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선택하지 않는 것이 나을 때
「사회주의 평론」 2000/11 크리스 하먼
‘실질적으로 대다수 노동계층에 혜택을 주게 될 개혁이다.’ ‘환경오염
을 가속화시킬 퇴보적인 조치로서, 가장 피해를 보게 되는 이들은 노동계
급과 그 가족들이다.’ 9월 말 트럭 운전수들이 도로를 봉쇄하는 시위를 벌
일 때, 대다수 좌파는 사실 이같은 논쟁 속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광
역 런던 시당국과 여타 도시들이 혼잡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
운데 이러한 논쟁은 더욱 격렬히 불타올랐다.
논쟁이 이처럼 격렬히 진행된 것은 양측 모두 외관상 탄탄한 논거를 갖
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연료세를 낮추라는 트럭 운전수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측에서는 이 세금이 퇴행적인 간접세로서 부유층보다는 노동계
층에 더욱 타격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3자인 극빈계층은 차를 가질
여유조차 없긴 하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이들은 부유층보다는 사실 일
자리를 가진 숙련, 반숙련 노동자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혼잡세에 반대하는 주장은 더 분명한 논거를 갖게 된다.
차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차에 동일한 세율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부유층
이나, 회사차를 운용하는 이들은 단지 세금을 비용으로 전가시키기만 하면
된다. 반면 중산층 노동자들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다른 것들에 들어가
는 비용을 삭감해야 한다. 심지어 그 결과로 도로가 보행자들에 더 안전하
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세금을 지불한 사람들은 더 높은 속도로 운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도시를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부유층이
도로를 소유하고 있다고 느낄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반론의 근거는 물론 ‘환경적’인 측면이다. 자동
차 운용 비용의 감소는 자동차 보유 대수를 늘게 한다. 그 결과는 사망자
수의증가(가난한 계층 아이들은 자동차에 치일 확률이 부유한 계층 아이들
보다 열 배나 높다)와 온실 효과의 악화이다. 기후 패턴을 불안정화시킬
것이며, 방글라데시에서 중앙 아메리카, 인도 서부에서 미국 태평양 연안
에 이르는 모든 지역까지,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홍수와 가뭄 등을 유발시
킨다.
논쟁은 한 측면에서는 ‘소부르주아 환경주의자들은 입닥치게 하고, 노동
자들은 덜 지불하게끔 만들자’라는 식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트
럭 운전수들을 조용히 시키고, 지구를 구하자’라는 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양 측면 모두 이 문제를 노동계급의 생활 수준을 악화시키고 지구 환경을
위협하고 있는 보다 넓은 체제에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림의 일
부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80년 전 헝가리 출신의 맑스주의자 게오르그 루
카치는 세계에 대한 맑스주의적 인식에 있어서 중심적인 개념 중의 하나는
총체성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자본주의는 급속히 변화하는 총체적 체제로서, 각각의 그 구성요소들은
다양한 정도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변화에 직면해서 사
람들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특정한 경험의 틀에 맞춰진
채 협소한 측면에서 제출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변증법에 관한 저작들
에서 지적한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 혹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를 받아들이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
다. 일단 그렇게 말하고 나면, 의도했던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철저한 자본가 정당 간의 선택에 개입하는 것만으로 정치를 협
애화시킨 미국의 사회주의자들의 경우가 이러하다. 1914년 독일과 오스트
리아-헝가리 동맹이라는 한 축과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라는 다른 한 축
사이의 ‘선택’을 받아들였던 유럽의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것은 냉전 시기, ‘선택’을 서구 제국주의와 러시아 스탈린주의 사이의
것으로 보았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회피주의’로 비난받기도 한
다. 그러나 선택을 거부한다는 것은 그 반대의 의미를 띨 수 있다. 1차 세
계대전 때 그것은 ‘자기 편’ 군대에 미칠 영향에 상관없이 모든 저항과 파
업을 지지함으로써, 수감 혹은 그 이상을 무릅쓰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올해 미국의 선거에서는 고어가 부시를 이길 수 있는 기회를 무산시킬 지
도 모르는 위험과는 별개로 랠프 네이더 후보의 선거운동이 활발하게 진행
되었던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료 시위의 경우, 이것은 시위대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이 공식 정치로
부터 인민이 매우 광범위하게 소외되어 있음의 한 표현임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럭 운전수들과 농부들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
은 바로 조직 노동계급은 노조 지도자들에 의해 노동당 정부와 그들의 우
호적인 관계를 손상시킬지도 모를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배제되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또한 이것은 시위를 이끈 세력의 계급적 성격으로 인해 시
위가 보다 넓은 체제 자체에 대한 그 어떤 도전으로도 전화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반정부적일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분명 반자본주의적이
지는 않았다.
트럭 운전수와 소농들은 맑스주의의 규정에 따르면 ‘소부르주아’에 속한
다. 이들 자본가, 혹은 장차의 자본가 계급은 보통 체제가 자신들에 해를
끼칠 때조차 체제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들 중 가장 정력적인 부위는 대
부르주아가 되기를 열망한다. 이들은 독립적인 계급의 요구를 내세운 노동
자들의 조직적 투쟁을 통해 포섭될 수 있는 계층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
고서는 이들의 운동은 쉽사리 대기업의 이익에 봉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
회하게 되며, 또한 파편화된 노동자 집단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 당길 수
있다.
연료 시위대는 자신들이 우려하는 것은 오직 세금 인상(리터 당 총 18파
운드에서 최근 몇 달 간에만 1.2파운드가 인상되었음)이며, 석유회사들의
이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위를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
해 석유회사들과 지역 경찰 수뇌부의 공명에 의존했다. 또한 이들은 뒤따
른 정부와의 협상을 화물운송협회(FTA)가 주도하도록 허용했다. FTA는 거
대 운송회사들과 슈퍼마켓 등을 대표하고 있으며, 소규모 운송회사들과 농
부들에 대한 압박에 책임이 있는 것도 바로 그들이었다.
예상되고 있는 성과는 디젤유 가격에 대한 정부의 조치이다. 이것은 업
계의 비용은 줄여주겠지만 노동계급이 부담하는 자동차 가솔린 가격은 손
대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석유회사들은 정부의 지구온난화 방지 조치를
저지하는 데 있어서 자신들의 능력이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연료 시위대
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석유 업계의 끊임없는 로
비 속에서 당혹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 대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에 대한 관심과 환경에 대
한 관심을 하나로 묶을 수도 있었던 대응책도 있었다. 그것은 석유기업들
의 이윤 수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공공 운수에 사용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노조에는 연금 문제의 경우처럼 이슈에 대한 ‘프랑스적 접
근법’을 통해 일반의 소외에 초점을 맞출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
은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시도했던 것이며, 우리는 앞으로도 이러한 접
근법에 의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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