같은 열매를 맺고 난 뒤 자연은 누렇게 바뀝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을이 편안하고 포근한 이유는 봄, 여름동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땅에 떨어뜨리고 자기 임무를 다한 모습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자기 일을 목숨걸고 열심히 한 모습에서 나올 수 있는 표정은 아무래도 편안하고 포근하겠지요. 줄기를 살찌울 일도 없고 열매를 맺을 일도 없어 땅속에서 치열한 경쟁도 하지 않을 거고 한 해 동안 자기 일을 열심히 한 뒤라 바쁠 것 없어 그런가 봅니다.
사람도 삶을 마감할 때 이 자연의 모습을 가질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지요.
새만금간척사업은 이런 자연을 닮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사업입니다. 먹을 것이 넘치는데도 먹을 것에 욕심을 내는 자본가들과, 이름이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 더 알리지 못해 안달인 정치인들이 벌이는 사업입니다. 그 통에 바다와 갯벌에서 살아가는 어민과 지역주민들 생존이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자연의 변화와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방조제에 밀려 떠나야 합니다. 바다와 갯벌에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도 어찌된 이유인지도 모른체 죽어야 합니다.
간척사업으로 돈벌이를 하고 정치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사람들에게 바다와 갯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나 생명들은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강을 강으로 두지 못하고 호수 만들고, 갯벌을 갯벌로 두지 못하고 공장 지을 땅으로 만들고, 바다를 바다로 두지 못하고 막아버리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서도 지역주민의 소득향상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간척사업을 통해서 한번도 지역주민의 삶이 나아진 적이 없습니다. 간척한 땅은 대기업이 가져가고 농사 짓겠다고 막은 땅은 나중에 돈이 된다는 이유로 모두 상업용지로 변했습니다. 자본논리와 정치논리가 지역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빼앗고 주민공동체를 무자비하게 파괴해 버립니다. 새만금간척사업 반대운동은 자본논리와 정치논리에 맞선 주민생존권 싸움입니다. 그런데 그 범위가 워낙 크다보니 자본과 정치논리가 우리 나라 모두를 덮고 있어 단순히 지역주민의 생존권에서 끝나지 못하고 모든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우리는 우리 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연형 하구를 잃습니다. 하구 갯벌이 가진 풍부한 생명력은 이제서야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는데, 그 가치가 알려지기도 전에 우리는 소중한 가치를 매장하는 부끄러운 기성세대가 됩니다.
우리는 미래세대에게 우리가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돈으로 자연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없앨수 있는 사람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남길 것인가, 아니면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고 이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사는 방법을 남길 것인가?
이 판단의 기준은 새만금간척사업을 중단하느냐, 강행하느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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