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돌아보며:
슈퍼초울트라 가부장사회, 대한민국 그리고 운동사회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duck52@jinbo.net)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공고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사람에게 공격이 들어온다면 다들 얼마든지 내 한 몸 바쳐 막아줄 자세를 취하고는 갖은 보조 장치들을 강구한다. 이미 그들의 머리 속에는 피해 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사람이 총 맞아 깨진다면 다음 차례는 혹시 자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위눌림이 이들을 이처럼 똘똘 뭉치게 만드는 것인지… 이들은 자신이 누군지 드러날까 봐 성폭력 사실을 사실로 공개하지 못한다는 피해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강간 사건마저도 피해자의 실명을 들먹이며 거짓말을 유포하고 있으며, 100인위를 안기부 프락치 혹은 백색테러분자로 낙인찍고 게시판을 휘젓고 있다. 또한 성폭력 사건이 증거가 없고 목격자가 존재할 수 없다는 케이스임을 이용하여 법 조항을 들먹이며 100인위를 압박하고 있다.
법에 호소하는 것이 빠르겠지. 평소엔 ‘악법도 법이냐’를 소리내어 외치며 법개정 투쟁을 벌이던 무리들도 어떻게 된 노릇인지 성폭력 사건은 법이 가장 정직한 판결을 내려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너무나 단순하고 보편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는 이렇게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가해자는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 판가름하기 너무 힘들다.” “시간을 두고 진위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얼마나 보편 타당한 개념인 것처럼 보이냔 말이다.
가해자들이 처음 문제제기 받고 뜨끔해서 말실수로 사과한 것들을 어떻게 번복하며 급기야 자신도 피해자라 외치게 되는 결말. 사건을 해결하려고 모인 사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을 가지고 처음부터 좁혀지지도 않을 뻔한 내용으로 중립적인 척 갖은 폼을 다 잡다가 1년이 넘고 2년이 넘도록 해결보지 못하게 되는 결말.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받았을 2, 3차 가해로 인해 피해자가 정신병원에 드러눕게 되는 결말. 이러한 수순이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보편 타당한 개념 속에서 결론지어질 수 있는 것인지…. 나 혼자 머리 속의 시나리오인지…. ‘공정성을 갖춰야 한다’는 외침 속에 담겨있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부풀릴 수도 있다는 상상은 공정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그랬다면 왜 그랬을까?’ 질문을 해봐도 그들이 얘기할 수 있는 근거조차 미약한 웃긴 발상이다. 오직 가해자를 두둔하겠다는 확고부동한 의
지가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성폭력 개념은 사무실 등에서 여성들 보라고 컴퓨터에 음란물을 켜놓는 짓거리에서부터 느끼한 눈으로 계속 쳐다보는 것, 그리고 강간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은 규정이다. 지금 성폭력 규정에 관한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너무나 고루하다. 아직까지 강간이나 준강간만 성폭력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너무나 상식적인 것 아닐까? 싫다고 하는데 죽자고 따라다닌 스토킹도 성폭력이고 후배와의 여성 문제에 관한 논쟁 이후 보란 듯이 콘돔을 불어대는 것도 성폭력이다. 성폭력은 객관적 가해 사실로 성폭력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경중 혹은 원치 않음 혹은 가해자의 의도성 등으로 재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피해자 중심주의’와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에 기준 하여야 하는 것이며 피해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심각한 폭력 행위다.
지금 어느 곳에서도 왜 여성활동가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지금까지 운동사회에서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문제점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문제제기 되지 않고 있다. 가해자들의 어이없는 사과문에 대해서 100인위를 비판하는 것처럼 정교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공개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위로나 연대의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도 드물다. 나는 100인위 명단공개 이후의 상황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심각한 운동사회의 뿌리깊은 남성중심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받았을 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실명 공개된 가해자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분위기.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노동자들의 과격투쟁은 영웅담처럼 떠돌 수 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여성활동가들의 그저 그런 투쟁은 싹부터 밟아야 속이 시원한 수퍼초울트라가부장사회 대한민국, 그리고 그런 측면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는 운동사회.
이번 원고의 주제가 ‘2000년을 돌아보며’였는데 요즘 나의 상태가 상태다 보니 100인위 관련한 내용이 서두에 많이 길었다. 이제 주제로 돌아가자. 2000년을 곰곰이 돌아보자.
스산한 가을, 수퍼초울트라가부장사회인 대한민국의 나랏일 하는 나리들은 매춘 여성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때 어떠한 보상금도 지급된 적이 없다는 말로,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의 바운더리로 군산 사건의 희생자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했었지. 개 값도 안 되는 단돈 몇백으로 이거라도 고마운 줄 알고 먹고 떨어져라 했지. 지들끼리 짜고 돈 받아먹고 했으면서 이제와서 모르는 일이라 오리발 내밀었지. 매매춘 현장에서 이득을 보는 것이 포주와 여성을 사는 남성 손님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공무원과 경찰들임이, 그 속에서 매춘 여성들은 능동적 주체가 아니라 피해자임이 이번 군산 사건을 통해서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잘난 대한민국 사회가 하는 말. ‘그런 짓(매춘행위)을 왜 해. 당해도 싸지’
얼마 전, 잘 나가는 연예인의 성생활이 담긴 영상물이 인터넷에서 공개되었을 때 안 보기 운동을 벌이는 여성들이 있는 반면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욕을 하는 남성들이 있었지. 청소년을 그저 도구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제대로 성교육 한 번 할 생각 못하는 어른들이 그저 애들 교육상 안 좋으니 그 가수는 제발 TV를 떠나라고 말했지. 그녀도 피해자라는 입장이 조금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어.
개인적으로 수원대 성폭력 대책위에서 활동했었고 지금도 활동하고 있으며 3·8 여성대회에서는 없는 개인기로 운동사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퍼포먼스도 했어. 어처구니없게 군산 사건이 터졌고 장례식에 다녀왔으며 몇 번 집회도 참석했었지. 100인위 활동도 나름대로 열심이었지만…
예전의 나는 ‘대인관계 원만한 녀석’쯤으로 분류되는 인간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말걸기 힘든 사람’ 혹은 ‘예민한 여자’쯤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것 같아. 위에서 열거한 내 활동의 성과(?)들일까? 난 몰랐을 때야 그냥 넘어가기도 했지만 나에게 가해지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혹은 사회적 불편을 항상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어. 최근엔 느낀 대로 다 얘기하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아서 자제하기도 했지. 그런데 남성들은 말이야 조금의 불편도 참기 힘든 모양이야. 수십 년간 자갈밭에 굴러왔을 여성들의 입장보다는 당장 자기 발 밑의 모래 조금이 그들에겐 더욱 절실한 문제일까. 사실 내가 그들을 불편하게 한 것도 아니고 느낀 그대로, 사실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말이야.
결론. 2000년을 돌아보며… 느낀 점!
첫째, 대한민국은 수퍼초울트라가부장사회이다.
둘째, 운동사회도 그에 못지 않다.
셋째,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아무 것도 몰라서 대인관계 원만한 녀석이라는 평가를 받던 시기로 돌아갈 순 없고. 그러면 그냥 그런 척 하면서 살까. 아님 느낀 대로 얘기할까.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살면 계속 운동하면서 살아갈 수는 있을까. 정말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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